미운 오리 새끼 전락한 메자닌 투자
  • 송준영 시사저널e 기자 song@sisajournal-e.com (song@sisajournal-e.com)
  • 승인 2019.11.14 08: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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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자산운용 환매 연기 사태로 촉발…유동성 경색·채권 부실 등 리스크 불거져

숱한 성공신화를 만들어내던 메자닌(Mezzanine) 투자에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메자닌은 요즈음 채권과 주식의 장점을 취한 자본조달 수단으로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최근 국내 헤지펀드 규모 1위인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연기 사태가 촉발되면서 유동성 경색과 채권 부실화 등 각종 리스크가 부각됐다. 특히 지난해부터 메자닌 자산의 발행이 많았던 점을 들어 증시 참여자부터 발행사까지 리스크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10월14일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10월14일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라임자산운용 환매 연기 사태로 위험성 부각

메자닌은 이탈리아어로 ‘1층과 2층 사이의 공간’을 뜻한다. 투자시장에선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채권과 주식의 성격을 모두 지닌 자산을 의미한다. 평소에는 채권의 형태를 띠지만, 일정 기간 이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어 시세차익을 남기기도 한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고액 자산가들이 앞다퉈 투자하기 시작했고, 사모펀드들은 이 메자닌을 앞세워 사세를 키워 나갔다.

라임자산운용도 이들 중 하나였다. 라임자산운용은 2016년 헤지펀드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이후 주식, 채권뿐만 아니라 메자닌, 사모사채 등 대체투자 분야에서도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코스닥 메자닌 투자에서 높은 성과를 보여 명성을 쌓아 나갔다. 2016년 12월 4620억원이던 운용자산(AUM)은 올해 6월 5조6791억원으로 급격하게 불어났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라임자산운용은 메자닌으로 인해 큰 위기를 맞았다. 라임자산운용은 인기가 많은 메자닌 펀드를 언제든지 환매할 수 있는 개방형 펀드로 설정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여유 자금으로 펀드 환매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올해 3분기 들어 지급할 자금이 바닥날 정도로 한꺼번에 펀드 환매가 몰렸다. 올해 7월 금융감독원이 라임자산운용의 ‘수익률 돌려막기’ 의혹을 조사하자 이에 놀란 투자자들이 대거 환매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라임자산운용에 따르면 메자닌을 유동화하기도 쉽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메자닌 투자는 주식 전환을 통한 차익 실현을 추구한다. 그러나 국내 증시가 올해 큰 폭으로 내리면서 일부 종목의 경우 주식 전환이 어려워졌다. 조기상환청구권을 사용하거나 메자닌을 시장에 내놓을 수도 있었지만 우량자산을 선매각할 경우 잔존 투자자와 환매투자자의 형평성 침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었다. 이에 라임자산운용은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환매 연기에 나섰다. 라임자산운용이 추산한 최대 환매 연기 금액(사모사채, 무역금융 펀드 포함)만 1조3363억원에 달한다.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연기 사태로 리스크 확산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메자닌은 2015년 헤지펀드 활성화 정책과 투자 수요 증가가 맞물리면서 발행이 늘었다. 특히 벤처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한 코스닥벤처펀드가 지난해 출시되면서 벤처회사들의 메자닌 발행이 크게 증가했다. 실제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의 CB와 BW 발행액은 2017년 약 3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약 5조7000억원으로 규모가 확대된 상태다.

메자닌 투자자 입장에서는 유동성 경색과 메자닌 자산의 부실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예컨대 CB를 발행한 회사의 주가가 투자자와 약정한 주식 전환가액을 밑돌 경우 주식 전환 가능성은 낮아진다. CB를 만기까지 들고 간다 하더라도 해당 기업에서 자금 상환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메자닌 자산의 부실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동안 CB는 성장성은 있지만 신용도가 낮은 성장 기업들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주로 쓰였는데, 이들의 자금 상환 능력은 일반 기업보다 떨어진다.

메자닌 발행사의 기존 주주들도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CB나 BW가 주식으로 전환돼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를 희석시킬 수 있는 까닭이다. 특히 메자닌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전환가액 하향 조정(refixing·리픽싱) 기능은 이를 더욱 심화시킬 소지가 있다. 리픽싱은 CB나 BW를 발행한 기업의 주가가 떨어질 경우 주식 전환가액을 낮추는 옵션을 말한다. 메자닌 투자자 입장에선 리스크를 낮추는 수단이 되지만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그만큼 발행 물량이 많아져 주식 가치가 희석되는 리스크가 증가한다.

메자닌 발행사들도 리스크를 안고 있다. 메자닌 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에 따라 주식 전환을 포기하고 채권 만기 전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을 행사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유 현금이 많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자금조달 창구가 부족한 기업들이 주로 CB와 BW 발행에 나선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동성 문제로 사업 차질뿐만 아니라 기업 존폐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신용분석 강화하고 리픽싱 제도 손봐야”

전문가들은 메자닌과 관련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메자닌 발행 기업의 6.9%가 상장 폐지됐다”며 “기관투자가들이 메자닌 채권을 인수할 때 신용분석을 강화하는 관행을 마련해야 한다. 그중 하나로 국내에 존재하고 있는 전문가 중심의 준공모시장인 QIB(Qualified Institutional Buyers)에서 메자닌 발행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리픽싱 제도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메자닌 투자가 그동안 헤지펀드 중심으로 인기가 높았던 데는 리픽싱의 매력이 크게 작용했다. 이는 기존 주주 지분 희석 문제로 불거져 시장 왜곡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며 “리픽싱 횟수 제한이나 하한 기준을 정해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메자닌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모험자본 공급에 경색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메자닌이 벤처기업이나 성장성 있는 중소기업들의 자금줄 구실을 했는데 메자닌에 대한 투자의 매력도가 떨어지게 되면 모험자본 유입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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