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장수촌 일본 오오기미 마을을 가다] 장수하는 뇌의 비결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3 10: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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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기미 마을의 정신 건강법…공유하는 삶 ‘모아이’가 중요한 수명 연장 수단

일본은 2012년 ‘2차 건강일본 21(21세기 국민건강만들기 운동)’을 공표했다. 목표는 ‘국민이 서로 지지하면서 희망이나 사는 보람을 가지고 건강하고 여유 있게 생활할 수 있는 활력 있는 사회 실현’이다. ‘희망’과 ‘사는 보람’은 정신적 건강을 의미한다. 또 오래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능으로 ‘정신 건강’을 꼽았다. 한마디로 ‘장수하는 뇌’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시사저널은 그 비결을 살펴보기 위해 세계적인 장수촌으로 유명한 오키나와 오오기미 마을(大宣味村)을 찾았다.

올해 100세를 맞은 긴조 데르 할머니(오른쪽)는 사람들을 만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 시사저널 노진섭
올해 100세를 맞은 긴조 데르 할머니(오른쪽)는 사람들을 만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 시사저널 노진섭

10월23일 오전 9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촌인 일본 오키나와 북단에 있는 오오기미 마을 공민관(우리의 마을회관이나 주민센터)에 이 마을 노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대부분 80~100세 노인이지만 차 대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속속 도착했다. 간혹 지팡이를 짚는 노인은 보였으나 허리가 굽거나 거동이 심하게 불편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80대 한 할머니는 아침 일찍 고구마로 만들었다는 간식거리를 가지고 와서 15명 남짓한 노인들과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잠시 후 오키나와 민요가 나지막이 흐르는 가운데 노인들은 이 지역 사회복지연합회 소속 사회복지사가 시범을 보인 체조를 따라 했다. 팔 올리기나 발 돌리기 등인데 체조라기보다는 음악에 맞춰 율동에 가까운 동작을 20분 정도 했다. 그들은 10분 휴식 시간에는 차를 마시며 수다 보따리를 풀었다.

잠시 후 사회복지사는 미니 운동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노인들을 청팀과 백팀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한 사람에게 고무공을 4개씩 나눠줬다. 바닥에 펴둔 양궁 과녁판 같은 곳에 공을 던져 한가운데에 가장 가깝게 던진 팀이 이기는 게임이다. 시멘트 바닥에 튕긴 공은 이리저리 흩어지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노인들은 나름 신중한 표정으로 공을 던졌다. 공이 가운데로 가면 손뼉을 치며 함성을 질렀고 그렇지 않을 땐 아쉬워 탄식했다. 이날은 청팀이 이겼다. 노인들은 얼마간의 휴식 시간을 가진 후 다시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했다.

이후 사회복지사는 노인들의 혈압을 측정했다. 사회복지사 가미아미는 “대부분은 혈압이 정상이다. 물론 일부 노인은 혈압약을 먹지만 혈압이 잘 조절된다. 이 마을에 당뇨, 치매, 뇌졸중 등 심각한 병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약 1시간의 모임이 끝난 후 노인들은 다시 제각각 흩어졌다. 가미아미는 “예전엔 한 달에 두 번 모였지만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모인다. 이렇게 자주 모이는 것이 이곳 노인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 비결인 것 같다. 공 던지기 게임은 노인들의 집중력과 성취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최대한 공을 잘 던지려고 노력해야 하므로 머리를 쓸 수밖에 없다. 율동을 하면 평소 쓰지 않는 근육을 사용하는 등 신체 건강 유지에 좋다. 무엇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 자체가 정신 건강에 이롭다”고 설명했다.

이날 모임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최고령자는 올해 100세를 맞은 긴조 데르 할머니다. 그는 “매주 수요일 공민관에 모인 사람들과 얘기하고 게임을 즐기고 웃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이날 모임에서 가장 많이 웃었다.

1년에 한 번 이 마을에선 노인들을 위한 운동회가 열린다. 올해는 11월3일이다. 오오기미 지역에 속한 17개 부락에서 노인 100여 명이 모여 다양한 신체활동을 한다. 예를 들어 100세-90세-80세-70세가 바통을 주고받는 4대 이어달리기도 있다. 이처럼 오오기미 마을 노인들은 모이는 일이 많다. 정기적인 모임 외에도 부락끼리 또는 개별적으로 자주 만나 삶을 공유한다.

 

의학으로 밝혀진 뇌 건강의 힘 ‘어울림’

오오기미 노인들이 이토록 자주 만나는 배경엔 ‘모아이(模合)’라는 전통이 있다. 기자가 이 마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사회적 지지 그룹이라는 의미의 모아이는 약 90년 전 공공근로 작업을 위해 마을의 자원을 공유할 목적으로 형성됐고 점차 그 기능이 확대돼 현재는 지역사회 네트워크 역할을 한다. 공식적인 모임이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5~10명씩 그룹을 지어 사회적 또는 경제적 도움을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공유하는 모임이다.

긴조 데르요시 오오기미 마을 구장(78·촌장)은 “가족은 아니지만 모아이 구성원은 매우 가까운 사이를 유지한다. 매일 또는 적어도 일주일에 2~3회 만나는 일종의 운명 공동체다. 이 마을 주민이 장수하는 데는 모아이 관습도 한몫했다고 본다. 또 이 마을엔 유이마루(우리의 두레나 품앗이) 정신이 대대로 내려온다. 유이마루는 오키나와 방언으로 상부상조한다는 의미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서로 돕는 이 지역의 관습이다. 지금은 젊은 세대가 많이 도시로 빠져나가 그 의미가 퇴색했지만 이 마을 구성원은 노인을 지지하고 보살피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모아이와 같은 인간관계가 뇌 건강과 장수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캐나다의 발달심리학자 수잔 핀커 박사는 여러 강연을 통해 “내가 만난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에 사는 102세 노인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평생 낙으로 삼는다. 100세 할머니는 평생 가족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 주며 주말에는 이웃에게도 음식을 나눠주는 행복감으로 살아왔다. 과거에는 전염병이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이었지만 지금은 사회적 고립이 공공보건의 위협 요인이다. 고립되지 않고 인간관계를 유지할수록 오래 산다.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할 수 있거나,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의사를 불러주거나 병원에 데려다주거나, 존재의 위기를 느낄 때나 절망에 빠졌을 때 함께 있어 줄 정도로 친한 사람이 많아야 한다. 인간관계는 금연, 금주, 운동보다 더 중요한 수명 연장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직접 사람을 만나는 행동은 질병에 맞서는 힘을 길러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사실은 인간뿐만 아니라 영장류에서도 확인됐다. 인류학자 조안 실크 박사는 암컷 친구가 많은 암컷 개코원숭이가 스트레스 호르몬이 적고 더 오래 살며 새끼도 더 많이 낳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핀커 박사는 “대면 접촉이 많은 사람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고 유방암에 걸렸더라도 혼자 지내는 사람보다 여러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 병을 이겨낼 확률이 4배 높다”고 주장한 바 있다.

요즘은 화상통화나 온라인으로 사람을 접촉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이런 대화는 수명 연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 메릴랜드대학 신경과학 연구팀은 사람을 직접 만났을 때와 동영상으로 접했을 때의 뇌를 MRI(자기공명영상)로 촬영했다. 그 결과 동영상을 볼 때보다 사람을 직접 만날 때 뇌의 여러 부위가 더 활성화되는 것이 관찰됐다. 사람을 만나 눈을 마주치거나 악수하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는 동안 우리 몸에서는 이른바 애정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옥시토신이 분비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이 줄어든다.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돼 고통이 줄고 기분이 좋아진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람들 사이의 어울림에는 2가지 기능이 있다. 정서적 지지 기능과 인지 자극 기능이다. 정서적 지지를 받는 사람은 해마와 같은 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크다는 것이 연구로 밝혀졌다. 정서적 지지를 못 받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고 염증 반응이 생겨 해마와 같은 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손상된다. 또 어울려서 나누는 대화, 다른 사람의 변화, 만나러 가는 행동 등이 뇌의 인지기능을 자극한다. 이런 기능들이 치매를 예방해 뇌 건강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오기미 마을 주민들은 자주 모여 희로애락을 같이한다. ⓒ 오오기미 마을 홍보 자료
오오기미 마을 주민들은 자주 모여 희로애락을 같이한다. ⓒ 오오기미 마을 홍보 자료

낙천적인 생각이 생활화돼 있어

어울림에 익숙한 이 마을 주민들은 그만큼 잘 웃고 낙천적이다. 오오기미 마을에서 30년 동안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긴조 에미코 할머니(71)는 “이 마을 주민들은 목소리가 크고 잘 웃고 잘 논다. 나도 일주일에 며칠은 이웃들과 만나 가라오케도 즐기고 춤도 추면서 웃는다. 이렇게 웃으며 떠들고 나면 스트레스가 쌓일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기자에게 항상 웃는 낯으로 대했다. 주민들의 미소가 처음엔 이방인에 대한 예의로만 여겼는데 알고 보니 오키나와 역사와 관련이 있다. 과거 오키나와는 작은 왕국이어서 다른 나라의 침략을 자주 받았다. 또 토양도 척박해 농사도 어려운 지역이었다.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신뢰하고 도와야 생존할 수 있었고 한탄만 해 봐야 해결될 일도 없었다.

오키나와 공무원과 시의원을 지낸 후 노년을 보내기 위해 오오기미 마을에 정착했다는 80대 데루야는 “오래전부터 오키나와 사람들은 평화주의자들이다. 특히 오오기미 마을 사람들은 더 그렇다. 태평양전쟁 당시 총을 쏘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손가락 마디를 잘랐을 정도다. 외부의 침략과 척박한 생존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곳 사람들끼리 낙천적인 마음가짐으로 뭉쳐야 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예전부터 태풍 때문에 고기를 잡지 못해도 실망하는 법이 없다. 다음날 고기를 잡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처럼 평화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 정신 건강을 강하게 만든 버팀목”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연구로도 확인됐다. 류큐대학의 가즈히코 히라라 교수는 오키나와 여러 장수촌의 사회, 의료, 건강, 과학, 영양, 요양, 사회, 심리 등 다양한 요인을 분석하는 ‘장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장수 요인으로 자연환경, 생활습관, 정신풍토 등 3가지를 꼽았다. 신체적 건강보다 정신 건강이 주요했다는 결론이다. 도시의 경쟁 사회처럼 억척스럽게 살지 않고 자연과 함께 느리게 생활하는 여유로운 정신풍토가 오키나와 장수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 오키나와 출신 사이타마 여자영양대학 미야기 시게지 교수는 ‘테게주의’를 강조한다. ‘테게(大槪)’는 너무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오키나와 사투리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는 습관에 스트레스를 모아두지 않는 테게주의도 이 지역 사람의 정신 건강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신체 조건보다 정신 건강이 장수 뇌의 비결

웃음과 긍정은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웃음은 면역력을 높이고 혈압을 안정시키며 혈당치를 낮춘다는 사실을 비디오카메라와 MRI로 증명한 독일의 연구 결과도 있다. 결국 오키나와 지역의 장수는 신체적인 특별한 조건보다는 그 지역 특유의 정신풍토가 주요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국제노화학회 공동연구팀은 수년에 걸쳐 오키나와 100세인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모아이(운명 공동체), 이키가이(사는 보람), 작은 그릇(소식) 등 3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이 팀의 일원인 내셔널 지오그래픽 작가 댄 뷰트너(장수 전문가)는 여러 강연을 통해 “수명을 결정하는 요인 중 유전자는 10~20%를 차지하고 나머지 80~90%는 생활양식이다. 100세인의 생활양식을 살펴보면 생명 연장의 비결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마을 노인회가 1993년 오오기미 마을이 장수촌임을 알리기 위해 세운 장수비 ⓒ 시사저널 노진섭
이 마을 노인회가 1993년 오오기미 마을이 장수촌임을 알리기 위해 세운 장수비 ⓒ 시사저널 노진섭

일본 오오기미 마을은?

일본 오키나와 북단에 있는 오오기미 마을은 1993년 4월 건강한 고령자 비율이 일본에서 최고 높은 지역이라는 의미를 담아 ‘장수 일본 제일’을 선언했다. 그때 세운 장수비(碑)가 오키나와 58번 국도 변에 있다. 마을 노인회가 세운 그 장수비엔 “80살은 사라와라비(어린 아이) 90살에 (저승사자가) 마중 나오면 100살까지 기다리라 하고 돌려보내라. 우리는 늙어가면서 더욱 왕성해진다. 장수를 논한다면 우리 마을로 오라. 자연의 은혜와 장수의 비결을 전수받아라. 우리 오오기미 마을 노인들은 이곳을 일본 제일의 장수 마을이라고 당당히 선언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6년 이 마을을 ‘세계 제일의 장수 마을’로 인정한 바 있다. 최근 지역 신문에 따르면 오키나와 인구 약 130만 명 가운데 100세인 1154명이 161개 군도에 흩어져 산다. 최고령자는 114세다. 이 가운데 오오기미 마을은 100세 이상(최고령자 109세)인 사람 16명이 있는 대표적인 장수촌이다. 이 마을 인구가 약 3000명인 점을 고려하면 가장 많은 100세인이 한데 모여 있는 셈이다. 또 이 마을 주민 3분의 1 이상이 65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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