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마을 노인들은 바쁘고 바쁘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3 10: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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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장수촌 일본 오오기미 마을을 가다] 장수하는 뇌의 비결② ‘평생 현역’의 삶 살아

일본 오키나와 북단에 있는 장수촌 오오기미 마을 주민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기자는 그 마을 어귀 등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닐 때 ‘이곳 노인들은 바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은퇴한 사람들이 바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를 올해 100세인 긴조 데르 할머니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긴조 할머니는 “오전 5시에 일어나 실을 뽑고 직물을 짜는 생활을 93살까지 해 왔다. 아침식사 후엔 산에서 땔감 35kg을 져서 날랐다. 점심식사 후엔 덥기도 해서 잠시 낮잠을 잤다. 지금은 오전 일이 많지 않고 피곤하지 않아 낮잠을 자지 않는다. 매일 할 일을 정해 두는 편이다. 오늘도 오전엔 공민관에서 모임이 있고 오후엔 마무리할 밭일이 있다. 내일은 집 청소와 반찬 준비를 할 예정이다.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다. 밤 10시에 잠자리에 든다”고 말했다. 오오기미 마을 노인들은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꼭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바쁘게 살기 위해 날마다 다른 일정을 만든다는 말이다.

일본 오키나와 오오기미 마을 주민들은 바나나 나무에서 실을 뽑아 옷감을 만드는 바쇼후를 전통 산업으로 이어왔다. ⓒ 오오기미 마을 홍보 자료
일본 오키나와 오오기미 마을 주민들은 바나나 나무에서 실을 뽑아 옷감을 만드는 바쇼후를 전통 산업으로 이어왔다. ⓒ 오오기미 마을 홍보 자료

몸을 움직이는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

긴조 할머니가 평생 해 온 실을 뽑고 직물을 짜는 생활은 이 지역의 전통 산업이다. 오키나와 전역에 걸쳐 바나나 나무 같은 파초과 식물이 많은데 500여 년 전부터 오키나와 사람들은 집마다 키운 바나나 나무에서 실을 뽑아 바쇼후를 만들어왔다. 바쇼후는 바나나 나무의 섬유로 만든 오키나와 전통 옷감이다. 이 옷감은 부드럽고 가벼워 고급 기모노 재료로 사용했고 질긴 성질도 있어 작업복을 만들 때 요긴했다.

긴조 데르요시 오오기미 마을 구장(78·촌장)은 “오오기미 마을 노인들은 새벽에 일어나 밭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점심엔 더워서 외부활동을 줄이고 낮잠을 잔다. 다시 저녁에 나와 활동한다. 바쇼후는 이 마을의 전통적인 산업이자 삶이다. 집마다 실을 뽑고 옷감을 짜는 일을 평생 해 왔다”고 소개했다. 이 마을에선 낮에 주민들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 밭일을 하러 갔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집 근처에 밭을 일궈 웬만한 채소와 과일은 자급자족하는 것이 이 마을 생활습관이다. 밭에서 재배한 쑥, 생강, 심황도 자주 먹었다. 연구자들은 이런 습관을 ‘의료용 정원을 가꾼다’고 표현한다. 매일 밭일과 같은 실외활동을 하면서 햇볕을 충분히 쬔다. 비타민D가 부족하지 않아 뼈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됐다. 그만큼 활동하기에 수월해 나이가 들어도 여러 신체활동을 충분히 하는 선순환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다.

일본 오오기미 마을과 이탈리아 사르디니아 장수인의 공통점은 별도로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평생 몸을 움직이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오키나와에 사는 104세 할머니는 하루에 30~40번 방바닥에서 일어나고 앉는 생활을 평생 이어왔다. 사르디니아 사람도 어디를 가든 수직으로 된 계단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구조의 마을에서 생활해 왔다.

 

온화한 기후로 연중 실외활동 가능

꾸준한 신체활동은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필수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가 운동이라고 표현하지만 굳이 특별한 운동이 아니더라도 꾸준한 신체활동은 뇌 건강에 유리하다. 중등도(숨이 약간 찰 정도의 강도) 신체활동은 뇌 혈중 BDNF라는 신경영양물질 농도를 높인다. 이는 손상된 신경세포 재생을 활발히 하고 혈액순환을 좋게 해 신경세포 기능을 높인다. 또 치매를 일으키는 물질(아밀로이드 베타)을 청소하는 기능도 있다”고 설명했다. 종일 몸을 움직이는 생활을 하는 동시에 잠을 자는 시간을 정확하게 유지하는 것도 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습관이다. 80대인 데루야 할아버지는 “나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는 날을 빼곤 대체로 10시에 잠자리에 든다. 몇 시에 잠을 자든 일어나는 시각은 오전 3시다. 일어나는 시각은 조금씩 달라도 이 마을 사람들은 대체로 7~8시간은 잔다. 일어나서 산책하고 마을 체육관에서 운동을 한다. 저녁에도 30분 정도 산책한다”고 말했다.

100세인 긴조 할머니를 포함해 오오기미 마을 주민들 사이엔 은퇴라는 개념이 없다. 평생 현역인 셈이다. 평생 현역처럼 활발한 신체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 지역의 자연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오키나와는 아열대 해양성 기후 지역이어서 연중 기온 차가 크지 않다. 연평균 기온이 22도이고 겨울철에도 10도 안팎이어서 연중 야외활동에 큰 무리는 없다. 긴조 데르요시 구장은 “물론 여름에 40도를 넘는 폭염에다 태풍도 찾아온다. 그렇지만 연중 온화한 날씨는 실외활동을 하기에 좋다. 몸을 그만큼 많이 움직이므로 오래 사는 것 같다. 겨울에도 기온이 보통 12~13도이고 매우 추울 때도 10도 정도”라고 설명했다.

60대 노인이 한강시민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60대 노인이 한강시민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1.4kg 뇌 사용법

뇌과학자 “뇌도 근육처럼 운동으로 발달시킬 수 있다” 

뇌과학자인 존 레이티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10월2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9 창의미래포럼’에서 ‘뇌 1.4kg의 사용법’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뇌 발달을 위해 운동이 필수라고 역설했다. 레이티 교수는 “신체활동과 뇌의 연관성을 과학적으로 밝힌 논문이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운동으로 인한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의 활성화다. BDNF는 뇌 신경세포의 성장과 발달을 촉진하는 필수 성장 인자다. BDNF는 우울증이나 스트레스를 예방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지기능과 기억력과도 연관성이 있다. 한 번의 운동은 약물을 복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알려졌다. 장기간 규칙적으로 운동한 사람은 기억력과 정보종합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 크기가 이전보다 커진 것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2015년 국제학술지(분자정신의학)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년기 비만한 사람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보통 사람보다 높다. 레이티 교수는 “체질량 등급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알츠하이머병 발병 시기가 6개월 반씩 앞당겨진다는 게 논문의 결론이다. 몸을 잘 움직이지 않는 노인에게 1~12개월에 걸친 운동 프로그램을 진행했더니 인지능력 테스트에서 점수 향상이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보건복지부는 일주일에 최소 75분 중강도 운동을 권장한다. 레이티 교수는 “한 번에 최소 10분 이상 운동을 지속하는 것이 좋다. 하루 15분의 고강도 운동은 사망률을 22% 낮춰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오르내리기, 걷기, 근력운동, 요가, 춤, 실외 운동 등 언제 어디서든 심박 수를 높여주는 활동을 습관화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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