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영·허문회 감독 파격 발탁, 이런 이유 있었다
  • 이상평 야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0 13: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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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명성 아닌 ‘데이터’로 야구 그라운드 지휘한다
삼성·롯데의 허삼영·허문회 감독 선임이 시사하는 새로운 트렌드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다양한 스태프들과 데이터를 다루는 세이버 메트리션(야구통계 전문가)들을 고용해 그들이 분석해 낸 결과를 현장에서 활용하기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러면서 ‘오프너’나 ‘불펜데이’ ‘4인 외야’와 같은 기존 야구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들이 도입되었고, 현재의 야구는 과거의 야구와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의 스포츠가 되었다. 그간 많은 팀과 선수들이 데이터를 활용하며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고, 이제 이런 데이터가 빠진 메이저리그는 상상하기 힘들어졌다.

국내에서도 히어로즈, NC, SK 같은 신생팀 중심의 선진적인 구단들이 타 구단들보다 이런 방식을 빠르게 받아들여 강한 팀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서 최근 들어 다른 구단들도 기존 한국 야구에 생소하던 데이터 분석이라는 분야에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현장에서 활용하기 시작했다.

(왼쪽)롯데 자이언츠 허문회 감독 (오른쪽)삼성 라이온즈 허삼영 감독 ⓒ연합뉴스·뉴스1
(왼쪽)롯데 자이언츠 허문회 감독 (오른쪽)삼성 라이온즈 허삼영 감독 ⓒ연합뉴스·뉴스1

단점 보완할 수 있는 데이터 친화력의 중요성

이런 데이터 야구가 트렌드로 등장하면서, 오늘날 가장 이상적인 감독은 데이터 자체를 다룰 수 있는 선수 출신 감독이 꼽힌다. 그러나 선수 출신으로 세이버 메트리션급 데이터 활용 능력을 갖춘 감독은 현재 메이저리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오늘날 감독들에게 요구되는 항목으로는 이런 데이터를 받아들이거나 활용할 수 있는가, 즉 데이터 친화력과 함께 이를 선수단과 현장조직이 받아들일 수 있게 잘 전달할 수 있는 소통 능력이 있는가 하는 점에 집중되고 있다. 최근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가 선임한 허삼영, 허문회 신임 감독은 이런 부분에 강점이 있는 인사들로, 최근 야구의 트렌드를 명확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양 구단의 데이터 야구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데이터 친화력의 중요성은 올해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승승장구하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키움 히어로즈의 사례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키움의 가을 돌풍을 이끈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장정석 전 감독의 빼어난 불펜 운용을 바탕으로 한 구원투수진의 압도적 활약이었다. 그는 플레이오프 이후 인터뷰에서 자신이 펼친 불펜 운용에 대해 이런 설명을 내놓았다. 불펜 투수가 위기 상황을 막아낸 다음, 그다음 이닝에도 계속 등판했을 경우 실점 확률이 높아진다는 데이터에 철저히 따랐다는 것이다. 즉, 조상우 투수가 위기 상황인 7회에 등판해 실점 없이 잘 막았다고 해도, 계속 8회에도 등판시킬 경우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8회에는 다른 투수로 교체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자신의 감독 부임 이전부터 축적해 놓은 데이터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례는 데이터 친화력이 최근 감독들에게 굉장히 필요하고 중요한 능력임을 보여준다. 물론 불펜 운용에서 이른바 명장이라고 불리는 감독들은 본인의 경험 혹은 직감으로 이런 내용을 터득하고,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데이터 친화력이 높다면,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높지 않더라도 데이터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실제로 포스트시즌에서 빼어난 불펜 운용을 보여준 장정석 전 감독은 외야수 출신이다.

 

전달할 수 있는 소통 능력의 중요성

허삼영 감독의 깜짝 선임은 이런 데이터 친화력의 중요도를 보여주는 선택이다. 허삼영 감독은 올해 만 47세로 비교적 젊다. 프로 경력은 5년에 불과하고, 1군 등판 경기 수는 고작 4경기뿐인, 대다수 사람이 들어본 적조차 없는 무명의 투수였다. 또한 은퇴 이후 프런트의 전력분석원으로 대다수 시간을 보내며 현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 왔다. 전력분석팀장을 맡은 경력 때문에 몇몇 언론 보도에서 그를 데이터 전문가로 평하지만, 삼성에는 사실 전문적인 데이터팀이 존재하지 않는다. 1년 전에 데이터 인력을 1명 뽑았을 뿐이다. 따라서 데이터 전문가는 아니고 전력분석 전문가라고 하는 것이 맞다.

다만 내부 관계자에 의하면, 그가 데이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고, 열려 있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데이터 친화력이 비교적 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삼성이 코치와 같은 지도자 경험조차 전혀 없는 무명의 프런트 출신 허삼영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 삼성의 데이터 야구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르나우 단장은 2018년 맥킨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조직에 데이터 시스템을 정착시킨 과정을 설명한 바 있다. 그 인터뷰에서 르나우는 시프트(수비 위치 조정)의 예시를 들었다. 선수들과 코치들에게 시프트를 소통 없이 지시했던 기간에는 선수들은 물론이고 코치들도 불만이 많았고, 성과가 좋지 않았던 사실을 밝혔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선수들을 모아 시프트의 근간이 되는 데이터를 공유했고 이에 대해 소통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이후 시프트에 대한 불만이 줄고, 성과 역시 증가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시키는 것을 하는 것보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하고 시행하는 사람이 더 효율적인 능률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르나우 단장의 인터뷰는 야구 현장에서의 데이터 활용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줌과 동시에 현장과 프런트 간의 소통이 데이터 야구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롯데 자이언츠는 미국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 프런트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던 성민규 단장이 갓 부임한 팀이다. 그는 부임과 함께 자신을 데이터 신봉자로 표현하며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결정 프로세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데이터 분석을 담당하는 R&D파트를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실제로 국내외의 다양한 데이터 전문가들을 프런트에 수혈했다. 그러나 르나우 단장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중요한 것은 현장의 플레이어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롯데 선수단과 현장의 조직이 성민규 신임 단장이 강조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현장과 프런트를 이어줄 소통 능력이 뛰어난 가교가 필요하다. 성 단장 역시 신임 감독을 뽑는 데 이런 점을 적극 고려한다고 밝혔고, 현장에서 소통 능력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는 허문회 전 키움 수석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며 데이터 바탕의 프로세스 도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최근의 야구는 1990년대 이전의 야구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발전했고 달라졌으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를 유발하고 있는 수많은 스태프들과 데이터들은 이제는 야구와 떼놓을 수 없는 관계이며, 최근 야구의 트렌드 그 자체다. 롯데와 삼성의 이번 감독 선임은 한국에도 이 트렌드가 완벽하게 연착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삼성과 롯데는 당장의 직접적인 전력 보강 대신 전체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구단 체질 개선을 선택했다. 구단의 체질 개선이라는 양 팀의 선택을 지켜보는 것 역시도 우리 야구팬에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과연 양 팀이 선택한 데이터를 근거로 한 의사결정 과정 도입은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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