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슬립》, 《샤이닝》의 유산을 멋지게 이어받다
  • 허남웅 영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9 14: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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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x 마이크 플래너건 x 스탠리 큐브릭 = ‘탁월한 조합’

* 이 기사에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와 관련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티븐 킹 소설이 나오면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왕’ 팬이다. 넷플릭스 콘텐츠 중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의 작품이면 무조건 플레이 아이콘을 누르는 열혈 팬이다. 그래서 내게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플래너건이 연출한 《닥터 슬립》은 무조건 ‘올해의 영화’다. 맞다. 이 글은 팬의 입장에서 개인적 편파로 쓰는 공평하지 않은 리뷰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토런스가 돌아왔다

개인적인 공포영화 베스트 목록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는 작품이 있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이다. 《닥터 슬립》은 《샤이닝》 이후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은 대니 토런스(이완 맥그리거)다. 《샤이닝》에서 오버룩 호텔에 틀어박혀 쓰려는 소설은 단 한 줄도 못 쓰고 ‘놀지 않고 일만 하면 바보가 된다’는 문장만 ‘Ctrl+C’로 수백 페이지를 남겼다가 미치고 만 잭 토런스의 아들이다.

아버지 도끼질을 피해 오버룩 호텔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대니는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술을 진정제 삼아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모두가 술주정뱅이라고 놀리는 중 단 한 명, 일면식도 없는 빌리(클리프 커티스)가 대니의 탁한 눈동자 속에 겁먹고 웅크린 어떤 사연을 감지하고 지낼 곳과 일자리를 베푼다.

대니의 눈에는 죽음이 보인다. 어릴 적 대니는 악령 들린 오버룩 호텔에서 핏물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엘리베이터, 쌍둥이 소녀, 벌거벗은 채 욕조에 몸을 숨기고 있는 할머니 유령 등 별의별 것을 목격하고 겪었다. 지금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앞둔 이들이 편하게 세상과 작별하는 데 도움을 주면서 ‘닥터 슬립’ 호칭을 얻었다. 그때 강력한 샤이닝 능력을 가진 12살 소녀 아브라 스톤(카일리 커란)에게서 공간을 초월한 메시지가 당도한다.


큐브릭이 싫어요

원작자 킹은 《닥터 슬립》을 《샤이닝》을 잇는 멋진 속편이라고 호평했다. ‘오피셜’이니 개인적 편파는 아니다. 《닥터 슬립》에 관한 킹의 평이 실린 기사를 보고는 ‘귀여운 구석이 있어’라며 키득 웃었다. 《샤이닝》을 잇는 멋진 속편이라고? 어떤 《샤이닝》을 말하는데? 개인적으로 《샤이닝》의 소설과 영화 버전을 모두 좋아하는데, 킹은 유독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싫어했다.

이 사연은 킹과 큐브릭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유명하다. 킹의 목소리다. “영화와 책의 차이라면 영화는 얼음으로 끝나고 내 책은 불로 끝난다는 점이다.” 점잖게 얘기했지만, 《샤이닝》 개봉 당시 불로 끝나는 자신의 소설을 어떻게 얼음으로 끝낼 수 있으냐며 노발대발했던 그다. 화가 풀리지 않았던지 킹은 직접 메가폰을 잡고 《샤이닝》을 소설에 충실한 버전의 영화로 만들었다. 쫄딱 망했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플래너건 감독이 《닥터 슬립》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가장 고심했던 게 킹의 소설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큐브릭의 영화 또한 살릴 수 있는 절충안이었다. 자칫 어느 한쪽으로 기운다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격이었다. 고심 끝에 플래너건은 킹을 찾아가 결심한 바를 밝혔다. “소설과 영화적 유산을 결합하면서 큐브릭의 버전에서 빠졌다고 느낀 부분을 해소해 주겠다.” 얼씨구나! 킹은 영화화를 허락했다.

킹은 영화를 본 후 만족감을 느끼며 “플래너건 영화는 성인이 된 대니 토런스의 이야기를 포용적으로 해석하면서 두 가지를 결합했다. 원작 소설의 훌륭한 각색작인 동시에 큐브릭이 만든 영화의 멋진 속편이다. 플래너건은 영화 《샤이닝》에서 일어난 일이 책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말이 되게 만들었다”고 큐브릭 영화까지 포용하며 플래너건을 향한, 영화 《닥터 슬립》을 향한 양손 엄지 척을 들어 보였다.

극 중 팀을 이룬 대니와 아브라가 아이들을 먹어치우는 로즈 더 햇(레베카 퍼거슨)에 맞서는 것처럼 내게는 이 영화가 조금 과장해 해석하면, 킹이 플래너건과 《닥터 슬립》으로 의기투합해 영화 《샤이닝》에 대해 갖고 있던 악감정을 속 시원하게 풀어버리는 이야기다. 영화 《닥터 슬립》의 클라이맥스에서 대니는 잭이 아내와 아들을 쫓다 얼어죽은 오버룩 호텔로 돌아가 보일러실을 터뜨려 활활 불태운다. 소설 《닥터 슬립》에는 실리지 않은 설정의 이 장면을 보면서 킹이 지었을 만개한 미소를 상상하면 나는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플래너건이 대세다

로즈 더 햇이 리더로 있는 트루 낫은 샤이닝 능력이 있는 아이들의 영혼을 나눠 마시면서 영생을 꿈꾸는 ‘나쁜’ 샤이닝 능력자들의 비밀 조직이다. 즉 좋은 샤이닝 대 나쁜 샤이닝의 대결이다. 원치 않게 물려받은 능력 혹은 유산을 어떻게 계승하냐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담겨 있는 셈이다. 대니는 죽음을 보는 능력이 오버룩 호텔에서 미쳐버린 아빠의 사연과 맞물리면서 어떻게 보면 축복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자신을 옥죄는 저주로 작용해 죽을 고생을 해 왔다.

트루 낫은 나쁜 아빠, 못된 부모, 악한 어른의 은유다. 그런 세상에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 아니 어떻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 《닥터 슬립》이 궁극적으로 남기려는 질문이다. 《샤이닝》 이후로 오랫동안 고통받던 대니는 《닥터 슬립》에 이르러 오버룩 호텔과 결합한 잭을 불로 태워 살부(殺父)함으로써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아브라는 다르다. 고통받는 대니와 손잡고 힘을 합쳐 자신을 노리던 트루 낫의 악의 손길을 떨쳐내는 데 성공했다. 대니가 살부로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면 아브라는 ‘연대’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킹은 큐브릭의 《샤이닝》을 자신의 뿌리에서 떨쳐내고자 했다. 플래너건은 《샤이닝》의 소설과 영화의 유산을 모두 이어받아 《닥터 슬립》으로 새롭게 계승했다. 플래너건에게 《닥터 슬립》은 《샤이닝》의 영화와 소설로 쓴 새 역사다. 역사를 새롭게 썼다는 건 물려받은 유산을 자기 식으로 해석했다는 의미다. 플래너건은 《닥터 슬립》 이전 《허쉬》 《위자: 저주의 시작》 《오큘러스》 등으로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그 재능을 가장 크게 떨친 건 넷플릭스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이었다.

《힐 하우스의 유령》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가족을 괴롭히던 ‘귀신 들린 집’ 힐 하우스가 불에 활활 타오른다. 이 장면은 《닥터 슬립》의 마지막 장면과 조응한다. 플래너건 공포영화를 꾸준히 본 팬이라면 《닥터 슬립》의 트루 낫 멤버 중 플릭 할아버지가 《제럴드의 게임》에서 남편과 여행 왔다 외딴 별장에 홀로 남겨진 아내의 환상 속에 비치던 문라이트 맨을 연기한 카렐 스트류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플래너건은 《샤이닝》의 유산과 자신의 영화적 능력을 연대해 또 하나의 멋진 공포물 《닥터 슬립》을 완성했다. 대니는 죽음을 보았지만, 편파의 샤이닝 능력을 지닌 나는 플래너건에게서 공포물의 현재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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