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입수] 정두언 “교수에게 장관 맡겨 성공한 정권 있었나”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8 14: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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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정두언 전 의원 미공개 자서전 마지막 회

“정치라는 수렁에 빠졌다.” 

고(故) 정두언 전 의원은 시사저널이 최초로 공개하는 미공개 자서전 초고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운명처럼 정치라는 수렁에 한 발짝 한 발짝 빠져들어갔다”고 표현했다. 권력을 쟁취해야만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는 ‘수렁’에서 정 전 의원은 몸이 부서져라 뛰었다. 그는 “이명박 서울시장 만들기, 서울시 정무부시장,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의 역풍을 뚫고 서울 서대문을에서 최초의 보수 정당 출신 국회의원,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이명박 정부 내내 소장 개혁파로서의 역할 자임과 탄압, 여권에 대한 민심 이반 속에서 강북에서 가까스로 3선 연임, 그리고 검찰 수사와 사법처리라는 시련 등등 비교적 시끄럽고 요란하게 정치를 해 왔다”고 자평했다. 누구보다 권력의 민낯을 여실히 경험한 사람으로서 정 전 의원은 생전에 대안과 미래상 제시에도 매진했다. 자서전 초고에는 유독 권력의 올바른 활용법에 관한 고민이 많이 담겨 있다. 

지난 2012년 2월 한나라당 신임 당직자 조찬회동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악수하는 정두언 전 의원 ⓒ 연합뉴스
지난 2012년 2월 한나라당 신임 당직자 조찬회동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악수하는 정두언 전 의원 ⓒ 연합뉴스

“권력은 나누면 커지고 움켜쥐면 작아진다” 

정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 공신’으로 불렸지만, 기쁨은 찰나였다. 쟁취한 권력으로 좋은 정부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은 대선 직후부터 깨졌다. 정 전 의원은 “권력 주변은 정권 창출에 기여한 사람들이 아니라 대선 과정에서 정치자금을 관리하며 실세가 된 친인척, 즉 이권을 잡은 사람들 위주로 돌아갔다”며 이를 도화선으로 이명박 정부가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비단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정 전 의원은 지적했다. 그는 “‘87년 체제’ 이후 정권마다 실패하는 과정이 판박이처럼 비슷했다”면서 “한두 번도 아니고 모두가 그렇다면 뭔가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의원은 대표적인 이유로 대통령이 공공재인 권력을 사유물로 생각하는 점을 들었다. 아직도 ‘절대왕조식 권력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 전 의원은 “김영삼·노무현 대통령이 어느 정도 예외였고 나머지, 특히 기업가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권력이 나눠지는 걸 무척 경계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의 경우 재임 당시 권력을 마치 벌어들인 사유재산으로 여긴 듯하다고 정 전 의원은 분석했다. 

최고권력자가 권력 나누는 일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정 전 의원은 강조했다. 그는 “권력은 나누면 커지고 움켜쥐면 작아진다고 믿는다”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라이벌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을 장관 중의 장관인 국무부 장관에 임명한 뒤 권력이 작아졌는가. 국무부 장관의 힘이 크면 대통령 힘도 덩달아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전 의원은 “자기 권력이 줄어들까봐 두려워 소신 있게 일할 힘 있는 장관보다 고분고분한 스타일의 무난한 장관만을 선택하는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성공할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확률보다 낮다”고 덧붙였다. 

정 전 의원이 2012년 7월12일 국회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주자였던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 전 의원이 2012년 7월12일 국회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주자였던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역대 정권, 오만과 독선으로 무기력해져”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맞았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10월28일부터 11월1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7명에게 설문(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 자세한 여론조사 개요 및 결과는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한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47.5%), 이른바 국정 지지도는 부정 평가(49.1%)보다 낮았다. 국정 지지도는 국가 지도자가 권력을 잘 사용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바로미터다. 

정 전 의원은 “대권을 얻으려면 좌는 우클릭, 우는 좌클릭해 중간층을 잡아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어느 정권이든 집권 후에는 중도를 떠나 좌든 우든 자기 길을 고집하다가 도중에 레임덕을 만나 무기력한 정권으로 전락하고 만다”면서 “87년 체제 이후 한국 지도자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오만과 독선으로 자기 길을 가다가 몰락했다”고 탄식했다. 

정 전 의원이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든 것은 관료집단과의 관계였다. 그는 “역대 정부가 모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관료집단에 대한 이해 부족 또는 활용 실패”라며 “지금까지 단임제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관료집단을 불신함으로써 주로 대학 교수, 법조인, 언론인 등을 중용해 나랏일을 맡겼다. 이후 국정운영이 제대로 된 적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관료집단을 잘 관리하는 게 권력을 쥔 대통령에게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정운영에 관한 모든 정보, 기술, 노하우, 네트워크 등을 독점하고 있는 관료집단을 백안시해서는 절대 안 된다”며 “관료들을 적절히 변화시키고 관리해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관료집단을 불신하며 일하면 무엇이든 제대로 될 턱이 없다”면서 “이런 이유로 어느 정권이든 임기 후반부에 가면 결국 (밀려나 있던) 관료들이 국정운영의 중심으로 복귀하는 현상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대통령을 대리해 관료들을 이끄는 장관에게는 인사권을 보장해 조직을 제대로 장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정 전 의원은 강조했다. 

 

“청와대, 총리실과 역할·기능 분담해야” 

관료 생활 대부분을 국무총리실에서 보낸 정 전 의원은 정계 입문 이후에도 총리의 역할론과 미래상에 대해 꾸준히 고민했다. 그는 권력 오남용의 폐해를 막기 위해 분권형 대통령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대통령은 외교·안보·국방 등 외치를, 국회에서 선출되는 총리는 국정의 내치를 맡는 것으로 총리와 국회의 권한이 강화되는 제도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은 자서전 초고에 “이 방안(분권형 대통령제)은 헌법 개정이라는 장벽으로 인해 당분간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헌법 개정 없이도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청와대와 총리실이 역할·기능을 분담하는 형태의 정부 조직 개편으로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청와대에는 대통령 비서실장, 정무수석, 홍보수석, 외교안보수석, 민정수석 등을 두고 경제, 사회문화, 복지 등 내각의 기능과 연계된 수석실은 총리 소관으로 보내는 것이다. 

정 전 의원은 “이렇게 되면 정부 전체의 국정운영에 있어 비효율과 업무 지연이 없어지고, 책임 소재도 명확해진다. 특히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을 받는 사람이 총리가 되면 대통령의 과중한 업무 부담이 대폭 줄어 주요 국정과제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청와대와 내각이 긴밀히 연계해 움직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비던 정 전 의원 ⓒ 정두언 전 의원 인터넷 블로그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비던 정 전 의원 ⓒ 정두언 전 의원 인터넷 블로그

“정치인 삶 적응한 모습에 스스로 놀라”   

정 전 의원은 자신을 ‘실패한 정치인’으로 칭했다. 주변인들에게 정치인 대신 방송 PD를 했으면 좋았겠다는 푸념도 곧잘 했다. 이에 곧이곧대로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 전 의원이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정면 도전하며 한국 정치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기 때문이다. 

정치는 정 전 의원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주기도 했다. 자서전 초고에는 정 전 의원이 2001년 가을 지역구 주민들과 함께 산행에 나섰던 때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묘사돼 있다. 정 전 의원은 “소요산을 오르다가 1년 전 산행 도중 휴식을 취했던 그 바위에서 다시 쉬며 그때 그랬던 것처럼 동두천 시내를 찬찬히 조망했다”며 “2000년 산행 당시 울컥했던 기억이 새로웠다”고 회상했다. 

2000년은 정 전 의원이 처음 도전한 총선에서 패배한 해였다. 정 전 의원은 “낙선 후 재기를 준비하던 중 산을 오르며 ‘지금 내 친구, 동료, 선후배들은 각자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텐데 그 시간에 나는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과 하릴없이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왜 이 꼴이 되었나’ 하는 자괴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며 “(선거 패배 후유증으로) 한동안 방황하다 주위의 격려와 성원으로 가까스로 마음을 잡고 재기에 나섰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정치에 적응하지 못해 진정한 정치인이 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그로부터 1년 후 같은 산에 올랐을 때의 감정을 특유의 위트로 환기했다. 정 전 의원은 “그런데 지금은? 눈물은커녕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일터에서 고생하고 있을 친구, 동료, 선후배들을 생각하니 참 안됐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평일에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과 함께 산에 올라 가을 단풍을 만끽하고 있는 내 모습에 스스로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어느덧 나는 정치에 적응하며 누가 봐도 정치인으로 변신해 있었다”고 했다. 미완성으로 추정되는 정 전 의원의 자서전 초고는 이 대목에서 끝나 있었다. 

‘밥그릇 제대로 챙기려 했던 총리’는 이회창·이해찬  

정 전 의원은 권력 사유화 방지의 핵심으로 늘 국무총리 권한 강화를 꼽았다. 총리실에서의 오랜 관료 생활, 권력의 한가운데서 느낀 소회 등을 종합해 나온 결론이었다. 정 전 의원은 자서전 초고에서 자신이 겪은 ‘최고의 총리’를 짤막하게 소개했다. 

우선 정 전 의원은 “헌법과 법률에 대한민국의 총리는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을 가지며, 내각을 통할해 대통령을 보좌한다고 되어 있다”면서 “그런데 정부 수립 후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을 행사한 총리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총리로서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려 했던, 속된 말로 ‘제 밥그릇이나마 제대로 챙기려 했다’는 기준에 해당하는 ‘최고의 총리’는 김영삼 정부 때의 이회창과 노무현 정부 때의 이해찬 정도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중심제 아래서 총리가 제 밥그릇을 챙겨먹으려면 그만큼 기가 센 사람이어야 한다. 대통령 자체도 그런 총리를 등용할 정도의 그릇이 되어야 할 것”이라며 “(김영삼, 이회창, 노무현, 이해찬) 네 사람은 적어도 그런 면에서는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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