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억지, 무시하는 게 협상의 기본 대응”
  • 박상기 세종대 겸임교수(한국협상학회 부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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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논란’ 트럼프의 협상전략 분석 및 대응전략

※ 본 칼럼은 최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논란과 관련해 한국협상학회 부회장 및 국제협상연구위원장인 박상기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가 시사저널에 기고한 칼럼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전략자산 비용을 포함해 기존의 50배 이상인 600억 달러(약 70조원)가 적정하다고 언론에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KBS 등 국내 주요 언론에서 현재 진행 중인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일제히 방송했다.

참으로 트럼프다운 협상 기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미 협상에서 현재 유리한 협상의 고지를 점하고 있는 쪽이 반드시 미국이라고만 단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미국은 협상의 ABC를 철썩 같이 준수하는 나라다.

즉, 진짜 달성하고자 하는 협상의 목표(Real Negotiation Goal)를 상대가 받아들일 확률이 낮을 때, 초기 요구(Initial Demand)를 과도하게 제시하는 Unacceptable Initial Offer(허용할 수 없는 초기 요구) 습성을 갖고 있다. 이를 유인책 즉, Decoy 전략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그렇다보니 번번히 미국·일본·중국·북한 등에게 당하는 대표적인 기만술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1월6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청사에서 키이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가운데),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1월6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청사에서 키이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가운데),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듯, 지나칠 정도로 수용하기 힘든 요구를 협상 테이블에 정식으로 올리지 않고 우선 언론을 통해 흘리는 이유는, 실질적으로 이 요구사항이 사리에 맞지도 않고, 논리도 사실상 그다지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며, 제대로 타당성을 증명하기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국제협상에서 이런 초기 오퍼는 '대응 자체를 하지 않고 무시하는 게 기본대응'이다. 언론에서도 아예 다루지 않거나, 별 실효 없는 협상트릭으로 폄하하는 게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이다. 

미국의 협상교과서에 이런 말이 있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지나친 요구라도 일단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무조건 요구하라. 안 받아들이면 결렬도 불사하라. 그리고 일일이 논리로 증빙자료를 제시해서 대응할 필요도 없다. 그냥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시간을 보내라. 그러면 결국 합의하든, 타협하든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요점은 끝까지 버티는 것이다. 이를 Acceptance Time 전략이라고 부른다.

미국은 우리에게 자신들이 불안해하는 점 몇 가지를 숨기고 있는 셈이다. 자칫 한국이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에 거부감을 느껴 친중(親中) 쪽으로 선회하면 어떻게 할까? 악화되어 가는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 미국의 대북제재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행동을 하면 어떻게 할까? 일본과의 관계악화로 한반도에서 일본과의 군사외교 공조를 파기해 버리면 어떻게 할까? 

실제로 미국의 지소미아 반대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의 정찰목표인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 동향 파악에서 중요한 정보 획득시스템에 적잖은 피해를 야기했고, 실제 야기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러시아 정찰기와 전투기가 우리 영공 및 일본의 영공을 마음대로 침범한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우리의 전략은 단순해야 한다. 첫째, 현재의 방위비 분담금도 부담스럽다, 증액은 거론할 가치도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둘째,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 전개는 미국의 동북아 헤게모니 전략의 일환이지, 북한을 견제하는 목표가 아니다. 즉 미국에게 우리 영공을 허락하고, 우리의 군사시스템을 이용하게 해주는 것이 본질이다. 따라서 비용지불은 이미 필요한 수준을 넘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셋째, 한반도에서 북한과의 전시 긴장상황 수준이 예전같지 않음을 고려해, 주한미군 배치 전반에 걸친 Down-Sizing을 실시하여, 이번과 같은 불필요한 한미동맹 간의 불협화음이나 대결상황 자체를 예방해야 한다. 넷째, 우리의 정당한 주장에, 경제보복·안보위협 등 동맹으로선 해선 안 될 치졸한 보복행위를 언급할 시, 우리 대한민국 역시 불가피한 선택과 방향전환을 고려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달라는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결코 어려운 상대가 아니다. 미국에 질질 끌려가는 건 협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겁을 먹어서다. 기억하라. 협상은 신이 약자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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