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사피엔스 시대에는 스펙보다 ‘실력’이다
  •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boong33@skku.edu)
  • 승인 2019.11.14 16: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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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붕의 포노사피엔스] 성공의 비결은 팬덤을 만드는 킬러 콘텐츠

디지털 플랫폼이 우리 생활의 근간이 되면서 기업의 성공 방정식도 바뀌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빅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 적용이 필연적이다. 그러나 디지털 혁신을 시도하는 70%의 기업은 실패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 호에서는 성공의 숨은 비결을 알아보자. 자크 아탈리에 따르면 음악 소비, 확장하면 미디어 소비 변화가 인류의 소비 패턴 변화를 미리 보여준다고 했다. 우선 미디어 산업의 변화를 주도하는 유튜브의 성공비결부터 확인해 보자.

2018년 12월8일 서울 송파구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 마련된 생중계 부스에서 중국의 파워 블로거 격인 ‘왕홍’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널을 통해 한국 화장품을 소개하는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왕홍 웨이야-한천수 마스크팩 방송판매 영상 ⓒ 연합뉴스
2018년 12월8일 서울 송파구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 마련된 생중계 부스에서 중국의 파워 블로거 격인 ‘왕홍’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널을 통해 한국 화장품을 소개하는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왕홍 웨이야-한천수 마스크팩 방송판매 영상 ⓒ 연합뉴스

유튜버 생태계에선 안 통하는 학벌과 스펙

2018년 최고의 광고수익을 올린 유튜버는 7살짜리 꼬마 라이언이었다. 라이언의 광고소득이 약 250억원이었으니 사실 보람이가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팔로워 수를 보면 라이언(Ryan's Toy review)이 2230만, 보람이(보람튜브 브이로그)가 2080만으로 거의 근접했다. “엄마 나도 유튜브 방송할래”라고 해서 방송을 시작했다는 보람이. 전 세계에 이런 식으로 방송을 시작한 아이들은 100만 명이 넘는데 한국인 보람이가 세계 톱 유튜버가 되었다. 성공의 비결은 바로 팬덤을 일으킨 킬러 콘텐츠다.

유튜브의 성장은 ‘소비자 권력시대’의 상징이다. 지상파 방송은 정해진 시스템에 의해 대중을 향해 일방적인 방송을 한다. 따라서 소비자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반면 유튜브에서는 소비자가 권력이다. 그들의 선택을 받아야 성공할 수 있다. 포노사피엔스는 ‘스스로 선택하는 인류’로 진화했고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 보람이는 소비자 권력을 통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좀 더 상세하게 보자면 보람이를 권력자로 만든 건 마케팅을 담당한 또래 아이들의 ‘팬덤’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북미·아랍권 아이들까지 보람튜브에 열광하고 스스로 전달하며 퍼뜨린다. 마치 음악 세계에서 2500만 명의 ARMY가 무보수 마케터로 활동하며 BTS를 세계 1위로 올려놓듯이. 팬덤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보람튜브에는 세계 아이들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그것이 성공의 핵심이다. 지상파 방송의 키즈 프로그램은 시청률 1% 이하(KBS 《TV유치원》 0.2%)로 추락한 반면, 아마추어 보람이는 전 세계 2000만 명의 아이들을 사로잡았다. 권력은 이렇게 무섭게 이동해 버렸다.

지상파 방송사에 입사하려면 최고의 학벌과 스펙이 필요하다고 해서 언론고시라고 불린다. 방송사뿐 아니라 거의 모든 권력기관은 대부분 좋은 학벌과 배경을 필요로 한다. 설사 입사했더라도 승진하려면 혈연·지연·학연을 총동원하는 게 상식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어른들은 오직 학벌을 외치고 수능만이 살길이라고 한다. 심지어 부정한 짓까지 거리낌 없이 한다. 그런데 유튜브 생태계에서는 그런 것이 안 통한다. 학벌이 아무리 좋아도 부모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엄청난 스펙을 만들어 갖다 붙여도 결코 실력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는 게 유튜버다. 보람이 학벌을 보면 알 수 있다(유치원 재학 중).

보람이 이전에 대한민국 최고 키즈 방송이었던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의 초기 PD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최고의 유튜버 중 한 명인 대도서관은 고졸이다. 심지어 그는 열심히 일해 대기업 정직원이 되었는데 사표를 던지고 나와 게임방송을 시작했다. 전 세계 유튜버에게 필요한 건 오직 실력이다. 여섯 살 꼬마 보람이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에 엄청난 팬덤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이미 입증했다. 이 혁명이 거의 모든 영역으로 번진다면 아이들의 미래는 수능 점수에 따른 학벌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실력으로 결정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도 팬덤을 만드는 실력으로.

중국 왕홍은 유튜브에서 형성된 팬덤 문명 확산의 대표적 사례다. 뷰티 왕홍으로 유명한 중국의 웨이야는 400만 팔로워를 거느린 유통업계의 슈퍼스타다. 올해 광군제 사전 예약 방송에서 무려 6500만 명이 시청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웨이야가 지난 3월21일 우리나라에서 특별 판매방송을 했다. 85만 개의 상품을 준비했는데 390만 명이 동시 접속해 초당 2만 개의 판매를 기록하며 순식간에 매진시켰다. 웨이야는 이렇게 강력한 무조건적 팬덤을 어떻게 만들 수 있었을까? 성공의 비결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팬들을 위한 물건 하나를 고를 때마다 제 인생을 겁니다.” 

 

팬덤 만드는 힘은 ‘진정성’

그녀가 킬러 콘텐츠를 만든 비결은 진정성이었다. 왜 85만 개나 구입했냐고 묻자 그래야 반값에 살 수 있다고 답한다. 자기가 써본 가장 믿을 만한 상품을 어떻게든 가장 싼값에 팬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엄청난 선투자를 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빠른 배송을 위해 다롄시 시청 공무원, 관세청 직원, 보세창고 직원까지 미리 만나 회의를 한다. 이런 진정성이 축적되어야 팬덤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 팬덤은 거대 자본 투자에 의한 광고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래서 빠르게 성장한다. 2017년 15조7000억원이던 왕홍 매출은 올해 100조원 돌파를 예상하고 있다. 이들의 활약이 확산되면서 광군제(11월11일, 중국 알리바바 쇼핑데이)까지 왕홍 방송이 대세가 되고 있다. 포노사피엔스가 권력이 되는 ‘신소비’ 시대의 막이 오른 것이다.

가수든, 유튜버든, 왕홍이든 성공의 비결은 팬덤을 만드는 힘, 킬러 콘텐츠다. 그리고 그 가장 밑바닥에는 묵직한 울림을 주는 ‘진정성’이 자리하고 있다. 성공의 비결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 권력구조에서 학벌과 인맥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면 이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실력’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 것이다. 비로소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면서 미래를 준비해도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지식을 암기하는 것보다 가족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배려하고 많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 가장 훌륭한 자산이 된다고 얘기해도 좋은 시대가 되었다. 수능학원 다니는 것보다 선현의 지혜가 담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가르쳐도 된다. 그래야 사람의 마음을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 킬러 콘텐츠를 만들 수 있으니까. 인간에 대한 진정성을 기초로 삼고 심도 있는 전문지식으로 무장하면 되는 시대, 진정한 실력 중심의 사회가 열린 것이다. 지금의 학력 중심 시스템에 새로운 활력소가 생긴 것이다. 

일찍이 디지-로그(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 시대 도래를 언급한 이어령 교수는 그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공감능력’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 그래서 배려심 깊은 우리나라에 기회가 왔다고 언급했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진명은 소설 《직지》를 통해 다라니경과 팔만대장경(목판본)을 거쳐 직지심체요절(금속활자본)이 탄생하고 이후 한글이 창제(세계 유일 발명 문자)되었으며 그 힘이 메모리(콘텐츠 저장장치)로 이어졌다고 언급한다. 즉, 우리 민족에게 콘텐츠를 생성하고 전파하는 강력한 힘이 내재적으로 존재한다고 통찰한 것이다. 그 통찰은 포노사피엔스 시대를 통해 꽃피우고 있다. BTS도, 보람이도 동양의 작은 나라라고는 믿기지 않게 콘텐츠의 제작과 전파에서 세계적 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무궁한 잠재력이 우리 산업의 근간인 제조업으로 이어질 때 대한민국의 미래는 또 한 번의 퀀텀 점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명심하자. 내 맘에 자리한 사람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포노사피엔스 시대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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