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잠은 자고 다니냐?”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1 09: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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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또래들은 지금의 수능과는 다른 예비고사를 치렀고, 그다음 세대에는 학력고사가 있었다. 대학 입시 제도가 불과 몇십 년 사이에 그만큼 많이 바뀌었다. 국민학교와 초등학교가 같은 뜻이지만 다른 말이듯, 예비고사나 학력고사를 들먹이면 요즘 말로 ‘빼박’ 옛날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런 변천사를 가진 입시 제도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조국 정국’을 건너오면서 공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데 따른 귀결이다. 개편 방향을 두고 정시 확대 등 다양한 방안이 제기되고 있지만, 수능을 앞두고 그보다 더 마음이 쓰이는 뉴스는 따로 있다. 보건복지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2018년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가 그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9~17세 아동·청소년 10명 중 4명이 수면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잠이 부족한 이유로는 첫째 ‘학원·과외’, 둘째 ‘야간 자율학습’, 셋째 ‘가정학습’이 꼽혔다. 이 조사 결과대로라면 이번 수능도 많은 수험생이 그동안 잠을 내주고 얻었던 것들을 놓고 겨루는 경쟁이 될 것이 빤하다.

아파트 입구에서 자주 마주치는 아이가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그 아이는 늘 저녁 늦은 시각에 집으로 들어간다. 표정은 굳어 있고, 무거운 가방을 짊어 맨 어깨는 기운 없이 처져 있다. 그 아이를 매번 짠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어느 개인의 자식이 아닌 우리 모두의 현재이자 미래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희미해졌지만, 유년기를 돌아보면 사회에서 유용한 지혜나 지식은 대부분 자연과 책에서 얻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숲에서, 개천에서, 혹은 이런저런 책들에서 깨우쳐 얻은 이해력이 사회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믿음도 크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감히 한 가지 제안을 해 보고 싶다.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지 말고, 그들이 내면에 쌓아온 것들을 제대로 평가하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 한 예로 수험생의 독서량과 이해력을 중심으로 점수를 매기는 방법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인턴십이나 표창장처럼 말 많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세상을 배우게 해 주는 책의 소중함으로 눈을 돌려보자. 수시·정시의 비율을 다시 정하는 작업도 필요하지만, 학생들에게 소양을 길러줄 독서의 가치를 되새기는 일 역시 중요하다.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아이들을 더는 죽기 살기의 싸움터로 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지워진 짐을 좀 더 덜어내 주고, 경쟁하는 학업이 아닌 함께 협력해 배우는 학업의 중요성을 일깨울 방향으로 입시 제도가 제대로 틀 잡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아이들에게 잠을 충분히 잘 시간, 책을 볼 시간,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을 좀 더 주어야 한다. 부모들이 ‘찬스’를 쓰면서 전지적 참견 시점으로 성적에 개입하는 그 시간에 자녀들의 인성 함양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 줄 묘안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간이다.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말한 대로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서 잠을 빼앗는 국가 또한 ‘야만’이다. 정녕 아이들에게 “잠은 자고 다니냐”고 더 묻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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