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라는 불편한 이웃과 살아가는 법
  • 최은미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0 07:30
  • 호수 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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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존중과 배려에 기반한 관계 재건 도모해야

한국과 일본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며 함께 발전해 왔다.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성장, 문화교류가 증가했다. 한국에서 스시와 라멘, 일본에서 김치와 불고기, 그리고 한국에서의 일본 영화와 일본에서의 K팝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교류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일본은 편한 나라가 아니다. 일본 음식을 먹고, 일본 상품을 소비하며, 일본 여행을 가면서도 과거사 문제, 독도 문제, 역사교과서 문제 등이 등장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있던 일본에 대한 불편함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리고 역사수정주의적 태도와 과거사 문제를 피곤하게 여기는 모습을 볼 때면 이웃 나라 일본을 마냥 좋아하기에는 한국인으로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은 과거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의 법적 문제를 제기하며 강제동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한·일 간의 역사 갈등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 강화,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으로 이어졌다. 즉, 지난 1년간 역사 분야에서 시작된 양국 갈등이 경제·안보 등의 분야까지 확산되는 유례없는 복합갈등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강제동원 문제는 여전히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한·일 간의 경제 갈등은 어느덧 4개월이 지났으며, 한·미·일 안보협력의 상징인 지소미아 종료까지 불과 1주(11월23일 종료)도 채 남지 않았다. 지난 1년, 한·일 갈등이 악화된 근본 원인은 무엇이고, 향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11월4일 방콕 임팩트 포럼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11월4일 방콕 임팩트 포럼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깊어지는 ‘불신’과 상처받은 ‘자존심’

한·일 갈등은 지난 7월, 일본이 한국을 ‘신뢰할 수 없는 나라’로 규정하며,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를 강화하고, 수출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 극에 달했다. 한국 내 일본 상품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취소 움직임이 일었고, 광화문에서는 일본의 부당 조치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예상치 못한 한국의 강한 반발에 일본은 놀랐고, 한국의 항의는 더욱 거세졌다. 일본은 수출관리 문제는 강제동원 문제와 무관하다고 강조했으나, 명확한 설명 없는 갑작스러운 조치는 설득력을 얻기 어려웠다.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은 한국 내 일본 기업들의 자산 압류 등 현금화 조치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를 심각히 여기지 않는 한국 사회 분위기에 초조해했고, 연일 한국의 대응을 촉구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그리고 일본 기업의 경제적 피해 발생 시, 경제보복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표명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한·일 간의 갈등이 격화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상황은 일본의 경제제재 조치 이후 악화됐다. 한국은 일본의 조치를 ‘경제보복’으로 받아들였고, 역사 문제를 경제 문제로 확산시킨 일본을 비판했다.

한국은 왜 분노했나. 문제는 ‘신뢰’와 ‘자존심’이었다. 일본이 언급하는 신뢰는 비단 강제동원 문제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베 총리가 지지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체결한 위안부 합의가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 사실상 형해화(形骸化·형식만 있고 가치나 의미가 없게 된다는 뜻)된 것에 대한 분노, 실망, 배신감, 그리고 정책 실패에 대한 변명이 ‘불신’이라는 단어로 포장됐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 명확한 이유 없이 반복해서 제기되는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는 프레임은 국가적 신뢰를 기반으로 성장·발전해 온 한국의 국가적 자존심을 해치고, 국제적 위상을 손상시키는 발언이었다. 또한, 일본이 경제제재 조치 대상으로 선택한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조치는 한국의 미래성장을 가로막는 것으로 인식됐다. 세계 기술을 선도해 온 한국 반도체 산업을 경제적 우위에 있는 일본이 위기에 빠뜨린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이는 결국 한국인의 마음속에 자리해 있는 일본에 대한 불편함의 표출과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집단행동으로 이어졌다.

양국 정부는 세계무대에서 상호비방을 이어갔고, 여론은 상대국에 대한 강경조치를 지지하며 반일·혐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일본의 한국인 관광객은 일본의 경제조치가 시작된 지 3개월 만에 전년 동월 대비 58.1%가 줄었다. 불매운동의 주요 대상이 됐던 유니클로와 일본 맥주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7%, 99.9% 감소했다. 한국 내 일본 기업들이 철수하고, 양국을 오가는 항공편도 현저히 줄었으며, 지자체 간의 교류도 중단 혹은 연기됐다. 일본의 일방적인 조치에 대한 우리의 단결과 의지, 노력을 보여주는 결과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를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하기에는 마음이 여전히 불편하다.

 

‘존중’과 ‘배려’에 기반한 관계 재건을

지난 1년간 한·일 양국 갈등의 전개 양상은 우호국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서로에 대한 경시와 홀대로 가득했다. 일본은 한국을 피곤해했고, 한국은 상처받은 국가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단결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힌 것은 비단 상대만이 아니다. 상대를 아프게 하기 위해 꺼내들었던 칼은 자신에게도 상처를 내기 마련이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카드를 꺼내들었을 때, 일본 내 유관기업들은 수출처를 잃었다. 한국 내 일본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시작됐을 때, 한국 내 유관기업과 종사자 등은 어려움에 빠졌다. 양국 관계의 경제적 밀접함에서 비롯된 결과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과 일본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은 불안감과 위기감에 움츠러들었다.

문제에 대한 감정적 대립은 결국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이낙연 총리의 방일과 ‘아세안+3(ASEAN+한·중·일)’에서의 한·일 정상 간의 짧은 만남은 그동안 어려웠던 한·일 관계 개선에 물꼬를 트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10여 분의 짧은 만남에서 깊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겠지만, 양국 정상의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현재 양국의 역사·경제·안보 등 복합적으로 꼬인 실타래를 풀려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국민들의 자존심을 회복시킬 수 있는 충분한 설명과 노력도 필요하다. 일본은 한국에 불편한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웃 국가임은 틀림없다. 한·일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고, 상호 존중과 배려에 기반한 관계 재건을 도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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