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뻣뻣한 엉덩이 통증 ‘강직성 척추염’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4 10:00
  • 호수 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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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로 오인해 방치하면 목과 허리 굳어…병명 몰라 병원 전전하는 ‘진단 난민’ 80%

허리 통증은 무조건 허리디스크라고 생각해 정형외과만 찾을 일이 아니다. 40대 이하(주로 남성)이면서 가만히 있다가 움직이려고 할 때 허리 아랫부분에 통증이 느껴진다면 류마티스내과를 먼저 찾는 게 유리하다. 또 자고 일어난 아침에 허리에 뻣뻣한 통증이 느껴지고, 계속 활동하면 통증이 사라진다면 강직성 척추염일 가능성이 있다. 이명수 원광대병원 관절류마티스내과 교수는 “허리디스크와 달리 강직성 척추염은 허리 통증과 함께 고관절이나 무릎 등 말초 관절이 붓거나 아프기도 한다. 또 발뒤꿈치에 있는 아킬레스건에 통증이 생기기도 한다. 게다가 염증 수치(ESR와 CRP)가 높게 나타났다면 강직성 척추염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류마티스내과 전문의를 찾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강직성 척추염은 척추에 염증이 생겨 점차 척추 마디가 굳어 변형되는 류마티스 질환이다. ‘강직’은 뼈의 여러 마디가 하나로 뭉쳐 움직일 수 없게 된다는 뜻이고 ‘척추염’은 척추에 염증이 생긴 것을 말한다. 방치하면 목과 허리가 굳는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아침에 뻣뻣하고, 활동하면 사라지는 허리 통증

한 번 변형된 척추는 회복되지 않는다. 따라서 일찍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일찍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대한류마티스학회가 전국 26개 대학병원에서 진료받은 10~70대 강직성 척추염 환자 1012명을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했더니 정확하게 진단받지 못하고 진료과를 전전하는 이른바 ‘진단 난민’ 기간이 평균 39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류마티스 전문의로부터 정확한 병명을 듣기까지 약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얘기다.

강직성 척추염 대부분은 엉덩이 관절에 염증이 생기면서 시작된다. 거의 모든 환자에게 발생하는 증상은 허리 아래 또는 엉덩이 부위의 통증이다. 이 통증은 갑자기 생기기보다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하므로 최초 증상이 생긴 지 수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나서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소아기나 청소년기에 시작되는 진행성 질환이어서 10~40대 환자가 많다. 젊은 시기에 발병하므로 다른 류마티스 질환보다 사회적 또는 경제적 타격을 더 크게 입는다.

주로 자고 일어난 아침에 허리가 뻣뻣한 느낌을 받는다. 통증이 심해 자다가 아파서 깨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일어나서 활동하면 자신도 모르게 통증이 사라지거나 약해지는 특징을 보인다. 활동하면 통증이 사라지는 데다 견딜 만한 정도여서 병원 방문을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가 많다. 대한류마티스학회에 따르면 강직성 척추염의 견딜 만한 통증은 44%이고 참기 어려운 통증은 10~20%다. 이 병으로 뼈가 굳어가도 큰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서서히 관절 운동에 제한이 오는 기능 장애가 생긴다.

또 허리 부근이 아프기 때문에 병원을 찾더라도 정형외과나 신경외과에서 먼저 진료를 받는다. 통증이 척추를 중심으로 생기므로 병원에서도 고관절염이나 허리디스크와 같은 단순 근골격계 질환으로 판정하기 일쑤다. 대한류마티스학회의 실태 조사에서 류마티스내과를 가장 먼저 찾은 환자는 18%에 불과했다. 10명 중 8명은 처음부터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김혜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종합내과 교수는 “많은 환자가 질환 초기의 허리 통증과 뻣뻣함을 단순 근골격계 증상으로 오인하고 류마티스내과가 아닌 다른 진료과를 전전한다. 강직성 척추염은 조기에 치료하면 척추의 변형을 방지하고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다. 척추 기능 장애가 발생하기 전에 류마티스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직성 척추염으로 인한 목이나 허리의 통증은 허리디스크와 달리 쉬어도 사라지지 않거나 더 심해지는 특징이 있다. 동반 증상도 나타난다. 한쪽 다리 관절(무릎)이 붓거나 아프고 발꿈치(아킬레스건), 발바닥, 갈비뼈에도 통증이 생길 수 있다. 특히 환자의 30%에서는 눈병인 포도막염이 생긴다. 눈이 충혈되고 통증이 생기며 눈물이 나고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복시 증상이 생긴다. 김현숙 순천향대서울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전신 피로, 우울증, 포도막염 등은 다른 근골격계 질환과 강직성 척추염을 구분하는 참고 지표”라고 설명했다.

 

약물로 치료하면 염증과 통증 사라져

강직성 척추염을 일으키는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환자의 90% 이상에서 특정 유전자(사람백혈구항원·HLA-B27)가 발견됐다. 이 유전자로 생성되는 단백질이 추가로 다른 유전자와 합동하거나 환경적 요인(감염이나 외상 등)과 결합하면서 면역 반응이 유발돼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한다. 부모에게 이 유전자가 있을 때 자녀가 이 유전자를 갖게 될 확률은 50%지만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 가운데 1~2%에서만 강직성 척추염이 발생한다.

강직성 척추염은 눈에 보이는 증상만으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류마티스 전문의의 세밀한 진단이 필요하다. 류마티스내과에 가면 혈액검사 외에 영상 검사를 필수로 받게 된다. X선 검사로 골반과 척추의 사진을 찍는다. 관절의 변화가 미미하면 MRI(자기공명영상), CT(컴퓨터단층촬영), 골스캔 검사 등을 받기도 한다. 여러 검사를 통해 염증 수치가 높고 뼈에 간극이 관찰되면 즉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강직성 척추염의 치료는 척추와 관절 통증의 완화와 변형을 막고 지연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소염진통제(비스테로이드 항염제)나 항류마티스 약제를 사용한다. 3개월 이상 2종 이상의 소염진통제를 사용해도 증상이 낫지 않으면 생물학적 제제(주사요법)를 고려한다. 병원미생물이나 대사물질 등으로 제조한 생물학적 제제는 척추 염증과 통증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강직 진행을 막는지는 확실하지 않고 다른 질환의 감염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예컨대 환자에게 잠복 결핵이 있다면 결핵균이 활성화할 수 있고, 신장이 나쁜 사람도 생물학적 제제 선택을 신중히 해야 한다. 따라서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한 후 가능한 환자에게 생물학적 제제 치료를 한다. 이 치료를 받는 환자는 전체의 30% 안팎이며 3개월 이상 치료 후 상태에 따라 주사의 간격을 늘리거나 용량을 줄일 수 있다. 주사 치료를 중단하면 대부분 재발한다.

이와 같은 약물치료를 받으면 통증은 상당히 줄어든다. 그러나 척추 강직의 진행을 막을지는 불명확하므로 비약물적 치료의 병행이 필요하다. 비약물적 치료란 운동과 금연이다. 강직성 척추염 환자에게 운동은 약물만큼 필수다. 스트레칭과 같은 준비운동을 충분히 한 후 자전거 타기, 배드민턴 등 생활운동을 관절이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 하루 20~30분 한다.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은 목, 어깨, 허리를 최대한 뒤로 젖히거나 몸통을 양쪽으로 번갈아가며 돌리는 동작이다. 운동은 바른 자세 유지와 관절 통증 완화에 도움을 준다. 유도나 검도와 같이 신체적 접촉이나 충격이 있는 운동, 볼링·골프·당구처럼 목과 등을 구부리는 운동, 조깅 등 척추에 무리한 운동은 피해야 한다.

흡연은 강직성 척추염 증상을 악화시키고 척추 변형을 가속한다. 또 담배를 피우면 강직으로 인해 폐활량이 감소하고 폐에 나쁜 영향(호흡곤란, 기침)을 끼치며 염증이 잘 낫지 않는다. 박경수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강직성 척추염 환자의 치료를 위해 약물치료와 비약물치료인 운동과 금연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푹신한 침대보다 단단한 매트가 좋아

강직성 척추염 환자는 평소 목과 허리를 굽히지 않고 가급적 펴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루 중 잠을 잘 때는 가장 오랫동안 움직임이 가장 적은 자세를 유지한다. 그래서 바른 수면 습관은 강직성 척추염 환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잘 때는 적당히 단단한 매트리스나 바닥 위에 반듯한 자세로 눕거나 엎드려 자는 것이 좋다. 모로 누워서 자는 새우잠은 피하고 베개는 낮고 작은 것이 좋다. 지나치게 푹신한 침상이나 베개는 피해야 한다.

박성환 대한류마티스학회 이사장(서울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은 “강직성 척추염 환자 수가 점차 늘어난 것은 그동안 자기 병명을 알지 못하고 여러 진료과를 헤매던 환자가 정확한 진단을 받게 된 시간 차의 결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진단이 있기까지 평균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홀로 겪었을 환자의 고통을 다 헤아리기 어렵다. 강직성 척추염 환자의 아픔을 줄이기 위해 질환 인식 증진과 질환 관리 교육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병 통계를 보면 강직성 척추염 환자 수는 2010년 3만1802명에서 2018년 4만3686명으로 증가했다. 40대가 24%로 비중이 가장 높고 남성이 여성보다 약 2.5배 많다.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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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직성 척추염 체크리스트

-허리(특히 엉덩이 부위)나 등의 통증이 40세 전에 시작됐나.

-허리나 등의 통증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심해졌나.

-휴식을 취해도 허리나 등의 통증이 개선되지 않고 허리나 등 운동을 하면 오히려 통증이 개선되나.

-한밤중에 허리나 등이 아파 잠에서 깨나.

-허리나 등의 통증과 함께 팔다리의 말초 관절 부위의 통증이 있나.

-안구의 통증 및 충혈이 발생하는 포도막염을 경험한 적이 있거나

-발뒤꿈치에 위치한 아킬레스 인대 부위에 통증이 있나.

* 대한류마티스학회. 4개 이상에 해당하면 강직성 척추염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류마티스내과를 방문해 진료받을 필요가 있다.

 

척추 변형 부르는 강직성 척추염 팩트

• 단순 근골격계 질환으로 오인해 다른 진료과를 전전한다. 강직성 척추염을 진단하는 류마티스내과를 가장 먼저 찾은 환자는 18%에 불과하다.

• 진단 지연 기간은 평균 39.78개월이다.

• 척추 뻣뻣함 외에 전신에서 동반 증상을 보인다. 전신 피로(59%), 근육통(39%), 관절통(37%), 포도막염(25%), 무력감·우울증(25%) 등이다.

• 쉬어도 목, 허리 등 척추 부위가 뻣뻣하고 아프다면 강직성 척추염을 의심해야 한다.

자료: 대한류마티스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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