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를 다시 감싸는 ‘벨벳혁명’의 추억
  • 클레어 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4 13:00
  • 호수 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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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체코 벨벳혁명 30주년 맞아 대규모 시민집회에서 “민주주의 수호” 울려 퍼져

올해는 냉전의 상징이었던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아울러 30년 전인 1989년은 체코슬로바키아(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기 전의 국가)를 위시한 폴란드·헝가리 등 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베를린 장벽 붕괴 및 상호작용의 여파로, 철의 장막 시대를 마감하게 된 역사적 분수령이기도 하다. 특히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1989년 11월17일, 국민의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킨 경찰의 시위대 폭력진압으로 인해 공산당 정권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정권교체가 폭력 없이 벨벳처럼 부드럽게 성공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벨벳혁명’은 나치의 체코대학 지도자 9인에 대한 처형과 대학 폐쇄 50년 추모행사에서 비롯된다. 공식 행사를 마치고 바츨라프광장으로 평화롭게 행진하던 학생들을 전경이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당시 시민운동을 이끌던 바츨라프 하벨은 긴급하게 ‘차터 77’이라는 회의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탄생한 시민사회연대체 ‘시민포럼(OF)’은 슬로바키아의 ‘대중폭력반대(VPN)’와 함께 비폭력을 표방하며 대규모 집회, 총파업, 가두행진 등 반체제 저항운동을 이끌었다.

수십만의 시민들이 열쇠를 흔들며 사회주의의 종말을 고했던 드라마틱한 퍼포먼스는 세계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세 차례나 수감되며 장기간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반체제 인사이자 극작가인 바츨라프 하벨은 같은 해 12월29일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지금까지도 체코인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11월16일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위치한 레트나 부지에서 바비스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30년 전 벨벳혁명 당시에도 바츨라프광장과 이곳에서 집회가 개최되었다. ⓒ  ‘민주주의를 위한 백만번의 순간들’(Million Moments for Democracy) 제공
11월16일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위치한 레트나 부지에서 바비스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30년 전 벨벳혁명 당시에도 바츨라프광장과 이곳에서 집회가 개최되었다. ⓒ ‘민주주의를 위한 백만번의 순간들’(Million Moments for Democracy) 제공

비리 혐의 받고 있는 바비스 총리 퇴진 요구

평화적인 벨벳혁명의 성공은 모범적인 시민운동의 사례로 세계 역사에 기억되고 있다. 30주년을 맞는 올해, 체코 시민들은 다시금 대규모 집회를 열며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백만 번의 순간들’이라는 명칭으로 열렸던 이 대규모 집회는 최근 비리 혐의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된 안드레이 바비스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지난 4월부터 8차례나 열렸다. 벨벳혁명 30년 만에 처음으로 수십만의 인파가 모이면서 뉴욕타임스 등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민주주의 다시 한번’이라는 타이틀로 11월16일(현지시간) 재개된 총궐기 현장에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이 울려 퍼졌다.

바비스 총리는 체코의 최대 재벌 아그로퍼트사를 창립한 억만장자다. 자회사인 마프라 미디어그룹은 드네스(MF Dnes), 리도베 노비니(Lidové noviny), 메트로 등 체코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간지·주간지를 비롯해 다수의 온라인 매체도 운영하며 높은 언론 장악력을 보유하고 있다. 

슬로바키아 출신인 바비스 총리는 고위 관료의 부정부패에 지친 체코 시민들에게 청렴을 약속했고, 본인의 회사처럼 국가도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며 당선되었으나, 현재 비리 의혹의 정점에 올랐다. 그는 프라하 외곽에 위치한 화려한 컨퍼런스 센터이자 리조트인 ‘황새 둥지(Stork’s Nest)’와 관련, 200만 유로(약 25억9200만원)에 상당하는 유럽연합 지원금 비리 의혹에 휘말렸다. 10년 전, 그의 가족 명의로 지원받았던 이 프로젝트는 중소기업만 신청 가능했다. 차후 이 센터가 다시 아그로퍼트사로 넘어오면서 ‘이해관계 충돌’ 의혹을 받게 된다.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에 의하면 지난 4월 체코 경찰은 사기 혐의로 총리 기소를 권고했으나, 법무부 장관은 다음 날 갑작스레 사임했다. 그리고 그 후임에 바비스 총리와 정치적 동맹관계인 자가 자리에 앉았다. 유럽연합의 독자적인 감사 결과도 그가 펀드 배당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참여했던 사실을 고려해 ‘이해충돌’로 잠정 판결했다. 하지만 프라하 검찰은 지난 9월 지원금 신청 과정에서 불법행위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기소를 거부했다. 이에 더해, 체코 대통령은 그가 기소를 당하더라도 사면하겠다는 발언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바비스 총리는 자신을 반대하는 정치세력의 조작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집회 주최 측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바비스 총리는 국내 최대의 기업 소유주이면서 동시에 국가를 클라이언트로 비즈니스하고 있어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게다가 그는 국내 최대 미디어그룹도 소유하고 있는 등 너무 큰 권력이 한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 대의를 위해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는 모든 이들이 원칙을 지키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원한다. 이런 가치가 우리 전 세대가 이뤄낸 벨벳혁명의 가치이기도 하다”며 앞으로도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행동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체코 현대사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저항의 순간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예는 1968년 ‘프라하의 봄’이다. 당시 ‘표현의 자유’ 확대 및 인권신장 등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지향하던 알렉산더 두브체크의 개혁을 저지하고자 소련·동독·헝가리 등 주변국으로 구성된 바르샤바협약군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범했고, 이후 소련군의 주둔이 합법화되었다.

이에 대한 항거로 얀 팔라흐 학생의 분신자살 등 비폭력적인 시민들의 저항이 있었으나 역부족으로 실패했고, 결국 체코슬로바키아는 이후 동구 공산권 중에서도 가장 엄혹한 시민통제를 겪어야만 했다. 시민들의 해외여행은 엄격히 금지되었고, 언론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도 탄압받았다. 역사학자 로슨에 의하면 1945부터 1989년 사이, 25만 명의 체코인이 정치적인 활동으로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 통계수치에는 사형 243명, 감옥과 수용소, 광산에서 사망한 3000명, 국경을 넘으려다 사살된 400명 등이 포함된다. 

 

슬로바키아는 지난해 시민집회로 정권교체

사회주의 체제 붕괴로 통일을 이룬 독일과는 정반대로, 체코슬로바키아는 연방의회의 결정에 따라 1993년 1월1일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뉜다. 양국의 분리가 평화롭게 진행되어 ‘벨벳이혼’이라고도 불린다. 최근 슬로바키아는 엄청난 정치적 진통을 겪어왔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정부 고위 관료와 이탈리아 마피아의 유착관계를 파헤쳐오던 탐사저널리스트 얀 쿠시악과 그의 약혼녀가 자택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작년 2월 발생한 이 사건에 분노한 대중은 연이은 대규모 집회를 열며, 스캔들에 연루된 로베르포 피코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고, 결국 압박에 못 이긴 총리는 사임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2018년 ‘세계 언론의 자유 지수’에 의하면 최근 언론의 자유가 가장 열악해진  5개국 중 체코와 슬로바키아도 포함된다. 이 단체의 독일 대표 크리스찬 미어는 “중·동부 유럽의 현 상황을 보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민주주의를 목도하고 있다”며 “유럽연합 회원국 자격은 아직 시기상조가 아닌가”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외신 헤드라인을 장식해 왔던 두 나라 대중들의 큰 저항 움직임을 통해, 이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슬로바키아에 이어, 체코 시민들도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다시 이뤄낼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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