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웃기자 通했다…《동백꽃 필 무렵》의 인기 비결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3 10:00
  • 호수 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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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한 직진 로맨스+미스터리의 쫄깃함=올해 최대 히트작

KBS 수목극 《동백꽃 필 무렵》으로 고목 같았던 KBS 드라마에 꽃이 피었다. 요즘 미니시리즈로서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던 시청률 20% 고지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올해 방영된 미니시리즈 중 20%를 넘은 건 SBS 《열혈사제》(22.0%)와 KBS 《왜그래 풍상씨》(22.7%)뿐이었다. 이 중에서 《왜그래 풍상씨》는 주말 드라마 느낌의 가족극이었고 작가도 막장 드라마 논란으로 유명한 문영남 작가였다. 《열혈사제》는 방영일이 금·토요일이어서 주말 드라마의 성격이 있었다. 그러므로 본격 주중 미니시리즈로는 《동백꽃 필 무렵》이 올해 유일하게 시청률 20%를 넘은 셈이다.

《동백꽃 필 무렵》은 《백희가 돌아왔다》(2016)와 《쌈, 마이웨이》(2017), 이렇게 단 두 편의 미니시리즈를 쓴 임상춘 작가의 작품이다. 《백희가 돌아왔다》는 4부작이기 때문에, 정규 작품으론 《쌈, 마이웨이》 한 편밖에 없는 신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로맨틱 코미디 히트 제조기라는 공효진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긴 했지만 공효진의 흥행력이 의심받는 상황이었고, 남주인공은 아직 미니시리즈 간판 주역으로 검증되지 않은 강하늘이었다. 많은 제작비가 투여된 대작도 아니다. 제목도 뭔가 촌스럽고 맥 빠지게 느껴지는 《동백꽃 필 무렵》이다.

그래서 무관심 속에서 시작됐다. 1회 시청률이 6.3%였는데 곧바로 심상치 않다는 입소문이 퍼져 나갔다. 시청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입소문은 신드롬으로 발전했다. 요즘 보기 드물게 남녀노소를 뛰어넘는 호응이었다. 최고 시청률 20.7%를 찍기에 이르렀다. 반면에 케이블 채널 드라마는 최근 화제성이 저조해 지상파가 드라마 패권을 탈환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동백꽃 필 무렵》이 KBS에 올해 최고의 효자가 된 것이다.

일단 웃겼다. 드라마 시작은 강력사건 시신 발견 장면이었다. 그래서 마치 최근 범람하는 장르물 같았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더니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뀌었다. 옹산이라는 지방 소도시에서 주점을 연 동백(공효진)이 주인공이다. 주점에 모인 손님들의 찌질한 모습이 웃음폭탄을 터뜨렸다.

《열혈사제》도 코믹물이었다. 천만 영화 《극한직업》도 코믹물이다. 제대로 웃기자 제대로 통했다. 요사이 드라마들이 전반적으로 무거웠다. 분위기도 어둡고 실제로 화면도 어두워 인물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이럴 때 웃기고 환하니 차별성이 생겨났다. 임상춘 작가는 전작들에서도 밝은 웃음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선보였다. 그것이 《동백꽃 필 무렵》에서 확실하게 꽃을 피웠다.

KBS 수목극 《동백꽃 필 무렵》의 한장면 ⓒ KBS
KBS 수목극 《동백꽃 필 무렵》의 한장면 ⓒ KBS

웃기는 인간미 판타지

사투리도 웃겼다. 이 작품은 로맨스 드라마의 형식인데, 남주인공인 용식(강하늘)이 로맨스 드라마 주인공 같지 않게 진한 사투리를 구사했다. 인물들이 다 사투리를 써도 주인공만은 표준말을 쓰는 것이 드라마의 관습이다. 《제빵왕 김탁구》에서도 지방에서 자라 주변인들이 사투리를 쓰는 상황인데 김탁구만은 표준말을 썼다. 그런데 《동백꽃 필 무렵》에선 거꾸로 남주인공이 유별나게 진한 사투리를 구사했다. 그를 비롯해 주변인들이 폭포처럼 쏟아내는 사투리가 시종일관 웃기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사투리는 동시에 인간적인 정취도 자아냈다. 마치 1980년대 고향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극 중에서 옹산은 나름 번화한 지방 소도시인데, 요즘 그런 소도시에선 사투리를 그렇게 심하게 쓰지 않는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더 그렇다. 그러므로 극 중에 나타난 진한 사투리 공동체는 판타지다. 마치 온 마을이 한 가족 같은 느낌의 사투리 공동체. 그것이 자아내는 인간적인 정취가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다.

비슷한 느낌을 전해 줘 대박을 친 드라마가 《응답하라 1988》이었다. 이 시리즈에도 사투리 코드와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히 《응답하라 1988》에는 주민들이 언제나 골목 평상에 모여 지지고 볶으면서 가족처럼 지내는 서울 쌍문동 마을이 등장해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동백꽃 필 무렵》의 옹산도 바로 그 쌍문동과 같은 인간미 판타지의 공간이다.

남주인공 용식(강하늘)
남주인공 용식(강하늘)
동백을 구박하는 것 같았던 옹산 아주머니들은 후반부에 ‘옹벤져스’를 결성해 동백을 지켰다. ⓒ KBS
동백을 구박하는 것 같았던 옹산 아주머니들은 후반부에 ‘옹벤져스’를 결성해 동백을 지켰다. ⓒ KBS

순정에 모정 게다가 미스터리까지

그 인간미 속에서 남주인공은 극강의 순박함과 뜨거움을 보여줬다. 영악하다고 여겨지는 요즘 사람들처럼 이리 재고 저리 재지 않는, 이름부터가 도시적이지 않은 용식이다. 용식은 저돌적인 순정으로 동백에게 돌진했다. 이리저리 재는 가운데 썸만 타는 요즘 세태에 용식의 순박하고 뜨거운 전폭적 순정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밖에도 모든 출연진이 작정하고 따뜻했다. 동백을 구박하는 것 같았던 옹산 아주머니들은 후반부에 ‘옹벤져스’를 결성해 동백을 지켰다. 동백의 뒤를 캐려는 파파라치 기자를 ‘우린 조직으로 움직이니께’라며 쫓아냈다. 주점의 ‘개진상’ 손님 노규태는 마음 여린 아저씨로 드러나고, 차도녀 변호사인 홍자영과 파출소 경찰들, 동백의 등을 치는 향미까지 안 훈훈한 사람이 없었다. ‘따뜻함’이란 것이 폭발했다.

이런 따뜻함이 위로가 되었다. 현실은 각박하고 차갑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따뜻한 온기를 바란다. 그래서 《응답하라 1988》의 따뜻한 동네 풍경에서 위안을 받았던 것이다. 이번엔 《동백꽃 필 무렵》의 옹산 판타지와 용식의 순정이다. 작품은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과장된 따뜻함으로 대중의 욕구를 채워줬다.

여기에 어머니의 정까지 등장하면서 작품의 호소력이 더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다. 동백 엄마가 보여주는 동백을 향한 모정, 동백이 보여주는 아들을 향한 모정, 용식 엄마가 보여주는 용식을 향한 모정이 그것이다. 특히 동백 엄마는 돈이 없어 딸을 고아원에 버리고 평생 동안 그 딸 곁을 몰래 지켜주다가 늘그막에 생명보험금을 타게 해 주려는 모정으로 안방극장을 울렸다. 과거에도 불황에 부모님 코드가 사랑받았던 전례가 있다. 모정 코드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의 심금을 울리는 보편적인 호소력이 있다. 그래서 《동백꽃 필 무렵》이 주중 미니시리즈임에도 주말 가족극 같은 시청률을 올린 것이다.

게다가 양념까지 추가됐다. 바로 미스터리 스릴러 코드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여주인공의 남편이 누구냐는 미스터리로 인기의 한 축을 형성했다. 《동백꽃 필 무렵》에선 살인범 까불이가 누구냐는 미스터리가 첨가됐다. 이 미스터리 코드로 인한 호기심은 후반으로 갈수록 증폭돼 작품의 화제성을 더 크게 만들었다. 코믹하고 촌스럽고 착한 사람들의 대책 없이 따뜻한 이야기에, 순박한 직진 로맨스, 미스터리의 쫄깃함까지 버무려져 올 미니시리즈 최대 히트작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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