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 작가 신작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4 11:00
  • 호수 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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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공동체 좌장의 글쓰기 특강

2003년 봄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으로 문화계에 존재감을 드러낸 고미숙 작가는 이후 우리 지성계에서 간과할 수 없는 특이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열하일기 3종 세트, 동의보감 4종 세트, 달인 4종 세트, 근대성 3종 세트는 물론이고 윤선도, 임꺽정 등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지적 활동을 펼쳐왔다. 책은 물론이고 강연 등 작가가 던진 다양한 문화 소통 방식은 대학 중심의 문화 판도에 적지 않은 변화를 줬다.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고미숙 지음│북드라망 펴냄│320쪽│1만5000원 ⓒ 조창완 제공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고미숙 지음│북드라망 펴냄│320쪽│1만5000원 ⓒ 조창완 제공

책과 강연으로 국내 문화 판도에 변화

작가는 이진경 등과 같이 지식공동체 ‘수유+너머’로 시작했지만, 2001년 10월부터는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으로 독립해 이곳을 꾸리고 있다. 지식과 돈에 굶주린 수많은 사람들이 경유했고, 지금도 같이하는 이곳은 필동에서 남산으로 들어가는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이번에 글쓰기 특강이란 부제가 담긴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작가를 만나봤다.

열하일기부터 긴 길을 걸어오고 있는 작가는 많은 것이 변한 느낌이 있다. 한국에서 동양으로 갔고, 동양에서 다시 서양으로 갔다. 시간도 다양하게 왕복한다. 작가의 강의를 듣다 보면 뭔가 더 단단해지는 느낌도 든다. 좀 더 자신이 성숙해 가는 느낌이 드는가를 물었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너무 당연하다. 시간은 모든 존재를 변화시키는 법이니까. 성숙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가장 달라진 점이라면, 성질이 좀 좋아진 거? 예전에는 훨씬 까칠하고 소심하면서 과격했다면, 지금은 내가 생각해도 많이 느긋하고, 푼수가 됐다. 다 고전의 스승들과 공동체의 벗들 덕분이다.”

책의 앞부분에서도 작가는 자신이 처음 글을 쓸 때 상당히 까칠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런 작가를 바꾼 인물이 바로 첫 지적 세계를 확장해 준 연암 박지원이다. 연암은 작가에게 타인을 비판하는 것으로 명예를 얻는 것은 떳떳한 것도 못 되고, 특히 자신을 미워한다고 믿는 비평가의 말을 듣고 자신을 바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에 좋은 지식을 쉽게 전달하는 일에 접어들었다. 이후 동의보감이라는 텍스트를 만났고, 서유기를 비롯한 수많은 여행기를 지나 지금은 주역과 불경으로 간다고 썼다.

위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과 같이 지식을 살찌우는 도반을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 도반이 같이하는 곳이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이다. 상당한 인세와 강연료를 받는 작가가 이 공간의 물주인 것은 불문가지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작가가 지성계에 던진 파문에도 불구하고, 이런 지식 공동체의 지속적인 탄생은 이뤄지지 않는다. 생각을 물었다.

“아마도 생활과 지식을 결합한다는 발상을 잘 하지 않는 거 같다. 아니면 별로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본다면, 지난 10여 년 동안 지역마다 도서관, 평생학습관, 박물관 등 지식을 향유할 수 있는 기본시설들이 대폭 확장됐다. 그곳을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이들도 늘었고. 그래서 굳이 지식인 공동체를 따로 구성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번 책은 이론과 실천편으로 구성돼 있다. 이론편에서 고 작가는 산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고 한다는 것은 읽고 쓴다는 것이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거룩하고 통쾌하다는 것을 즐겁게 풀어간다. 공자는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거워하는 사람만 못하다는 말을 했다. 문제는 호구지책이다. 작가만큼 글과 강연으로 먹고살려면 어느 수준이 돼야 할까. 주변에 다양한 도반들이 있는데, 생계형 글쟁이가 될 수 있는 자질은 무엇인지를 물어봤다.

 

1부는 이론, 2부는 실전 글쓰기 방법 제시

“가장 중요한 건 글쓰기와 강연으로 밥벌이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작동해야 한다. 이런 존재 방식이 최고의 삶이라는 확신 같은 게 있어야 한다. 이번 책이 특히 글쓰기의 존재론에 방점을 찍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존재론을 통해 자기 본성을 일깨우는 것, 그게 최고의 동력이자 자질이다.”

작가가 이끄는 지식공동체는 사회에 무감한 곳은 아니다. 지식공동체의 좌장으로서 느끼는 이 시대는 어떨까?

“87년부터 촛불까지. 수많은 종류의 저항과 시위를 경험해 왔다. 하지만 늘 문제는 일상이었다. 광장의 역동성이 왜 일상의 현장에서는 발휘되지 않을까, 이게 나의 오래된 문제의식이다. 민주주의는 일상이 살아 숨 쉴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럼 그 일상은 무엇이 이끄는가. 제도와 관습, 그리고 욕망과 무의식일 터. 혁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다. 쓰려면 읽어야 하고, 읽으면 써야 한다. 그 사이에 말하기가 존재한다. 말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소통법이 아닌가. 말이 통해야 살맛이 나는 법. 말의 역동성을 살리려면 읽어야 하고 써야 한다.”

책의 2부는 실전편으로 칼럼 쓰기, 리뷰, 에세이, 여행기 쓰기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일반인들도 한번 접근해 볼 수 있는 쉬운 글쓰기를 권한다. 실제로 감이당에 들어가면 독특한 글쓰기 과정이 있다. 참여자는 고전을 하나 선택하고, 4학기 동안 그것을 리라이팅하면서 완성해 가는 것이다. 작가가 열하일기에서 느꼈던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럼 점에서 작가는 책읽기를 우선적으로 강조한다.

“책은 당연히 같이 읽어야 한다. 혼자 읽으면 책이 지닌 파동을 제대로 음미하기 어렵다. 책은 절대 주제나 소제로 분할되는 사물이 아니다. 무수한 지층과 피동이 내재하고 있다. 읽기를 오로지 의미 단위로 분절한 것이 우리 시대 교육의 가장 큰 병폐다. 그렇게 되면 평생의 독서 수준이 교과서 이상을 넘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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