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궁화 열차가 파업을 하면…
  •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7 18:00
  • 호수 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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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레츠코레일’을 애용하는 철도 회원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무궁화 열차를 타고 서울역과 조치원역을 오르내린다. 보통은 월요일 아침 일찍 올라갔다가 주말이면 서울을 떠나오지만, 때로는 주중·주말 가리지 않고 기차를 타기도 한다. 와중에 요일별, 시간대별로 무궁화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 풍경이 다채롭게 변화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월요일 아침의 서울행 열차엔 유독 여행용 가방을 동반한 승객들이 눈에 많이 띈다. 그중엔 주말을 지방에서 보낸 후 서울의 일터로 출근하는 승객도 있을 테고, 무거운 배낭까지 짊어진 젊은이들이라면 서울로 유학 간 대학생이겠지 싶다. 8시 즈음 서울에 도착하는 출근 열차는 인터넷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무궁화 열차를 이용하면 수원에서 서울까지 30분이면 족하니, 출근 시간대 열차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사람들로 가득 찬다.

오후 6시대 퇴근길 무궁화 열차 안 풍경 속엔 삶의 고단함이 느껴질 때가 많다. 언젠가 옆자리에 앉은 젊은 할머니로부터 구구절절 당신 사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워킹맘인 딸을 위해 다섯 살 외손자, 세 살 외손녀 돌봐주느라 매일매일 평택과 대전을 오간다셨다. 하루 종일 아이들 봐주고 딸이 퇴근하면 당신 남편 저녁 차려주러 집에 간다는 이야기셨다. “손주 키우는 재미도 있지만 이젠 너무 힘들어 남편과 주말 부부를 했으면 좋겠는데, 남편이 부엌에 들어가 본 적이 없어 걱정”이란 푸념에 맞장구를 쳐드린 기억도 난다.

무궁화 열차의 단골 승객 중엔 군복무 중 휴가를 받아 집으로 향하는 앳된 얼굴의 군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동안 얼마나 간절히 휴가를 기다려왔는지가 설렘 가득한 표정에서부터 묻어나온다. 떼를 지어 함께 기차에 오르는 군인들을 보노라면, 조만간 군대를 가야 할 조카들, 손주들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손목을 덥석 잡아주고픈 친근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요즘 무궁화 열차에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언어들이 곧잘 들려온다. 이주 노동자들일 수도 있고, 다문화 가족 며느리일 수도 있고, 외국인 유학생들일 수도 있을 텐데 전혀 알아듣지 못해도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정겹고 웃음소리 또한 청량하다.

전국철도노동조합 파업 이틀째인 11월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철도공사 수색차량기지에 열차들이 서 있다. ⓒ 연합뉴스
전국철도노동조합 파업 이틀째인 11월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철도공사 수색차량기지에 열차들이 서 있다. ⓒ 연합뉴스

철도 파업을 시작한 첫날 저녁 서울역에 와 보니 방송사 카메라들이 즐비하다. 전광판엔 운행이 중지된 열차 번호와 열차 출발 시각이 적혀 있고, 협상이 완료될 때까지 파업이 진행될 것이란 공지가 떠 있다. 저녁 뉴스를 보니 전철 운행률이 88%, KTX 운행률은 76%, 일반 기차 운행률은 66% 수준이란다.

서울역을 오가는 승객들 표정은 대체로 무심한 듯 보였지만, 미처 상황 파악을 못 한 채 역에 도착한 승객들 표정엔 당혹스러움이 역력했고, 자기 몸집보다 큰 여행용 가방을 밀며 우왕좌왕하는 외국인 여행객들 모습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철도 노조 측과 코레일 측의 협상 조건 사이에 간극이 너무 커서 협상 타결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 앞에서 소소한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무궁화 열차를 타고 생계 현장을 오가던 분들은 대체할 교통수단이나 있을까, 기차표 예약에 서툰 어르신들은 기차표를 못 구해 발길을 돌리셔야 할 텐데 그분들의 서운함과 실망은 누가 달래줄까, 한국어가 서툴러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외국인들은 또 어찌할까, 괜한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철도 파업 상황에서 예기치 않았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고 예상외의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분들은 딱히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할 길 없어 막막한 분들일 것이 확실하다. 노조와 사측이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가뜩이나 고단하고 힘겨운 우리네 어려운 이웃들 삶이 더더욱 고달파지고 힘들어짐을 잊지 말길 바라는 마음 간절해 온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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