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쇄살인범 그 후] 쾌락을 위해  살인 즐긴 강호순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2 14:00
  • 호수 157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구치소에서 재소자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살인마 

경기도 서남부 일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난 2006년 9월부터 군포, 수원, 화성, 안양 등지에서 성인 여성이 잇따라 실종됐다. 이 중에는 시신으로 발견된 여성도 있었다. 주민들에게 또다시 ‘연쇄살인’의 공포가 엄습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으나 도무지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2008년 12월19일 군포시 대야미동에 거주하는 여대생 안아무개씨(21)가 행방불명된다. 연쇄실종 8번째였다. 안씨는 이날 오전 11시쯤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끊겼다. 가족의 실종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안씨의 동선을 추적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오후 3시7분쯤 집에서 1km 떨어진 군포시 보건소였다. 휴대전화는 오후 3시40분쯤 보건소에서 5km 떨어진 안산시 건건동 인근에서 꺼졌다. 이로부터 4시간 뒤 안씨의 신용카드가 무단으로 사용된다. 안산 성포동 농협 현금인출기 CCTV에 보통 체격에 더벅머리 가발과 마스크를 착용한 남자가 안씨의 신용카드로 현금 70만원을 인출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경찰은 CCTV 분석과 범행 시간대에 통과한 차량 이동경로를 분석해 검은색 에쿠스 한 대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수사팀의 예상 동선과도 겹쳐 있었다. 차량 명의자는 김아무개씨(여·66)였다. 그는 경찰에서 사건 당일 차량을 운전한 것은 ‘아들’이라고 말했다. 그가 바로 강호순(38)이다.

2009년 1월22일 경찰은 안산에서 스포츠마사지사로 일하던 강씨를 찾아가 방문 조사를 벌였다. 그는 태연하게 경찰의 질문에 답변했지만 진술과 이동경로가 엇갈렸다. 경찰은 다음 날 강호순이 소유하고 있던 차량과 집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다. 강씨는 에쿠스 1대(어머니 명의), 무쏘 1대, 리베로 화물차 1대 등 총 3대의 차량을 소유하고 있었다. 1월23일, 강호순의 차량 두 대가 불에 탄 채 발견된다. 범행차량인 에쿠스 외에도 무쏘까지 불에 탔다. 차량 방화는 그가 범인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2009년 2월1일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현장검증을 위해 경기도 안산 상록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2009년 2월1일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현장검증을 위해 경기도 안산 상록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시종일관 여유 보이고 증거 앞에서만 자백

압수물 분석에서도 수상한 점이 발견된다. 경찰의 첫 조사를 받은 후인 1월24일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포맷한 것이 확인됐다. 경찰이 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망을 좁혀가자 심리적 압박을 받고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이다.

경찰은 강씨의 진술과 동선이 맞지 않는 점을 집중 추궁했다. 태연한 척 심경의 변화를 보이지 않던 강호순도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강씨는 1월25일 새벽 “내가 했다”며 안씨 살해를 자백했다. 경찰은 강호순을 살인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사건 발생 37일 만이다. 강씨는 안씨를 차에 태우고 성폭행을 시도하다 반항하자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려 제압했다. 손을 넥타이로 묶은 다음 신용카드를 빼앗고 번호를 알아낸 다음 안씨의 가방에 있던 스타킹으로 목 졸라 살해한 후 암매장했다.

경찰은 실종된 부녀자들과 강씨의 연관성을 찾는 데 주력했다. 강호순의 동선과 겹치는 부분이 없는지 비교 분석했다. 그랬더니 실종 여성들의 휴대전화가 꺼진 장소인 화성시 비봉면에서 강씨가 2000~02년까지 거주한 것을 알아냈다. 또 강씨의 축사·거주지·생활반경 등이 연쇄실종 사건 지역과 일치하는 점 등을 놓고 여죄를 추궁했다. 실종자 중 세 명이 안씨처럼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사라졌다.

경찰은 감식반을 투입해 강씨의 리베로 차량을 압수수색했다. 차 안에서는 강씨의 점퍼가 나왔는데 사람의 체액이 묻어 있었다. 경찰은 점퍼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했다. 그 결과 2008년 11월9일 실종된 주부 김아무개씨(48)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강씨는 결국 과학적 증거 앞에서 더 이상 발뺌하지 못하고 범행을 인정했다. 

강씨의 연쇄살인이 시작된 것은 2006년 12월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군포시 산본동의 한 노래방에 손님으로 가장한 후 도우미로 일하던 배아무개씨(45)에게 접근했다. 그는 배씨를 자신의 무쏘 차량으로 유인했고, 화성시 비봉면 자안리 도로상에서 성관계를 갖고 살해했다. 배씨의 시신은 화성시 봉담면 비봉IC 부근 야산에서 발견됐다.

두 번째 살인은 10일 후에 벌어졌다. 범행 대상과 살해 수법도 첫 번째와 판박이였다. 강씨는 같은 해 12월24일 수원시 장안구 화서동에 있는 한 노래방에서 도우미 박아무개씨(37)를 만나 대부도에 가자고 유인해 살해한 후 안산시 사사동의 야산에 암매장했다. 두 번째 살인에 성공한 강씨의 살인 행각은 가속도가 붙었다. 2007년 1월3일에는 화성시 신남동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박아무개씨(52)가 희생양이었다. 강씨는 박씨를 자신의 무쏘 차량으로 유인한 후 첫 번째 희생자와 같은 장소인 화성 비봉IC 주변에서 성폭행한 후 살해해 화성 삼화리 야산에 묻었다. 이번에도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른 지 열흘 만이다.

3일 후에도 살인은 이어졌다. 2007년 1월6일 안양시 안양동의 한 노래방에서 만난 중국 동포 도우미 김아무개씨(37)를 리베로 화물차로 유인한 후 여관에서 성관계를 갖고 화성시 마도면 고모리에서 살해했다. 김씨를 목 졸라 살해하는 데 사용한 도구는 넥타이였다. 바로 다음 날인 1월7일에는 성당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여대생을 노렸다.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버스정류장에 있던 연아무개씨(20)를 자신의 차량으로 유인해 수원시 호매실동 황구지천 부근에서 성폭행하고 살해해 부근 하천에 암매장한 것이다.

2009년 2월2일 경기도 안산시 팔곡동 야산에서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납치, 살해한 부녀자를 암매장하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2009년 2월2일 경기도 안산시 팔곡동 야산에서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납치, 살해한 부녀자를 암매장하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취미활동하며 구치소 생활 잘 적응

강씨는 2008년에도 2건의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 같은 해 11월9일 수원시 당수동 버스정류장에서 주부 김아무개씨(48)를 에쿠스로 유인해 수인선 도로 갓길에서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반항하자 곧바로 살해했다. 김씨의 시신은 안산시 성포동 소재 성포공원 야산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됐다.

연쇄살인 마지막 피해자가 바로 군포에서 실종된 여대생 안씨다. 이 사건으로 강씨가 붙잡히면서 그의 연쇄살인은 끝나게 된다. 강호순은 검찰로 송치된 후 추가로 여죄를 자백했다. 2006년 9월7일 오전 7시50분쯤, 강원도 정선에서 출근하던 정선군청 여직원 윤아무개씨(23)를 차량으로 납치한 후 살해했다. 시신은 일명 ‘삼옥재’ 인근 절벽에 유기했다.

경찰은 강씨가 시신 유기 장소로 지목한 영월군 영월읍 13호 군도 옆 절벽 아래 10~15m 지점에서 윤씨의 유골을 수습했다. 살해 일자로 보면 강호순 연쇄살인의 첫 희생자인 셈이다. 당시 그는 양봉업을 하며 강원도 정선과 태백 등지를 드나들었다.

강호순은 자신의 살인 행각에 대해 “2005년 10월30일 네 번째 부인이 화재로 숨진 이후 일 년여 동안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고, 여자들을 보면 살인 충동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검찰은 강씨의 넷째 부인과 장모의 죽음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오히려 반대의 상황일 수도 있었다고 본 것이다. 강씨의 네 번째 부인은 장모와 함께 2005년 10월30일 화재로 사망했다. 화재 당시 강씨는 숨진 부인·장모와 한집에 있었으나 아들(12)과 함께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고 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여기에 의문을 제기했고, 경찰도 집중 조사했으나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강씨는 또 네 번째 부인과 2002년부터 3년여 동안 동거 상태에 있다가 화재가 발생하기 불과 5일 전에 혼인신고를 했다. 부인이 화재로 숨지기 불과 1~2주 전에 부인을 보험대리점으로 데리고 가서 종합보험과 운전자상해보험에 추가로 2건이나 가입했다. 강씨는 부인이 화재로 사망한 후 4개 보험에서 총 4억8000만원을 수령했다. 검찰은 강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부인과 장모를 방화 살해한 것으로 보고 혐의를 추가했다. 이로써 강씨는 총 10명의 여성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강씨를 살인, 강간, 현주건조물 방화치사, 존속살해죄 등으로 기소했다. 1심은 사형을 선고했으나 강씨는 여기에 불복해 항소했다. 2심도 강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을 유지했다. 강씨가 상고를 포기해 사형이 확정됐다. 그렇다고 강씨의 여죄가 말끔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강호순은 검거 이후에도 시종일관 여유를 보였다. 경찰이 증거를 제시했을 때만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다. 강씨의 범행 주기(부인·장모 제외)를 보면 그가 최초 살인을 했던 날은 강원도 정선군청 여직원을 살해한 2006년 9월7일이다. 두 번째 인 2006년 12월14일에서 2007년 1월7일까지 24일 사이에 5명을 잇따라 살해했다. 살해 주기도 1·2차(97일)-2·3차(24일)-3·4차(3일)-4·5차(1일)-5·6차(22개월)-6·7차(70일)다. 유독 5차에서 6차 범행 사이에는 22개월이라는 공백기가 있다. 강호순의 범행 주기와 살인 충동으로 볼 때 이해 안 되는 기간이다. 충분히 다른 범죄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흉악 범죄자의 신상공개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일었다. 2010년 4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에 ‘8조 2항(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이 신설됐고, 심사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강호순은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피해자나 유족에게 죄책감을 느끼거나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구치소 생활은 큰 말썽 없이 한다고 전해진다. 그림이나 조각을 취미로 삼고 있고 실력이 상당하다고 알려졌다. 서울구치소에서 강씨를 만난 출소자들은 “강씨가 재소자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며 구치소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연쇄살인범과 차별화된 강호순

1차 목적은 ‘살인’, 2차 목적은 ‘성관계’

연쇄살인범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며 학대를 받은 경험이다. 유영철, 김대두, 정남규, 정두영 등이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학교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좌절을 겪으면서 적개심을 키웠다. 그 분노의 대상이 부유층이나 여성이었다. 

강호순의 경우는 달랐다. 강씨는 가정환경이 불우하지 않았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학대나 폭력을 경험하지도 않았다.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상당한 재산과 직업까지 있었다. 검거 당시 지갑 속에 현금과 수표 등 총 450여 만원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살인 목적은 오로지 ‘쾌락’이었다. 1차 목적은 살인, 2차 목적은 성관계였다. 모르는 여성을 마치 낚시하듯 차에 태워 성폭행하고 살인하기까지의 과정을 즐겼던 것이다. 이걸 충족시키기 위해 같은 범행을 반복했다.

강호순은 여성 편력이 심했다. 그는 검거 직전까지 네 명의 부인과 살았다. 1998년 첫 번째 부인과 이혼했고, 2003년 네 번째 부인을 만날 때까지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그는 결혼생활 중에도 수시로 총각 행세를 하며 다른 여성을 만났다. 직업도 마사지사였다.

강씨는 여성에 대한 살인 충동이 일어나면 무조건 차를 끌고 나갔다. 노래방이나 한적한 버스정류장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눈에 띄는 여성, 차에 타는 여성이 희생자가 됐다. 피해자들의 연령이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범행에 이용된 차량은 성폭행과 살인에 유리하도록 개조했다. 여성이 차에 오르면 운전석 옆 보조석에 앉히고 한적한 곳에 다다르면 성관계를 제안했다. 여기에 동의하면 성관계를 갖고 피해자가 벗어놓은 스타킹으로 목 졸라 살해했다. 성관계를 거부하면 주먹과 발로 때려 제압해 넥타이로 손발을 묶었다. 그런 다음 성폭행하거나 심하게 반항할 경우 곧바로 목 졸라 살해했다.

범행 수법은 매우 잔인하고 주도면밀했다. 시신의 열 손가락을 가위로 잘라 반항 흔적이 남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시신은 야산, 천변, 논두렁 등에 매장했다. 땅에 묻기 전에는 옷을 모두 벗겨 알몸 상태로 만든 후 옷과 소지품을 태워 증거를 없앴다. 납치·살해된 7명의 경우 유인(노래방·버스정류장)→성관계·성폭행→살해-암매장·증거인멸 등이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