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금융권 채용비리 처분 결과’ 들여다본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8 10:00
  • 호수 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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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강조하고 나선 文 정부, 금감원과 금융기관 유착 의혹 주시

‘조국 사태’로 홍역을 치른 청와대가 국면 전환에 나섰다. 반부패정책 추진에 역점을 두겠다며 직접 칼을 뽑아들고 나선 것이다.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실 산하에 있는 특별감찰반이 금융권 채용비리에 대한 관계기관들의 후속조치 문제를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특감반은 관련 자료를 확보해 조사 방법 등을 검토하는 중이다. 

이번 조사는 청와대가 주관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결정된 사안에 대한 후속조치 성격이다. 감독기관과 해당 금융업체의 유착도 의심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청와대가 직접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사저널은 올해 초 금융기관의 채용비리에 대해 관련 내용들을 보도한 바 있다. 이 사건에서도 다수의 국회의원과 금융감독원 전·현직 관계자들이 채용을 청탁한 것으로 드러나 있다. 하지만 금감원은 지금까지 어떠한 내부 조사나 징계 절차를 밟지 않은 채 사실상 팔짱만 끼고 있는 상황이다. 채용비리에 연루된 국회의원들 역시 입을 굳게 다문 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8일 청와대에서 반부패정책협의회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8일 청와대에서 반부패정책협의회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靑 “‘공정’은 문재인 정부 하반기 주요 의제”

무엇보다 조국 사태로 인해 불거진 ‘공정성’ 논란 해소에 임기 후반기 국정운영의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문재인 정부로서도 채용비리는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주목되는 것은 검찰 역시 채용비리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해 금융권 채용비리 수사를 통해 다수의 금융권 관계자를 기소했고, KT 채용비리와 관련해서도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과 이석채 전 KT 회장 등을 기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청와대가 채용비리 문제를 적발해 검찰에 넘길 경우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예상된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에 있는 특별감찰반은 최근 금융권 채용비리와 관련된 자료 검토에 들어갔다. 특히 검찰 수사로 기소된 사안 외에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의 유착 의혹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2017년 12월과 2018년 1월 2회에 걸쳐 11개 국내은행을 대상으로 채용 업무 현장검사를 실시했다. 5개 은행(하나은행, 국민은행, 대구은행, 부산은행, 광주은행)에서 22건의 채용비리 정황을 확인했다. 금감원은 조사 결과를 2018년 1월26일 검찰에 이첩하고, 대검은 2월5일 5개 관할 지방검찰청에 각각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해 관련자들을 기소했다.

당시 금감원은 시중은행 검사 결과 채용 청탁에 따른 특혜채용과 특정 대학 출신을 합격시키기 위한 면접점수 조작, 채용 절차의 불공정 운영 등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이 과정에서 은행의 채용 담당자와 책임자들의 비리행위는 적발했지만, 정작 채용 청탁자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당시 시사저널 취재 결과 금감원이 조사한 은행 채용비리 관련 청탁자에는 전·현직 금감원 관계자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시중은행의 채용비리와 관련된 검찰의 수사 자료와 내부 인사 자료를 검토한 결과 최소 10명 이상, 최대 수십 명에 달하는 금감원 관계자들이 채용 청탁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감원 관계자들이 채용비리에 연루돼 있다는 지적은 국회에서도 나왔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2017년 10월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장에서 금융기관과 금감원의 채용비리 관련 의혹을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심 의원은 우리은행 내부 자료를 공개하면서, 2016년 하반기 신입사원 모집 과정에서 16명의 사원을 청탁을 통해 채용한 사실을 폭로했다. 그 청탁자 중 2명이 금감원 관련 인사였다는 것이다. 심 의원은 “명단에는 병원장, 국정원, VIP 고객, 금감원 임원 등이 청탁을 한 것으로 나왔다”며 “돈과 권력이 짬짬이된 현실에 청년들과 그 부모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최흥식 금감원장은 “채용비리와 관련한 온갖 의혹에 송구스러운 입장”이라며 “내부적으로 확인 과정을 거친 뒤 필요하다면 검찰 수사도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국정감사 직후인 2017년 12월부터 금감원은 시중은행에 대한 채용비리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채용비리 조사 결과 발표 후 2년이 다 되는 지금까지 금감원 관계자들에 대한 내부 감사나 징계 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금감원 고위 간부는 “금감원 내부에서도 시중은행과의 유착에 대한 의심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특히 국회 정무위원회와 금감원 관계자들을 통해 은행에 청탁하는 경우는 매우 많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사실상 금감원 내부자들과 은행의 유착관계에 대해 조사하거나 징계하기가 힘들다는 의미다.

청와대에서도 이러한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정부의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도 채용비리를 주요한 의제로 선정하면서, 관계기관의 채용 부정과 연루된 사건에 대해 들여다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정’이 문재인 정부 하반기의 주요 의제가 될 정도로 중요해졌다. 특히 채용비리는 청년세대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감원은 내부 관계자들이 채용 청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현재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재판이 끝나야 후속조치를 진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판결 결과가 확정된 이후에 이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퇴임한 경우에도 조사나 징계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사안은 판결 확정 이후에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재판 끝나야 내부조사 절차 진행할 듯”

금감원은 또 채용비리 조사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고, 결코 ‘봐주기식 조사’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의 검사권은 압수수색을 동반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1차 금융권 채용비리 조사 과정에서 일부 은행의 채용비리 혐의를 포착하지 못했던 점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후 추가적인 조사에서 충분히 혐의점을 포착해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조사에 착수할 경우 이에 따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직 금감원 고위 간부는 “금융권의 채용 청탁 문제는 파면 팔수록 나올 것이다. 특히 국회 정무위 관계자들과 금감원 관계자들은 상당히 깊게 얽혀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금융권 채용비리 사안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한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채용비리 사건에 대한 자료를 들여다볼수록, 금융기관과 감독 당국 간 유착을 강하게 의심하게 됐다”며 “금감원은 관련 자료를 달라는 의원실의 요청에도 재판 진행 중이라는 핑계로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도 최근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채용비리 문제를 중요하게 들여다볼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채용비리는 ‘공정’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엄단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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