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리더십] 단식투쟁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나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9 11:00
  • 호수 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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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의 시시비비] 역대 야당 리더들의 단식투쟁사, ‘황교안 단식’이 갖추지 못한 것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1월27일 밤 단식투쟁 도중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결국 병원으로 후송됐다. 11월20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 지 8일 만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정치인들의 단식투쟁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23일간 단식. 그는 5공 정권 시절인 1983년 민주화 5개 항을 요구하며 목숨을 건 단식을 했다. 당시 보도통제 속에서도  김 전 대통령의 단식은 독재정권 아래에서 민주화 요구를 결집하는 흐름을 낳아, 1985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평화민주당을 이끌던 1990년, 지방자치제 실시를 요구하며 13일간 단식투쟁을 통해 30년 만에 지방자치제 실시 합의를 이뤄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아래에서 있었던 양김의 이 같은 단식투쟁은 정국의 민주화 흐름을 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11월27일 밤 단식투쟁 도중 의식불명으로 병원으로 후송되는 황교안 대표 ⓒ 연합뉴스
11월27일 밤 단식투쟁 도중 의식불명으로 병원으로 후송되는 황교안 대표 ⓒ 연합뉴스

1980년대 YS·DJ 단식과 2000년대 단식의 변화

2000년대로 들어선 이후에도 야당 대표들의 단식은 몇 차례 있었지만, 민주화의 전반적인 흐름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안과 관련된 요구를 내건 것들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에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노무현 측근 비리 수사를 위한 특검’ 도입을 요구하며,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에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미디어법 처리를 반대하며 단식투쟁을 벌였다. 2007년에는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가 한·미 FTA 체결에 반대해 26일간 단식하기도 했다.

이 같은 2000년대 야당 대표들의 단식은 독재의 폭압 아래에서 민주화 투쟁의 기폭제 역할을 하던 이전과는 달리 국민들의 관심이 크게 줄어드는 시대적 변화를 맞게 된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확립되었다고 생각한 국민들은 이제 야당 대표들이 단식이라는 최후의 투쟁 수단을 꺼내드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쪽으로 많이 기울게 되었다. 그래서 야당 대표들에게 단식이라는 투쟁 방법은 자칫하면 득보다 실이 클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 되었다. 단식에서 내건 요구가 관철되면 야당 대표로서의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게 되지만, 그러지 못하고 빈손으로 단식을 끝내게 된 경우에는 정치적 힘의 한계를 드러내는 상처를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정치인에게 단식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투쟁 방법이 된 것이 지금의 시대다. 그러한 변화를 읽지 못한 채 무모한 단식을 하는 경우 스스로를 희화화시키기도 한다. 2016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느닷없이 시작한 단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이 대표는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의 해임안 처리에 반발해 정세균 국회의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나섰다가 건강을 이유로 7일 만에 끝내기도 했다. 이 초유의 여당 대표 단식은 당 대표실 문을 걸어 잠그고 한 ‘비공개 단식’이어서 단식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제 숙고를 거치지 않고 덜컥 시작되는 정치인의 단식은 그 진정성이 의심받는 환경이 된 것이다.

단식투쟁의 진정성이란 대체 무엇일까. 첫째는 단식이 아니면 호소할 방법이 없는 중차대한 사안이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가능해야 하고, 둘째는 정말로 목숨을 건 비장한 단식으로 저러다가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는 상황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지금 황교안 대표의 단식은 어떠할까. 공수처법이 만들어지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이 개정되면 나라가 무너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국민들이 생각할까. 위기에 봉착한 것은 나라가 아니라 자유한국당이 아닐까. 황 대표는 지금 절차적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국회를 통해 해결하고 결론 내려야 할 사안들을 단식의 의제로 올려놓았다. 결코 단식이 아니면 호소할 방법이 없는 최후의 투쟁 방법도 아니요, 차기 대권 도전을 꿈꾸는 황 대표가 실제로 ‘목숨을 건’ 단식을 할 리도 없다. 황 대표의 단식 돌입을 지켜본 많은 사람이 단식의 비장함에 감동을 받기보다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그것이다. 정파적 판단에 우선하는 보편적 상식의 시선이라는 것이 있다.

오히려 황 대표는 단식투쟁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정치인인가라는 물음에 우선 답할 필요가 있다. 단식투쟁은 약자의 무기이지, 수시로 국회를 마비시키는 힘을 과시해 온 힘센 제1야당 대표의 무기가 될 수는 없다. 샤먼 앱트 러셀은 인간의 온갖 배고픔 현상을 다룬 《배고픔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단식투쟁가들에게 있어 단식이란 강한 자를 향해 던지는 ‘다윗의 돌멩이’라고 말한다. “단식이 약자에게는 힘을, 소심한 자에게는 용기를, 강자에게는 겁을 줄 수 있다고. 단식의 목소리는 억눌린 자를 해방하고 불의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단식투쟁가들은 믿는다고 러셀은 말하고 있다. 

실제로 역사를 돌아보면 단식투쟁은 약자들이 강자를 상대로 내는 최후의 목소리였다. 20세기 초 감옥에서 단식을 하다가 “겁탈당한 여자처럼 공포스러웠던” 강제급식을 당했던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 1923년 경성 고무공장 노동자들로부터 2012년 쌍용차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했던 한국의 노동자들, 이들 모두는 더 이상 다른 투쟁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자신의 생명을 투쟁의 무기로 삼는 단식은 사실은 해서는 안 되는 자기파괴적 행위다. 다만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할 때 예외적으로 불가피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뿐이다. 

1983년 김영삼(왼쪽), 1990년 김대중 야당 대표의 단식 모습 ⓒ 연합뉴스
1983년 김영삼(왼쪽), 1990년 김대중 야당 대표의 단식 모습 ⓒ 연합뉴스

나라보다는 당과 자신을 위한 단식이란 시선 많아

황 대표는 단식에 돌입하면서 “더 이상 무너지는 대한민국의 안보와 민생, 자유민주주의를 두고 볼 수 없다”며 “죽기를 각오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제1야당 대표의 그 같은 상황 인식에 국민이 얼마나 공감하느냐에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실망과 비판이 크게 늘어난 상태지만, 그렇다고 지금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어 야당 대표가 죽기를 각오해야 할 벼랑끝 상황이라고까지 생각할 국민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황 대표의 단식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긍정적 반응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나라를 구하기보다는 자유한국당 혹은 황 대표 자신을 구하기 위한 정국운영 카드라는 시선이 더 많은 단식이다.

황 대표는 단식 도중 김영삼 전 대통령 추모식에 보낸 추모사에서 “1983년 대통령께서 단식투쟁을 통해 사수하셨던 자유민주화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다”며 “김 전 대통령님의 정치 철학을 되새기고 단호히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독재정권 시절 YS(김영삼)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했던 길을 자신이 따르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황 대표가 그 시절의 YS가 걸었던 길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가 진짜 독재 앞에서 민주주의의 편에 선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살아온 황 대표가 왜 이제서야 ‘죽기를 각오한’ 단식을 하고 있는지 필자는 끝내 납득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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