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리더십] 단식 통해 얻은 ‘어부지리 리더십’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9 11:00
  • 호수 157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경 투사로 변신한 제1야당 대표 황교안…개혁공천·보수 대통합 숙제 여전히 남아

11월27일 정오.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 오른편에서 두 차선을 잡고 태극기부대가 한창 시국집회를 열고 있다. 그 길 맨 끝 분수대 앞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 중인 텐트가 있다. 빨간, 파란색 텐트가 나란히 자리한 현장 주변은 황 대표의 건강을 걱정하는 한국당 지지자들로 북적였다.

이틀 전까지 지지자들에게 감사 인사차 천막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던 황 대표는 전날부터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빨간색 텐트 앞에는 임이자 의원 등 당 관계자들이 ‘연동형 선거제 반대’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앉아 있다. 단식농성 텐트 주변에는 ‘몸은 힘들어도 정신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육신의 고통을 통해 나라의 고통을 떠올립니다’ 등 단식투쟁을 응원하는 글이 쓰인 리본이 곳곳에 걸려 있다.

황 대표는 이곳에서 지난 11월20일부터 8일째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철회 등 3가지 조건을 내걸고 무기한 ‘풍찬노숙’ 단식투쟁을 벌였다. 27일 밤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단식투쟁은 막을 내렸지만 이번 단식으로 박찬주 전 육군대장 영입과 김세연 의원의 비판 등으로 촉발된 당 장악력에 대한 논란은 일거에 해소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대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현장에서 만난 한 당직자는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대국민 메시지는 분명하게 전했는데,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는 당내 중진들의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8일 풍찬노숙 단식으로 리더십은 회복

황 대표의 리더십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달로 당 대표에 오른 지 10개월째에 이른 황 대표에게는 ‘리더십·야성(野性)·전략’ 부재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이 세 가지는 각기 다른 것으로 보이지만 ‘정치 신인 황교안’에게는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검사로만 한길을 걸어온 행정가이기에 정치인이 갖춰야 할 전략적 사고가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을지 모른다. 더군다나 정치 입문 때부터 자신을 뒷받침할 만한 당내 계파가 없다 보니 리더십도 한계였다. 정통 정치인 출신이 아니기에 강한 야성을 발휘하기도 힘들다. 더군다나 대표 취임 후 당 지지율을 까먹은 이는 다름 아닌 황 대표 자신이다. 이런 정치 현실은 황 대표의 당 장악력에 의문부호를 만들었다.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인사(人事)다. 다른 말로 하면 용인술(用人術)이다. 황 대표가 영남에 기반을 둔 친박계의 도움을 받아 정치권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문제는 대표 취임 이후다. 과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경우 민정계와 민주계의 지지에 힘입어 당을 접수했지만, 16대 공천을 앞두고 거물급 정치인을 대거 쳐내면서 당권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반면 황 대표는 대표 취임 이후 눈에 띄는 탕평 인사를 보이지 않았다. 이는 황 대표가 리더십에 한계를 드러낸 단적인 요소다.

인사와 관련해 논란이 일자 황 대표는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외부에서는 (내가) 인사만 하면 친박이 이렇고 비박이 어떻다고 한다”면서 “제 머릿속엔 친박·비박이 없다”고 말했다. 황 대표 취임 이후 당내에서는 친황(親黃)파 7인방, 신(新)5인방 등 측근정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조대원 한국당 고양정 당협위원장은 “황 대표 주변 소수의 측근그룹이 독선적이다. 대표 취임 이후 진행된 인사는 솔직히 ‘친박 아류’였다”고 비판했다.

그러다 보니 당내 뚜렷한 대여(對與) 전략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온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황 대표나 한국당 의원들이 입만 열면 한국당의 정체성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하는데 한국당의 전신인 정당들은 과거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주의를 탄압하고 민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한 적이 있지 않았나. 또 국가적으로 불공정하게 자원을 배분해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을 만들어낸 정당이 무슨 대안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30쪽 기사 참조)

비판론자들은 황 대표가 당 대표에 오른 다음 갈지자 행보를 보인 것도 자신만의 뚜렷한 정치철학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정치권에 입문해 내가 뭘 해야 할지, 대표가 되면 나라를 어떻게 바꿀지를 고민하지 않은 결과가 여실히 나오고 있다”면서 “국민 대다수가 탄핵에 찬성했는데도 아직까지 친박과 TK(대구·경북)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정치인 황교안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한국당 수도권 의원도 “잠시나마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있으면서 최고의 권력을 맛본 데다 스스로의 힘으로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온 황 대표로선 ‘타협의 미학’인 정치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야심 차게 준비해 온 박찬주 전 대장 영입이 해프닝으로 끝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당시 한국당 내에서는 “어떤 경로를 통해 박 전 대장이 추천됐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렇다 보니 박 전 대장 영입은 당 최고위원들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무위에 그쳤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9월16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발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9월16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발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對與 전략 로드맵 없이 단기처방만 내놓아

여기에 원외인사라는 한계도 뚜렷하다. 대표에 오른 이후 장외투쟁과 삭발, 단식으로 이어지는 강성 이미지만 비춰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그래서 나온다. 정현호 전 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은 “단식이나 삭발은 야성을 어필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취약계층인 2030세대의 공감을 얻진 못한다. 모든 행동에는 전략적 단계라는 게 있는데, 그걸 생략하고 왜 곧장 이러한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당 내 관계자도 “단식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이 말렸는데, 대표께서 어떤 말씀도 듣지 않더라”며 안타까워했다.

한국당 주변에서 ‘어부지리 리더십’ ‘세모(△) 리더십’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황 대표는 지난 9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을 감행했다. 10월3일 개천절에 열린 장외집회도 반(反)조국 정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예상외의 흥행 성공을 거뒀다. 이번 단식의 명분으로 내건 3가지 중 지소미아 문제가 황 대표 뜻대로 끝난 것도 우연의 일치치고는 잘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황교안식’ 야성 정치의 지속력이 강하지 못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11월27일 단식농성 중인 황 대표에 대해 “12월은 국회의 클라이맥스인데 단식을 너무 일찍 시작했다”면서 “단식보다 쇄신과 통합, 국회에서의 대여 투쟁 등을 풀어나가는 리더십을 보여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황 대표의 단식투쟁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67.3%로 28.1%인 ‘공감한다’는 의견을 크게 앞섰다.

반복하면, 황 대표의 숙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이번 단식투쟁으로 당내 지도력은 어느 정도 만회했다 해도, 그 뒤에는 보수 대통합, 공천 등 더 큰 숙제가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친박계라는 당내 최대 계파와의 관계 설정도 중요하다. 황 대표의 단식투쟁이 있었음에도 한국당 내에서 불출마 논의는 아직 먼 나라 이야기다. 한 영남권 의원은 “3김 시대 때야 불출마를 해도 3김이 나중에 뒤를 챙겨줬는데 지금 정치 환경에서 누가 명예로운 퇴진을 하겠느냐”면서 “결국 현실적으로 민주당이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 박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해 칼자루를 쥐여준 것을 참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해진 임기가 있지만 내년 총선에서 현재의 의석수조차 확보하지 못하면 황 대표의 정치 생명은 그걸로 끝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민주당 때문에 황 대표가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하기 힘든 면도 있다”면서도 “총선 승리를 위해선 친박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하며,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새 인물 영입보다는 정당 구조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의도에 부는 ‘단식 정치’

여의도에 때아닌 단식 바람이 불고 있다. 보수정치 진영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 대한 동정론이 일면서 11월27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의원총회에선 4선 이상 중진들이 함께 단식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정미경, 신보라 최고위원은 황 대표가 병원으로 실려간 이튿날인 11월28일 청와대 앞 농성 텐트에서 "우리 모두가 황교안이다"라며 동조단식에 돌입했다. 

이런 가운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바른미래당과 정의당 역시 선거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당 고위급 인사가 단식에 돌입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한국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민주당이 당초 약속대로 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단식투쟁에 돌입할 것을 현재 논의 중이며, 정의당 쪽에서도 비슷한 제안이 있었다”고 말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해 12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10일간 단식농성을 벌인 바 있다. 이 때문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공조를 취하고 있는 두 당 대표가 1년 만에 또다시 단식농성에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2014년 8월 새정치연합 대표 시절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의 단식 중단을 요구하며 10일 동안 김씨와 함께 단식한 바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