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구도로는 불평등 해소 못 한다”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1 11:00
  • 호수 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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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강남 좌파론’ 끄집어낸 강준만 교수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이라고 하면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를 원흉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불평등의 해소나 완화를 목표로 생각하면 답은 오히려 정치적 불평등이라고 보는 게 진실에 가깝다. ‘조국 사태’는 그런 문제의식을 의제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정치권과 언론, 일반 국민들까지 ‘친조국이냐, 반조국이냐’ 하는 정파적 이전투구로 이 좋은 기회를 탕진하고 말았다. 한국 사회의 최대 문제는 ‘밥그릇 전쟁’으로 인한 ‘분열 구조’에 있는 것이지, 그 어떤 진영이 승리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2011년 《강남 좌파》라는 책을 통해 ‘강남 좌파’라는 용어를 공론의 장으로 띄웠던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8년 만에 《강남 좌파 2》를 출간했다. 이번 2권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왜 정치는 불평등을 악화시킬까?”라는 질문이다. 정파적 대결 구도를 넘어 강남 좌파를 사회 전체의 불평등 유지 또는 악화와 연결시켜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이해하자는 것이 주요 메시지다.

《강남 좌파 2》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 펴냄│188쪽│1만3000원 ⓒ 인물과사상사 제공
《강남 좌파 2》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 펴냄│188쪽│1만3000원 ⓒ 인물과사상사 제공

“왜 정치는 중·하층의 민생을 외면하는가”

“‘1% 대 99% 사회’ 프레임에서는 1%에 속하지 않는 강남 좌파는 별문제가 안 되지만, ‘20% 대 80% 사회’ 프레임에서는 강남 좌파가 매우 중요해진다. 상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지배하는 현실에서 그들이 과연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주장할 수 있을까? 20%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외치는 ‘1% 개혁’은 가능한 걸까? 20%에 속하는 사람들이 ‘나도 양보했는데, 왜 당신들은 양보하지 않으려는가’라는 당당하고 공평무사한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1% 개혁’도 가능한 게 아닐까? 하지만 20%의 중상류층은 다수 대중과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불평등의 완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일 것 같지만, 어떤 프레임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프레임은 상위 1% 계급에 문제가 있다는 ‘1% 대 99% 사회’ 프레임이지만, 강 교수는 ‘상위 10%’나 ‘상위 20%’를 문제 삼는 ‘10% 대 90% 사회’ 프레임 또는 ‘20% 대 80% 사회’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강 교수가 이런 주장에 강남 좌파를 다시 끄집어낸 것은, 기존 정파적 이분법 구도, 즉 정파적 진영의 포로가 되기를 자청하는 ‘진영 논리’를 깨지 않고선 그 어떤 개혁과 불평등 해소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치는 상위 20%가 지배하고 있다. 전문가 집단도 상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1% 개혁’의 주체는 사실상 정책을 만들고 여론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고위 관료와 각종 전문직 집단으로 대변되는 19%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신의 기득권 유지를 전제로 만들어내는 1% 개혁안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바로 여기서 ‘강남 좌파’가 문제가 된다. 상위 20%에 속하는 좌파는 강남 좌파로 봐야 한다.”

‘강남 좌파’는 학력과 소득은 높으면서 정치·이념적으로는 좌파 성향을 띤 사람을 말한다. 서울의 강남은 ‘부(富)와 권력’의 상징적 의미로 쓰인다. 강남 좌파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다른 나라들에도 비슷한 현상이 존재한다. 미국의 ‘리무진 진보주의자’, 프랑스의 ‘고슈 카비아’, 영국의 ‘샴페인 사회주의자’, 독일의 ‘살롱 사회주의자’, 캐나다의 ‘구치 사회주의자’, 호주의 ‘샤르도네 사회주의자’ 등에 상응하는 게 바로 한국의 강남 좌파다.

“이들이 외치는 진보는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경제적 기득권 유지를 전제로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진보 정책의 주요 ‘의제 설정’이 경제적 불평등 해소와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진영 논리도 작동한다. 자기 진영 내부에 긴장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주제보다는 진영 논리에 충실한 ‘모범 답안’만 이야기하려는 안전의 욕구가 1% 비판만 하게 만든다. 자신도 포함되는 19%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1% 비판에 집중하는 것이 ‘진보 코스프레’의 정체다.”

 

“빈부 격차에 둔감한 정치인들의 착각 깨부숴야”

강 교수는 ‘강남 좌파’ 문제는 앞으로 두고두고 계속될 한국 정치의 근본 문제라고 지적한다. 강남 좌파론은 정치가 출세와 입신양명의 도구로 기능하는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해하는 게 옳다면서, 강남 좌파를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 용도로만 쓰는 것은 너무 비생산적이고 강남 좌파론에 대한 심각한 오해라고 설명한다.

“강남 좌파 논쟁은 ‘가용성 편향’과 ‘도덕적 면허 효과’라는 2가지 문제의 해결이나 완화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강남 좌파는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진보의 가치를 역설하는 데 능하지만, 서민의 절박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는 무관심하거나 무능할 가능성이 높다(가용성 편향). 또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는 386세대이면서 강남 좌파에 속하는 사람들의 경제 자본과 학벌 자본은 이런 문제를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도덕적 면허 효과).”

강 교수는 적잖은 국민이 확신을 갖고 매달리는 기존 좌우, 진보-보수 구도는 허구라고 주장한다. 그런 구도로 불평등을 해소하는 건 백 년 걸려도 되지 않을 일이라며, 진보의 의제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진보적 정치인들은 중·하층의 민생을 생각하는 것처럼 전투적인 말은 많이 하지만, 그것에 대해 직접 접촉하거나 생각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들은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계급적 기반과 동질적인 동료 압력이나 교류로 인해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사회적으로도 중요하다는 착각에 빠진다. 여권의 정치적 실세인 운동권 386 출신의 그런 착각은 더욱 심해져 개혁적 정책을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서만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 정책을 주요 의제로 삼는다. 검찰 개혁에 정권의 명운을 거는 게 그 좋은 예다. 이것이 과연 민생 의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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