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궁지로 몬 ‘벚꽃을 보는 모임’ 실체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0 16:00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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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예산'에 초청 대상자 기준도 불분명...“내년 행사 중지” 발표에도 아베 지지율 하락

일본에 ‘벚꽃을 보는 모임’(櫻を見る會)이 있다. 이름만 보면 참 따뜻한 느낌이다. 봄날 벚꽃을 함께 보는 어떤 소박한 동호회 모임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모임이 지금 일본 정계를 뒤흔들며 탄탄해 보이던 아베 신조 총리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도대체 무슨 모임이길래 열도가 떠들썩한 걸까.

‘벚꽃을 보는 모임’은 한 해 1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대규모 연회로 일본 총리가 주최하는 공적 행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 왕실 주최로 국제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열렸던 ‘관앵회’를 전후(戰後) 요시다 시게루 전 일본 총리가 총리 주최 행사로 1952년 부활시켰다. 행사가 진행되는 신주쿠교엔은 전전(戰前)에는 왕실 정원이었다가 1947년 국민공원으로 탈바꿈한, 65종류 약 1300그루의 벚꽃나무를 감상할 수 있는 벚꽃 명소다. 행사의 목적은 ‘각계 각층에서 공적·공로를 세운 사람들을 초대해 노고를 위로하는 것’이다. 일본 왕실 일원과 일본에 주재 중인 각국 대사와 중의원 의원장, 참의원 의원장, 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의회 의원의 일부 등이 초청되고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 각계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들이 참가한다. 지난해 4월 열린 행사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다카키 미호 선수가 참가하기도 했다.

2017년 4월 도쿄 신주쿠교엔에서 열린 벚꽃 축제에 참석한 아베 총리 ⓒ 연합뉴스
2017년 4월 도쿄 신주쿠교엔에서 열린 벚꽃 축제에 참석한 아베 총리 ⓒ 연합뉴스

공적 행사라더니…야쿠자 참석 의혹도

‘벚꽃을 보는 모임’ 행사에 초청받으면 참가비가 무료다. 신주쿠교엔 입장료도 무료며 제공되는 술과 다과 등의 비용은 세금으로 충당한다. 이처럼 세금이 사용되는 ‘공적’인 행사를 아베 총리가 ‘사유화’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1월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 공산당의 다무라 도모코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며 논란이 시작됐고, 여러 가지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기되고 있다. 다무라 의원은 자민당의 야마구치 현의원이 2014년 행사 참여 후 블로그에 ‘내 후원회 여성부 7명과 동행했다. 총리는 앞으로도 벚꽃을 보는 모임에 시모노세키의 여러분들을 초대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글을 썼는데, 이를 토대로 아베 총리에게 질의했다. 야마구치는 아베 총리의 지역구다. 아베 총리는 ‘벚꽃을 보는 모임’의 초청 대상자인 자치회, PTA(Parent-Teacher Association·사친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후원회에 들어가 있어 중복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또 초청 대상자 정리 등에 관여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대답과는 달리 의혹들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첫 번째 의혹은 공적인 행사인데 아베 총리와 부인 아키에 여사가 초청 대상자 선정에 관여하면서 ‘사유화’했다는 것이다. 올해 초청 대상자 약 1만5000명 가운데 일본 정부가 추천한 공로자와 각국 대사, 의원, 훈장 수장자 등이 약 6000명이고 아베 총리의 소속 정당 자민당 관계자의 추천이 약 6000명이다. 나머지 3000명 중 1000명이 아베 총리의 추천이며, 부총리와 관방장관, 관방부장관이 합해서 1000명을 추천했다. 나머지 1000명을 국제적인 공헌을 세운 사람, 예술문화 분야에서 활약하는 특별초대자와 보도 관계자, 공명당 관계자 등으로 채웠다. 대부분을 자민당과 총리, 그 주변 인물들이 추천했다는 것이다.

또 11월20일 중의원 내각 위원회에서 오니시 쇼지 내각심의관이 ‘아베 사무소에서 참가자를 폭넓게 모집하는 과정에서 여사의 추천도 있었다’고 발언함에 따라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의 관여도 분명해졌다. 또 언론의 취재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친족에 할당되는 자리도 있었다고 한다.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 등 유명인들이 참가하는 모임에 보은의 성격으로 후원회원들을 초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더욱 깊어진다. ‘공적’ 행사가 아베 총리의 ‘사적’ 행사로 변질되었다는 비판도 거세다.

이렇게 초청된 인물 중에서 과연 ‘공적’을 인정받을 만한 인물인가 의구심을 갖게 하는 면면들이 있었다는 것도 의혹 중 하나다. ‘반사회적 세력’으로 볼 수 있는 인물들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행사에서 폭력단, 즉 야쿠자 간부가 참가한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또 다단계 판매회사 재팬라이프의 회장도 2015년 행사에 초청받았다는 사실이 아사히신문의 취재 결과 밝혀지기도 했다. 재팬라이프는 2015년 이전에도 소비자청으로부터 2번의 행정지도를 받았고, 행사 이후 2016년에는 상거래법 위반으로 업무정지 명령을 받았다. 2017년에는 부도를 내기도 했고, 올해는 일본 경시청의 압수수색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재팬라이프 회장은 다단계 판매 홍보에 ‘벚꽃을 보는 모임’ 참석을 이용해 왔다고 한다.

의혹이 난무하는 가운데, 어떤 인물이 초대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초대객 명부는 일본 내각부가 5월9일 폐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은 공산당 미야모토 도오루 의원이 행사에 관한 자료를 요구한 날이다. 미야모토 의원이 자료를 요구한 지 한 시간 뒤, 참석자 명부는 파쇄기에서 조각조각 파쇄됐다. 공산당은 전자데이터를 요구했으나 전자데이터도 5월7일과 9일 사이에 삭제됐다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설명했다. 데이터 복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아베 총리는 “내각부가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은 단말기에 데이터를 보존하지 않기 때문에, 백업데이터 보관 기간이 지난 후에는 복원이 불가하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자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1만 명 이상이 초청되는 이 행사에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이 비용을 충당하는 것은 일본 국민의 세금이다. 아베 총리의 두 번째 취임 후 행사 예산액은 매년 1766만 엔(약 1억940만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된 금액은 예산액을 매번 뛰어넘었다. 올해만 해도 하루 행사 비용으로 약 5518만 엔(약 6억660만원)을 썼는데, 이는 예산액의 3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국민의 혈세가 아베 총리 개인과 주변 인물들을 위해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아베 총리의 퇴진을 촉구하는 한 시위 참가자가 ‘세금으로 후원회 활동’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아베 총리의 퇴진을 촉구하는 한 시위 참가자가 ‘세금으로 후원회 활동’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하루 행사 비용으로 6억여 원 써

본행사 전날 밤에 열리는 ‘아베 신조 후원회, 벚꽃을 보는 모임 전야제’의 비용도 문제가 되고 있다. 2013년부터 열린 전야제는 도쿄 내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진행된다. 한 사람당 식사비만 해도 1만 엔(약 11만원)이 넘지만 참가비는 5000엔(약 5만5000원)에 불과하다. 약 400명에 달하는 참석자들의 식사비와 교통비를 어떻게 충당하는지, 아베 총리가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부분이다.

모리토모 사학 스캔들 등으로 한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아베 총리는 일본의 최장수 총리가 됐다. 이번 ‘벚꽃을 보는 모임’ 스캔들은 아베 총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마이니치신문은 11월30일과 12월1일 이틀에 걸쳐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아베 내각을 지지한다는 대답은 42%에 그쳤다. 10월의 48%에 비해 하락한 수치다. 아베 총리가 지역구 후원회 관계자를 다수 초청한 것이 ‘문제가 된다’고 대답한 사람이 65%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대답한 22%를 크게 웃돌았다. 아베 총리는 내년 ‘벚꽃을 보는 모임’ 중지를 선언함으로써 문제를 빠르게 일단락시키려 했다. 그러나 ‘벚꽃을 보는 모임’을 둘러싼 새로운 의혹과 문제들이 계속 꼬리를 물며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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