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드는 법정 스님의 초발심을 만나다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8 11:00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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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적 10주기 맞아 불교신문 연재글 모은 추모집 《낡은 옷을 벗어라》

법정 스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0년 됐다. 하지만 스님은 많은 사람의 마음에 남아 있다. 하지만 잔상만을 더듬는 것도 10년이면 허무해진다. 더욱이 스님은 떠나면서 자신의 책이 절판되기를 소원했고, 어느 정도 지켜져 법정 스님의 텍스트는 상당수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런 가운데 법정 스님의 원적(圓寂) 10년을 맞아 불교신문사가 추모집 《낡은 옷을 벗어라》를 펴냈다.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로서는 스님의 초발심을 볼 수 있는 반가운 울림이 가득한 책이다.

《낡은 옷을 벗어라》법정 지음│불교신문사 펴냄│312쪽│1만6500원 ⓒ 연합뉴스
《낡은 옷을 벗어라》법정 지음│불교신문사 펴냄│312쪽│1만6500원 ⓒ 연합뉴스

1960년부터 10여 년간 불교신문에 게재한 원고

이번 책의 원고는 스님이 1960년부터 1970년 중반까지 불교신문에 게재한 원고를 최소한으로 수정하고, 정리한 것이다. 1932년생인 스님이 1956년에 효봉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고, 1959년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으니, 이 시기는 속세의 나이로는 서른 무렵이지만 본격적인 승려의 길에 접어든 시간이기도 하다.

우선 이 시기는 승려가 되려는 사람들의 첫 마음인 초발심이 가장 강한 시기였던 만큼, 글에서도 아직 젊음의 기운이 넘쳐 있었다. 당시 불교 사회의 삿됨을 비판할 때는 날카롭게 펜을 휘둘렀고,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감성적인 마음도 글에 잘 남아 있다.

“창호에/산그늘이 번지면/수런수런 스며드는/먼 강물소리//-이런 걸 가리켜 세상에서는/외롭다고 하는가?/외로움쯤은 하마/벗어버릴 때도 되었는데/이제껏 치른 것만 해도/그 얼마라고-//살아도 살아도/늘 철이 없는 머시매/내 조용한/해질녘 일과라도/치를까 보다”(시 ‘먼 강물 소리’에서)

“너를 돌아다보면/울컥, 목이 매이더라/잎이 지는 해질녘/귀로(歸路)에서는//앉을자리가 마땅치 않아/늘 서성거리는/서투른 서투른 나그네”(시 ‘내 그림자는’에서)

출가한 사람으로서는 드러내기 쉽지 않은 감성을 기고 글에서 보여주는 것도 초반기 스님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성은 시에서 주로 드러낼 뿐, 산문에서는 당시 불교계에 당면한 사안에 대해 죽비를 내려친다. 이 내용에는 도시 개발에 부응해 봉은사 땅 대부분을 매각하려는 삿된 세력도 있고, 불경 경전 작업에서 기존 틀을 깨지 못하는 역경원의 사업에 관한 것도 있다.

특히 불교 경전 번역 당시 스님이 제시한 다양한 문제의식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판본이 비슷한 600부 반야경을 모두 번역하는 효율성 문제, 인도어나 팔리어가 한문을 거쳐서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고유명사에 대한 경직된 자세 문제 등은 의미 있는 지적이었다.

불교계에 있는 학문의 문제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에도 강한 목소리로 말한다. 특히 1970년 봉은사 땅을 팔아, 불교회관을 건립하려는 당시 불교계 흐름에는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힌다. 불교회관이 당장 급한 사안이 아닌데도, 한수 이남에 자리한 입지적 여건으로 봤을 때, 종단에서 다각도로 활용할 수 있는 요긴한 땅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1970년 조계종은 5억3000만원을 받고, 봉은사 땅 10만 평을 한국전력 등 상공부 산하기관에 넘겼다. 그 땅에 코엑스가 세워졌고, 현대자동차에 10조원 넘게 매각된 한전 부지가 있다. 속세의 계산으로 45년 만에 199만 배 넘게 올랐다는 것을 떠나, 마땅한 부지가 없어 강남 지역에서 제대로 불교 부흥을 하지 못하는 조계종의 한계가 잉태할 것을 스님은 미리 예견했던 것이다.

스님이 어느 곳보다 강하게 죽비로 내려치는 것은 기복신앙으로 빠지는 불교 전체의 문화였다. 극락행 여권이나 발급하는 사찰, 불사(佛事)가 아닌 불사(不事)가 돼 버린 절간 늘리기, 자식들 합격 기원 장소가 돼 버린 불당 등에 대해 통탄한다. 스님은 이것은 불교가 아닌 샤먼의 일이라며,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후반에 배치된 ‘구도자’라는 글은 짧지만 스님의 긴 길을 한번에 보여주는 우화다. 한 젊은이가 적막한 눈길을 걷다가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가 읽은 수많은 고전도 그에게 길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아홉 해 동안 줄곧 벽만 바라보는 한 노승을 찾아보기 위해 길을 간다. 젊은이는 노승을 만나 의지를 보이기 위해 한 팔을 칼로 끊는다. 그리고 그제야 노승은 마음을 놓는다. 스님이 이 글에서 중국 선종의 2조인 혜가에서 비롯된 설중단비(雪中斷臂)를 내놓은 것은 굳건한 구도의 길에 대한 의지다. 그리고 이것이 스님의 초반기 글에 남아 있는 그 초발심이기도 하다.

그 초발심은 오랜 칩거 후 1993년 7월에 발표한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라는 글이나 이후 이뤄진 길상사 창건의 이야기에도 남아 있다. 스스로 ‘열반’은 면벽선승만 가는 곳이 아니라 말한다. 중생의 고뇌가 그대로 있는 중생계가 다할 때까지 열반은 열반이 아니라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조차 열반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스님의 구도 자세는 지옥에 있는 중생까지 구하고 가겠다는 지장보살의 염원을 닮아 있다.

 

생명 중심의 나눔의 삶 설파한 ‘무소유’

우리에게 법정 스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무소유’다. “무소유는 단순히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을 뜻한다”고 정의하며, 생명 중심 나눔의 삶을 설파했다. 스스로도 세속 명리와 번잡함을 싫어했던 스님은 홀로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며 청빈을 실천하다가 세수 78세, 법랍 55세에 원적에 들었다. 바깥소리에 팔리노라면 자기 소리를 잃고 말기 때문에, 가장 깊숙한 데서 나직이 들려오는 ‘내심의 소리’를 들으라 했던 스님. 그 소리가 우주의 질서라고 말했던 스님이 떠난 지가 벌써 10년이다.

10년 만에 다시 가장 젊은 모습으로 찾아온 이 책은 초발심을 보여준다. 1977년 쓴 글에서 큰스님이라고 해도 초발심의 행자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행자 시절의 그 청청(靑靑)한 기억들을, 그 시절에 들은 법문을 잊지 말고, 저질로 빠지는 승단을 구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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