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데, 울지 말래요”…벼랑 끝에 선 ‘아이돌’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0 14:00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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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이돌 연습생의 땀과 눈물》 저자 이종임 박사
"연습생부터 학습권 침해당해…정산·합숙 시스템 바꿔야"

1990년생 김종현은 2008년 ‘샤이니’로 데뷔했다. 당시 나이 18세. 그는 2017년 목숨을 끊었다. 향년 27세. 2년 뒤 종현과 같은 소속사였던 ‘f(x)’ 전 멤버 설리(본명 최진리)도 목숨을 끊는다. 향년 25세. 그리고 한 달 뒤 설리의 절친한 언니였던 ‘카라’ 전 멤버 구하라도 세상을 등진다. 향년 28세. 10대들이 선망했던 세 별은 이렇게 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상에 선 수많은 아이돌이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을 호소하며 고통받고 있다. 과연 누가, 무엇이, 왜 어린 스타들의 삶을 극단으로 몰고 간 것일까.

시사저널은 오랜 기간 국내 아이돌 업계를 연구해 온 이종임 박사(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강사)를 만났다. 이 박사는 저서 《아이돌 연습생의 땀과 눈물》 《문화산업의 노동구조와 아이돌》 등을 집필한 국내의 손꼽히는 ‘아이돌 전문가’다. 그는 “국내 소속사와 미디어, 대중들이 아이돌 앞에서 마치 가부장처럼 행동하고 있다. 잔인한 잣대를 아이돌에게 들이밀고 있는 것”이라며 “이 탓에 아이돌이 정서적으로 딛고 일어설 ‘무언가’가 부재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 시사저널 최준필

우는 아이는 ‘아이돌 자격’이 없다?

아이돌(idol)의 어원은 ‘신에 근접한 우상’이다. 국내에서는 ‘K팝’ 장르의 대중 가수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영광스러운 이 이름이 아이돌에겐 굴레가 된다. 대중이 신에 준하는 잣대를 아이돌에게 들이대서다. 아이돌은 순결해야 하며, 화도 내선 안 되고, 성실해야 한다. 아이돌은 연습생 시절부터 이 스테레오 타입(고정관념)을 암기하듯 외우고, 실생활에 적용한다. 그래야 한국에서 ‘스타’가 될 수 있는 첫 번째 자격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반대로 스타가 됐다 해도 이 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순간, 대중과 미디어의 손가락질이 시작된다.

“대중이 아이돌에게 바라는 틀이 있어요. 가부장제와 비슷하죠. 이 기준은 특히 여성 아이돌에게 더 가혹합니다. 일례로 아이돌은 늘 웃고 있어야 하며, 순결해야 하며, 화를 내선 안 됩니다. 이를 어기면 대중은 ‘내가 너의 성공에 얼마나 투자했는데!’라고 반응합니다. 악플을 달기도 하고, SNS를 찾아가 설전을 벌이기도 하죠. 문제는 미디어도 이 틀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돌이 뚱한 표정만 지어도 언론은 큰 문제인 양 이를 확산시켜요. 그래서 아이돌은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데 익숙지 않고 정서적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 탓에 아이돌은 24시간 불안을 안고 산다. 아이돌이 이를 버텨내는 건 ‘성공’이라는 목표 때문이다. 미디어에서는 스타들이 쟁취한 부와 명예를 끊임없이 조명한다. 큰 집과 멋진 차를 촬영하고 보여주면서, ‘아이돌이 되면 이를 얻어낼 수 있어’라는 환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카메라 밖 아이돌이 무엇을 담보하고 희생하고 있는가는 철저히 편집된다.

“한국 사회는 과정보다 결과에 집중합니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연습생들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너무 드라마틱하게 포장하죠. 구체적인 계약이나 과정의 문제보다는 그걸 딛고 일어선 성공 사례만 부각하는 식입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미디어와 기획사는 아이돌을 통해 ‘어떻게 수익을 얻을 수 있느냐’에만 초점을 맞출 뿐, 아이돌과 연습생의 주체적인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일각에선 이 같은 물음도 나온다. ‘먹고살기 빠듯한 서민에 비하면 아이돌이 낫지 않아?’ 아이돌이 겪는 부당한 상황은 ‘막대한 재산’을 얻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잣대 역시 ‘폭력’이라는 게 이 박사의 생각이다. 경제력의 크기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철저히 분리된 영역이라는 것이다. ‘부자라면 좀 외로워도 돼!’라는 인식은 결국 아이돌을 더 고립시키는 장벽이 된다.

“아이돌 문제는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의 문제기도 합니다. 그들도 사춘기를 겪고, 때론 겪어보지 못했던 감정의 충돌을 겪기도 해요. 그럼에도 기획사와 대중은 아이돌을 마치 훈육의 대상으로만 대합니다. 회초리를 들어야 잘된다는 식이죠. 오디션 프로그램만 봐도 트레이너들이 아이돌 연습생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거침없이 하잖아요? 눈물을 흘리면 ‘넌 울 자격 없어’라고 윽박을 질러요. 그러다 보니 아이돌은 항상 감정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습니다.”

사진 왼쪽부터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샤이니 종현, 설리, 구하라 ⓒ 시사저널 박정훈·연합뉴스·뉴시스
사진 왼쪽부터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샤이니 종현, 설리, 구하라 ⓒ 시사저널 박정훈·연합뉴스·뉴시스

“아이돌 생태계 바꾸는 움직임 활발해져야”

이 박사는 결국 기획사 주도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어린 스타들이 겪는 우울과 자살의 반복이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박사는 특히 아이돌의 ‘합숙과 정산’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3월 문화체육관광부가 기획사와 계약을 앞둔 청소년들을 위해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표준 부속 합의서’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법적 효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아이돌은 연습생 기간 기획사의 지원 비용을 빚으로 떠안으며 데뷔를 준비합니다. 그러다 보니 데뷔 이후에는 이 빚을 갚기 위해 기획사가 제시하는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해요. 또 기획사는 아이돌을 완벽히 통제하기 위해 합숙제도를 시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아이돌의 학습권이나 사생활이 침해됩니다. 아이돌이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면 나중에 또래 친구가 아닌, 기획사 관계자만이 유일한 지인으로 남게 되고 점차 그 의존도는 더 커지게 됩니다. 만약 데뷔 이후 크게 성공하지 못한다면 이 불공정한 계약의 후유증은 크게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빛나는 무대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이를 외면하고 방치한다면 비극은 반복될 수 있다. 과연 아이돌이 인권, 교육권, 노동권 침해 없이 성장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이 박사는 아이돌 생태계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팬들은 변하고 있어요. 아이돌이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하면 반기를 들기도 합니다. 오디션 조작 사건이 드러나면서 선발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는 계기도 만들어졌습니다. 다만 아직 아이돌 인권과 관련된 인식이 부재한 것 같습니다. 아이돌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앞으로 공청회나 간담회 등을 통해 국내 문화산업 전반의 문제를 짚어보는 과정이 계속 이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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