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속도 빨라지는 아세안, 고민 깊어지는 한국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7 16:00
  • 호수 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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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이전으로 문제 해결했던 기존 방식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가 지속되면서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소비 여력 감소를 가져오며, 고령층 증가는 사회적 비용 부담 및 경제적 활력 저하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은 노동력이 풍부하며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이전하고 있다. 베트남으로 대표되는 아세안 지역이 대표적이다. 아세안 지역을 방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보면서 이 지역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 전망하게 된다.

아세안 지역의 경우 중위연령이 28.9세인데 이는 일본(46.5세), 독일(46.3세), 한국(42.6세), 미국(40.8세)은 물론 심지어 중국(36세)에 비해서도 한참 낮은 수준이다. 아세안은 젊은 인구를 토대로 향후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곳으로 꼽히고 있으며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등도 아세안 지역에 대한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최근 아세안 지역에서 정년연장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베트남으로 대표되는 아세안 지역은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고령화 추세를 피해 가지 못하면서 정년연장 등을 추진 중이다. ⓒ 연합뉴스
베트남으로 대표되는 아세안 지역은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고령화 추세를 피해 가지 못하면서 정년연장 등을 추진 중이다. ⓒ 연합뉴스

정년연장 추진 중인 아세안 국가들

최근 싱가포르는 현행 62세로 되어 있는 정년을 2022년 63세로 연장하는 것을 시작으로 2030년에는 65세로 연장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베트남도 현재 60세인 남성 노동자 정년을 2021년부터 62세로 연장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57세인 정년을 향후 3년마다 1년씩 연장해 2043년에는 65세로 늘리는 방안을 이미 시행하고 있다. 젊은 지역으로 간주되고 있던 아세안 지역 역시 고령화 추세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지속 중인 경제성장은 중산층 확대와 경제적 수준 상승을 가져왔지만 한편으로는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가속화를 가져왔다.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출산율이 저하하고, 평균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고령화 추세가 빨라지는 현상은 아세안 지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소득이 선진국 수준에 이르고 있는 싱가포르는 합계출산율이 1.2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태국(1.5명), 베트남(2.0명), 말레이시아(2.0명) 등도 인구 유지를 위한 최소 출산율인 2.1명을 하회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필리핀(2.6명), 인도네시아(2.3명)는 아직까지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조만간 다른 국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 속도 역시 빨라지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65세 인구 비중은 이미 13%에 이르고 있으며, 태국도 싱가포르와 유사한 수준이다.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7% 중반을 기록하면서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중 7% 이상)에 진입했으며, 빠르게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중 14%)로 변화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까지 115년, 미국은 69년, 일본은 26년 걸린 데 비해 아세안 국가의 경우 22년이면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는 아세안 국가들의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풍부한 노동력 공급이 미래에는 유지될 수 없음을 알려준다. 또 생산가능인구 증가에 따른 경제성장 효과인 인구배당효과도 점차 약화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충분한 경제적 부를 축적하지 못한 아세안 국가들로서는 어두운 미래가 눈앞에 닥친 셈이다. 2018년을 기준으로 50세 이상의 고령 노동인구 비중은 싱가포르 20.2%, 태국 18.1%, 베트남 15.8%에 이르고 있어 이들 국가에 고령사회는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닌 현실의 문제다.

고령화 사회 또는 고령사회로의 이전은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의료비용을 포함한 사회적 부양 부담 증가를 가져온다. 100여 년에 걸쳐 고령사회 현상이 진행돼 온 유럽 선진국들은 단계적으로 연금을 포함한 사회보장제도를 확대·개선함으로써 대응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전체 노동인구 대비 공적 연금 가입자 비중이 현저히 낮은 아세안 국가들로서는 향후 닥쳐올 변화가 큰 충격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하루 5.5달러로 생활을 영위하는 빈곤 인구 비중 역시 여전히 50% 수준에 이르고 있다.

대규모 제조업보다는 중소 규모 기업들이 고용을 담당하는 아세안 국가들은 중소기업의 열악한 상황을 고려해 노동자의 공적 연금 가입을 의무화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아세안 국가들의 공적 연금 가입자는 OECD 평균인 85.7%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30~45% 수준이다. 빠른 고령사회로의 전환은 충분한 사회보장체계가 갖춰지지 못한 아세안 국가들로서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정년연장을 통해 퇴직 후 소득 없는 기간을 줄임으로써 사회안전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얼마 전 고령화 사회의 대책으로 정년연장을 검토했으나 기업 부담 증가, 청년실업 등의 문제로 인해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반면 아세안 지역은 우리와 달리 호봉제가 아닌 직무급 및 성과급을 채택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정년연장에 따른 비용 부담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아세안 국가들도 기성세대에 대한 정년연장은 청년실업 문제로 인해 조심스러운 태도다. 청년실업률이 비교적 낮은 태국(3.7%), 베트남(6.9%)의 경우 정년연장에 대해 적극적이지만 청년실업률이 높은 인도네시아(16%), 말레이시아(12%) 등은 소극적인 입장이다.

 

아세안의 고령화, 우리 기업에 부정적 영향

아세안 지역의 급속한 고령화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미래 산업구조 측면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 풍부한 노동력과 낮은 임금을 활용할 수 있는 아세안 지역으로의 사업장 이전 효과는 단기간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체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연구개발(R&D) 기능이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력 부족과 고령화는 이 지역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아세안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아세안 지역마저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어디로 옮겨갈 수 있을까. 아프리카가 있으나 거리, 정치·경제적 안정성 등을 감안하면 대안으로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각종 생산설비의 해외 이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왔던 기존 방식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지 모른다. 국내 노동력을 더 발굴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여기에 로봇 보급을 확대하고, 산업현장에 AI(인공지능)를 비롯한 생산성 향상을 위한 각종 수단들을 적극 도입하는 방안 역시 더 빠르게 추진돼야 한다. 고령화 속도를 늦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거기에 맞춰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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