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뚱뚱하게 키우는 법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8 07:30
  • 호수 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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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적게 자는 아이, 비만·자살 위험 증가…소아·청소년, 8~9시간 자야

역설적이지만 우리 아이들을 뚱뚱하게 키우려면 잠을 적게 자도록 하면 된다. 소아 비만을 예방하려면 아이를 충분히 재워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연구로도 밝혀졌다. 심영석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2007~15년 질병관리본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10~18세 소아·청소년 6048명의 수면 시간과 비만 간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수면 시간이 짧을수록 비만 및 과체중일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 시간이 매우 짧은 경우 비만과 과체중 비율이 1.7배 높아졌고 복부비만을 의미하는 허리둘레는 1.5배 커졌다. 남자는 수면 시간이 매우 짧으면 비만은 1.2배, 과체중 비율은 1.8배 높아졌다. 여자는 비만은 2.3배, 과체중은 1.7배 높아졌다.

오래 자는 것도 좋지는 않다. 권장 수면 시간보다 잠을 많이 잔 소아·청소년은 혈중 중성지방(트리글리세리드)이 증가했다. 오래 자는 여자아이는 권장 수면 시간을 자는 여아보다 트리글리세리드 수치가 3.86배 증가했다. 심영석 교수는 “수면 시간이 짧으면 식욕을 조절하는 시상하부의 활동이 감소해 단기적으로 체중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비만을 초래한다. 또 짧은 수면은 성장호르몬 분비를 비정상적으로 촉진해 식욕을 증가시킨다. 수면은 소아·청소년의 성장과 발달 및 건강 상태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성인이 된 후 비만과 심혈관계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적절한 수면 시간을 유지하기 위한 가정과 사회의 역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 일러스트 황중환
ⓒ 일러스트 황중환

문제는 뚱뚱한 아이는 성인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2006년 대한비만학회는 성장기 비만의 약 68%가 성인 비만으로 이어진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전문의들은 비만 청소년이 비만 성인이 되는 비율을 최대 80%로 보고 있다.

심지어 성인 비만은 2~6세에 결정된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다. 독일 라이프치히대학병원의 안제 코너 교수는 0~18세 소아·청소년 5만1505명의 체질량지수(BMI)를 추적 조사했다. 2018년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비만 청소년 53%가 5세부터 과체중·비만을 보였고 3세 때 비만한 아이의 90%가 청소년 시기에도 과체중·비만으로 이어졌다. 특히 2~6세에는 BMI가 증가하지만 비만한 아이는 그 증가율이 월등히 높았다. 연구팀은 2~6세가 성인 비만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문진수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인스턴트 음식, 튀김, 당류를 줄이고 통곡을 많이 섞은 잡곡밥, 과일, 채소를 먹는 것만으로도 비만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단체생활을 시작하면서 섭취하는 급식에도 비만 예방을 위해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아울러 연령에 맞는 신체활동과 운동도 추가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적절한 하루 수면 시간은 얼마일까? 적절한 수면이란 다음 날 낮에 일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졸리지 않을 정도를 말한다. 미국수면재단(NSF)은 연령별 권장 수면 시간을 정한 바 있는데 초등학생(7~13세)은 9~11시간, 중·고등학생(14~17세)은 8~10시간이다. 어린이는 약 9시간, 10대 청소년은 8시간 정도 자야 한다는 게 전문의들의 조언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 10명 중 4명은 수면 부족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보건복지부가 2018년 9~17세 아동·청소년 2510명을 조사한 결과 이 가운데 38%가 잠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12~17세 아이들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9%가 수면 부족을 호소했다. 9살에서 17살까지의 아동과 청소년들의 평균 수면 시간은 학기 중 8.3시간이었다. 수면 시간은 나이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9살에서 11살까지의 평균 수면 시간은 9.2시간이었으나 12~17세는 8시간도 채 되지 않는 7.8시간이었다. 수면 부족 이유는 학원 수업과 과외 때문이라는 답이 45.7%로 가장 많았고 야간 자율학습 18.7%, 가정학습 13%, 게임 12.9% 순이었다.

 

9~24세 청소년 비만율 25%

이와 비례해 비만 아이들이 늘고 있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5월 발표한 ‘2019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청소년(9~24세) 876만여 명 가운데 비만군(과체중·비만) 비율은 25%이다. 우리 아이 4명 중 1명은 정상 체중을 유지하지 못하는 셈이다. 이 비율은 2017년 23.9%에서 1.1%포인트(P) 증가한 수치다.

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소아·청소년 비만 인구가 40년 전보다 10배 증가했다는 영국의 역학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연구에 참여한 마지드 에차티 임페리얼보건대학 교수는 “세계적으로 소아·청소년 비만이 급증한 원인은 식품 마케팅과 정책의 영향”이라며 “소아비만 증가율 증가 추세가 현재대로라면 2022년에는 세계 소아·청소년의 비만 인구는 저체중 인구보다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소아 비만의 원인은 과다한 음식 섭취, 유전, 사회·경제적 환경요인, 정신적인 장애, 내분비질환, 운동 부족 등이다. 소아 비만이란 비정상적인 체지방 증가로 인해 대사장애가 유발된 상태를 말한다. 소아 비만은 성인 비만과 달리 지방조직 세포 수가 증가해 체중조절이 어려운 특징이 있다. 이쯤 되면 소아·청소년 비만은 단순히 통통한 게 아니라 병이다. WHO도 비만을 질병으로 분류했다. 여러 성인병 위험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사춘기 무렵의 청소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회부적응과 같은 심리적인 문제까지 동반할 수 있다.

실제로 초·중·고등학생 2명 중 1명 이상은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3명 중 1명은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정책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우리 아이의 행복감은 초등학생 90.4%, 중학생 84%, 고등학생 76.4% 등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행복하지 않은 이유 1순위는 ‘학업 부담’이었다. ‘학업 부담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한 학생 비율이 2013년에는 37% 정도였다가 지난해에는 44.5%로 7%P 넘게 증가했다. 또 지난해 응답 학생의 52.4%는 수면 부족을 호소했고, 자살 생각 경험 비율도 33.8%에 달했다.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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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시간은 정신적 문제와도 연결돼 있어

신체적인 비만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와 연결돼 있는 수면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게 전문의들의 권고다. 등교 등으로 인해 일어나는 시각이 비슷하므로 아이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각을 지금보다 많이 당길 필요가 있다. 통계청의 2017년 청소년종합실태 조사에 따르면 9~24세 청소년이 잠자리에 드는 시각은 오후 11시28분이다. 13세 이상은 오후 11시30분 이후에, 9~12세 어린이도 오후 10시19분에 잠자리에 든다.

성인 비만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시기라는 2~6세 아이조차 다른 나라 어린이보다 늦은 시각에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성조셉대학 어린이병원 정신분석전문의 조디 민델 교수는 17개국(중국·홍콩·인도·인도네시아·한국·일본·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대만·태국·베트남·호주·캐나다·뉴질랜드·영국·미국)의 3세 이하 아이 2만9000여 명이 잠자리에 드는 시각을 조사한 결과를 2010년 수면학회지(Sleep Medicine)에 게재했다.

이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각국 아이의 잠자리에 드는 시각에 10분 정도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홍콩 아이가 잠자리에 드는 시각은 평균 오후 10시17분으로 가장 늦었고 뉴질랜드 어린이는 가장 이른 오후 7시28분 잠을 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이 침대에 들어가는 시각은 7시대(뉴질랜드·호주·영국), 8시대(인도네시아·캐나다·필리핀·미국·태국·중국), 9시대(일본·베트남·싱가포르·말레이시아), 10시대(한국·대만·인도·홍콩)까지 다양했다. 한국 아이들은 평균 오후 10시6분에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8시52분), 중국(8시57분), 일본(9시17분)보다 월등히 늦은 시각이다. 민델 교수는 “호주·뉴질랜드의 아이와 홍콩·한국 어린이의 수면 시간이 2시간30분 정도 차이가 났다”고 말했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2011년 2만여 명의 중·고등학생의 수면 시간을 조사했더니 고등학교 3년생은 평균 5시간30분 잔다. 미국과 일본의 같은 학년보다 1~2시간 적게 자는 것이다. 중·고등학생의 3분의 1은 불면증이고 학생 10명 중 7명은 수업시간에 존다”며 “미국국립보건원(NIH)은 2006년 어린이 9시간 자기 캠페인을 펴면서 질병과 자살 예방 등 다양한 혜택을 봤다. 한국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자는 교육이나 캠페인이 없었기 때문에 수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또 부모가 아이를 일찍 재우고 싶어도 학교나 학원이 늦게 마친다. 국가적으로 이런 부분을 손질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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