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反트럼프] ‘나치 반성’과 ‘트럼프 비판’의 맥락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8 10:00
  • 호수 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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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굴복시켰다는 트럼프 자화자찬이 불편한 독일
방위비 분담금·관세 인상보다 미 쇄국주의 더 우려

12월3일과 4일 영국에서 진행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는 독일에 여러모로 매우 중요했다. 독일 국민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쟁점은 방위비 분담금과 관세였다. 꼭 나토 정상회의가 다가와서가 아니라 올해 초부터 독일 언론에서는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기사가 많이 보도됐다.

미국 측에 직접 방위비 분담금을 내는 한국과는 달리 독일은 간접 방위비 분담금을 내고 있다. 나토로부터 정해진 금액은 국내총생산(GDP)의 2%다. 독일을 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비판 역시 이 부분에서부터 비롯된다. 공식적인 나토 측 통계 자료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GDP의 3.42%인 반면, 독일의 방위비 분담금은 GDP의 1.38%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바로 여기에 불만을 표해 왔다. 미국의 분담금이 너무 높고 유럽연합국, 특히 독일과 같은 경제 강대국의 분담금은 너무 낮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나토가 전 세계의 평화가 아닌 유럽만을 위한 기구라는 식의 비판도 곧잘 해 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2월4일 나토 정상회의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지나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 REUTERS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2월4일 나토 정상회의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지나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 REUTERS

트럼프 ‘엉터리 수치’에 반감

그런 면에서 이번 나토 정상회의의 전망은 극히 어두웠다. 미국과 유럽, 정확히 말하면 트럼프와 유럽 정상들 간 갈등이 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나토 정상회의의 뚜껑을 열고 보니, 트럼프는 이번 회의를 매우 성공적이라며 아낌없이 칭찬했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는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이번 새로운 합의에 따르면 2021년까지 미국은 전체의 22.1%를 부담했던 기존 비율을 16.35%로 낮추는 반면, 독일은 기존 14.8%에서 미국과 동일한 16.35%를 부담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독일로선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트럼프의 비난이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독일은 올해도 비록 목표치로 설정된 2%에는 못 미치지만, 나토에 473억 유로(약 62조6400억원)를 약간 웃도는 금액을 냈다. 이는 이미 지난해에 비해 12.9% 올라간 금액이다. 내년엔 현재 1.38%보다 높은 GDP의 1.42%, 최종적으로 2024년까진 GDP의 1.5%를 분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독일 측의 부담은 이미 매우 커질 대로 커진 상태다.

관세 쟁점도 맞물려 있다. 트럼프는 틈틈이 독일에서 수출하는 항목에 대한 관세를 높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미국의 경제력 향상을 모토로 하고 있는 트럼프의 주요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일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 내수시장을 견고히 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독일 유력 일간지 벨트(Welt)는 수치를 통해 반박하는 기사를 냈다.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미국으로 수출된 금액은 총 893억 유로(약 118조2600억원)로 이전보다 약 5.5% 올랐다. 그러나 같은 기간 미국에서 수입된 것은 9.4% 올랐다는 것이다. 즉 무역거래상 미국의 수출항목이 더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독일의 경우 수출 성장률이 점차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미국이 독일과의 무역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수입품의 관세를 올린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고 해도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보도되기도 했다.

독일 내에서 제기되는 트럼프에 대한 구체적 비판은 바로 그가 늘 수치를 언급하며 독일을 공격하지만, 정확히 따지고 보면 실질적으로는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반적으로는 미국 쇄국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의 정책이 비판의 중심에 있다. 독일의 난민 정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독일은 일부 자국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으로서 세계 질서에 대한 책임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왔다. 나토 정상회의에서 메르켈 독일 총리가 시리아·터키·러시아 등 자국이 아닌 지역에 대한 발언을 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설명된다. 이 때문에 이를 무시하고 자국의 이익만을 취하려는 트럼프의 행보는 독일인들에게 매우 편협하고 졸렬한 이기주의자로 비친다.

 

세계 질서 흐트리는 트럼프 정책 비판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시작으로 세계무역기구(WTO)를 무력화시키기까지, 독일이 트럼프에게 보내는 비판들을 보면, 미국이 모든 세계 질서를 흐트려 놓고 있다는 부분에 방점을 찍고 있다. 물론 WTO 상소 기구의 기능이 정지됨으로써 독일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제조업이 강한 독일은 그만큼 수출 의존도가 심하고, WTO 역할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일 여론은 자국이 입을 타격보다, 세계 무역을 관할하는 기구가 미국 하나 때문에 무력화된 사태에 대해 더욱 비판하고 있다.

나토 정상회의가 큰 갈등과 차질 없이 진행된 점, 트럼프와 메르켈이 이를 성공적이라 언급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이러한 표면적인 겉치레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방위비 분담금이 올라가는 것은 그렇게 규정된 것이니 목표치를 달성해야 할 것이고, 관세는 트럼프가 경고한 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독일이라는 국가에 경제적 타격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이지만, 독일 국민은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독일이 미국, 특히 트럼프 체제를 비판하는 부분은 바로 강대국으로서 세계에 등을 돌리고 있는 자세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독일인들이 트럼프를 공격하는 주요 부분 역시 세계 질서를 위해 세워진 협정과 기구들을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무시한다는 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들은 트럼프로 인해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하고, 환경오염이 가속화된다는 지점들을 더욱 지적한다. 이 문제들이 단지 미국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에도 뿌리를 내릴까 걱정한다. 일각에선 극우파인 독일대안당(AfD)의 높은 지지율 원인을 트럼프가 전 세계에 은연중에 퍼뜨리고 있는 메시지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과거 나치 시절에 대한 독일의 기억과 반성이 현재 미국 트럼프 체제에 대한 비판 여론에도 고스란히 스며 있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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