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세계의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 소종섭 편집국장 (jongseop1@naver.com)
  • 승인 2019.12.16 09:00
  • 호수 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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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밥을 굶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십 리 시골길을 내달려간 학교에서는 빵을 급식했습니다. 빵값조차 내지 못해 선생님으로부터 혼난 기억도 있습니다. 겨울에는 말린 감과 볶은 콩이 주된 간식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배불리 먹는 일이 소원이었습니다. 마을 언저리를 벗어나 생활하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마을이 세상의 전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불과 50년 전 일이지만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풍요롭습니다. 음식을 남기는 것이 문제가 될 정도입니다. 먹고 싶은 것을 찾아다니면서 먹는 시대입니다. 외국을 가는 것이 마치 어릴 적 옆동네 가는 듯합니다. 이처럼 세상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인류의 노력은 지칠 줄 모릅니다. 보이지 않게 한 걸음 한 걸음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진전을 이루어갑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삶은 아름답고 세상은 살 만합니다.

《팩트풀니스》를 쓴 한스 로슬링은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지식이 있고 없고, 재산이 많고 적고를 떠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라는 질문에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늘었을까요, 줄었을까요, 그대로일까요. 사실은 ‘절반으로 줄었다’입니다. 하지만 한스 로슬링에 따르면 정답을 제대로 맞힌 사람은 평균 7%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은 어떨까 봤더니 평균보다 낮은 4%였습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보다 더 세상이 폭력적이고 희망이 없으며 살기 싫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 뇌는 극적인 본능 탓에 세상을 오해하고 과도하게 극단적인 세계관을 형성한다. 하지만 극적인 것을 흡수하더라도 어느 정도 조절하는 법을 배울 필요는 있다. 그러지 않으면 그쪽으로 식탐이 생겨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채 방향을 잃고 헤매기 쉽다’는 그의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정치권을 포함한 우리 사회가 상대방을 강하게 비판하기 전에 먼저 자신들을 돌아보면 좋을 듯합니다. 과도한 프레임으로 상대를 규정하고 비판함으로써 존재감을 보이고 표를 얻으려 하기보다는 냉철한 사실을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비전으로 승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이미 굳어진 세계관을 바꾸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니까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30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판문점을 찾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있다. ⓒ 청와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30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판문점을 찾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있다. ⓒ 청와대

북한도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하는 측면도 있겠지요. 미국과 남한의 위협을 과장하는 것입니다. 한때 새 역사를 만들어갈 듯하던 북·미 간 대화가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봄은 참 더디기만 합니다. 전문가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번 호 커버스토리를 통해 만나보시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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