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인, 전쟁 같은 삶을 산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7 10:00
  • 호수 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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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회원국 중 가장 오랜 기간 일하고도 가장 가난하게 살아

최성억씨와 이병모씨는 노인이다. 성억씨는 전직 강력계 형사였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직장에선 모범상과 청백리상을 받았고, 가정에서도 성실한 가장이었다. 하지만 아내에게 치매가 찾아오고 사업하던 아들의 빚으로 아파트와 연금을 잃으면서 순식간에 극빈층으로 전락했다. 설상가상으로 거주 중인 임대아파트에선 보증금 인상을 요구한다. 병원비가 오래 밀려 아내를 집으로 데리고 온 날 그는 퇴거통지서를 받는다. 길바닥에 나앉기 직전 기적처럼 우연히 상가건물 경비 자리를 소개받게 된다. 그런데 성억씨가 그 일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처지가 어려운 경비원인 병모씨를 밀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병모씨는 만성 천식 환자이면서 폐암 말기 선고까지 받은 시한부 환자지만 지병이 있는 아내의 고액 치료비 때문에 일자리가 절실하다. 자식들은 부모를 돕기는커녕 사망보험금을 노렸다.

두 사람은 모두 가상인물이다. KBS가 최근 방영한 드라마 단막극 《그렇게 살다》의 주인공들이다. 현실은 이와 얼마나 다를까. 드라마는 현실을 너무 비관적으로 극단적으로 그려냈을까. 통계는 답한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생계비 마련을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오랜 기간 경제활동에 참가한다. 그런데도 노인의 소득빈곤율은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게다가 사회적 고립 정도가 심해 노인 자살률 또한 1위다. 그것도 압도적 1위다.

성억씨와 병모씨의 사례에서 잘 나타나듯 한국 노인 문제는 복합적인 문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부모를 돌봤으나 자신들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는 첫 세대. 자식들에게 다 퍼주어 자산은 부족한데, 받을 연금은 턱없이 부족하다. 노인을 위한 일자리는 양과 질 모두 좋지 않다. 그나마 단기 일자리라도 얻으려고 주민센터에 가보면 대기표를 뽑고 줄줄이 대기 중인 노인들이 많다. 힘들게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이를 오래 유지하긴 어렵다. 사회안전망이 촘촘하지 않아 가족 중 누구 한 명 아프면 그 구멍은 가족이 메우게 된다. 평생 한 사람의 시민으로 정직하게 성실히 살아왔음에도 노년에 들어서면 최소한의 삶의 존엄도 지키기 어렵다. 맞다. 삶의 존엄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 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고성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한국 노인들

때때로 통계는 현실보다 더 현실을 잘 보여준다. 한국 노인에 대한 통계는 차마 표현하기 잔인한 수준이다. 통계는 한국 노인들의 삶이 전쟁터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시사저널은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와 통계청 등이 발표한 자료로 한국 노인들의 삶의 한 단면을 정리했다.

입법조사처가 12월11일 발표한 ‘OECD 통계에서 나타난 한국 노인의 삶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에서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70~74세 한국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회원국 1위, 65~69세는 2위를 차지했다. 특히 작년 70~74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5.3%로 OECD 평균(16.2%)의 두 배를 웃돈다.

반면 55~59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74.7%로 OECD 평균인 73.3%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연령이 높아질수록 순위는 급상승했다. 60~64세의 경우 11위다. 즉 한국 노인들은 전 세계 선진국 노인 중 가장 늦게까지 일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노인이 OECD 회원국들의 노인과 비교해 더 오랜 기간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이유는 노인의 ‘소득 빈곤’과 관련이 있다. 한국 노인의 소득빈곤율은 43.8%(2016년 기준)로 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다. OECD 평균은 13.5%로 우리와 3배 넘는 차이가 난다. 2위를 기록한 에스토니아와도 8%포인트 이상 차이를 기록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66~75세 노인의 소득빈곤율은 35.5%, 76세 이상 초고령층 노인의 소득빈곤율은 55.9%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더 가난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인 빈곤율은 전체 노인 중 중위소득의 50% 미만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중위소득이란 모든 가구를 소득 순으로 세웠을 때 정확히 중앙에 위치하는 가구의 소득이다. 즉 한국의 76세 이상 노인 10명 중 5명 이상은 평균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자산 구성이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 중심으로 이뤄진 한국의 경우 가처분 현금소득만으로 빈곤을 설명하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설명 역시 한 단면만을 보는 것이다. 원시연 입법조사처 조사관의 설명이다. “한국 노인의 공적 연금 수급률이 46%(2018년)이고,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후에도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로 옮겨 오랜 기간 종사하며, 70세 이후에도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주된 이유가 생계비 마련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감안하면 한국 노인들은 생계 유지에 필요한 가처분소득이 부족한 상황이고 그로 인해 계속 소득이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는 것이 확인된다.”

‘가난해 아프다’ 스스로 세상 등지는 노인들

가난하면 아프기 쉽다. 세상의 슬픈 이치다. 한국 노인의 주관적 건강상태는 2017년 기준 18.5%다. 주관적 건강상태란 자신의 전반적인 건강상태가 ‘좋다’ 또는 ‘매우 좋다’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다. 즉 우리나라 노인 중 자신의 건강상태에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경우가 5명 중 1명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전체 35개국 중 30위다. 원 조사관은 “노년기에 겪는 다양한 만성질환 경험과 응답자의 주관적인 답변임을 참작하더라도, 자신의 건강을 좋은 상태라고 생각하는 노인 비율이 70%를 상회하는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 호주 등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은 순위만 낮은 것이 아니라 격차도 매우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아픈 노인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다는 사실이다.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경우 갑자가 많은 돈을 빌려야 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전체의 66%를 넘었다. 몸이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 없다는 경우는 25.5%,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고 답변한 경우는 27.4%다. 조사된 3가지 항목에서 노인의 사회적 고립도 수준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가장 높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국가와 공동체, 가족 모두가 돌봐주지 않는다면 버텨낼 도리가 없다. 그리하여 적잖은 한국 노인들은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다. 인구 10만 명당 65~69세는 37.1명, 70~74세는 54.9명, 75~79세는 72.5명, 80~84세는 81.5명, 85세 이상은 87.1명 등으로 자살률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급속히 증가한다. 80~84세의 노인 자살률은 OECD 평균의 7배가 넘는다. 가장 격차가 적은 게 65~69세의 약 4배다.

한국의 자살률과 관련한 특징은 노인 자살률이 다른 연령집단에 비해 현저히 높다는 것이다. 이는 아동, 청소년, 성인의 소득빈곤율에 비해 노인의 소득빈곤율만 현저히 높은 특징과 연결된다. 이 땅에서 노인들은 지금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노인 한 명 돌보는 데 온 마을이 필요

이 얽히고설킨 문제는 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전문가들은 국가와 지역공동체, 시민 모두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 조사관은 “지역공동체의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노인에 대한 다차원적인 지원 수준을 높일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조언했다. 커뮤니티 케어를 통한 복지 서비스 제공 간 연계가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국가가 앞장서고, 생애주기별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지역사회 인프라를 통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더해 시민교육 강화를 통해 시민 스스로가 삶에 대한 다양하고 성숙한 관점을 키워 나가야 한다. 즉 ‘아이 한 명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이제는 ‘노인 한 명 돌보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적정 노후 생활비 月 243만원, 준비되셨나요?

“PISA의 탑으로 포트폴리오 다시 짜라”

국민연금연구원의 노후준비실태조사(2017년)에 따르면 50세 이상의 중·고령자들이 생각하는 적정 노후 생활비(부부 기준)는 월 243만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기준은 월 154만원이다. 중·고령자들은 최저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노후 생활비는 부부 기준 176만원, 개인 기준 108만원 정도라고 답했다. ‘적정 노후 생활비’란 큰병 없이 건강한 상태에서 표준적인 노후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돈을 뜻한다.

서울 거주자의 경우 부부 기준 적정 노후 생활비를 284만원이라고 답해 광역시(236만원)나 도 지역(233만원)에 사는 사람보다 노후에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학력 수준이 높을수록 적정 노후 생활비로 제시한 금액이 더 커졌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현역에서 떠나면 그동안 축적해 둔 자산에서 생활비를 빼서 살아야 하므로 자산 관리 방식을 완전히 바꿀 것을 추천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피사의 탑’을 쌓아야 한다. P·I·S·A 포트폴리오로 준비하라는 말이다. PISA란, 연금(Pension)과 보험(Insurance), 안전(Safe), 투자(Active)의 영어 앞글자를 따온 것이다. 월 생활비는 미리 준비한 연금으로 충당한다. 질병·사고 의료비는 보험으로 지출한다. 예비자금과 여유 생활비는 안전하게 굴린다. 마지막으로 잉여자금은 적극적인 투자로 불려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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