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쇄살인범 그 후] ‘돈’에 집착한 맨손의 악마 정두영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7 07:30
  • 호수 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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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선고받고 수감 중 탈옥 시도하다 발각되기도

그의 범죄는 점점 진화해 갔다. 지난 1986년 5월30일 오전 10시쯤이었다. 부산시 남구 광안동에 있는 S초등학교 뒤편 담장 앞에서 왜소한 체구의 한 남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담벼락을 붙잡더니 훌쩍 넘어갔다.

그는 체육수업 중인 빈 교실에 들어가 담임교사의 핸드백 안에 있던 현금을 훔쳤다. 더 이상 돈이 될 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하자 교실 밖으로 나왔다. 이때 교무주임인 이아무개 교사(58)와 딱 마주쳤다. 당황한 남성은 바지 주머니에서 과도를 꺼내 이 교사의 목을 찌르고 달아났다. 다행히 급소를 피해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범인은 어릴 때부터 남의 물건을 훔쳐 소년원을 들락거렸던 열여덟 살의 정두영이었다. 8일 후인 6월7일 밤, 정두영은 과도를 몸에 지니고 수영구 일대를 배회하며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오후 10시쯤, 망미동의 한 골목을 순찰하던 자율방범대원 김아무개씨(43)는 수상한 남성을 목격하고 검문에 나섰다. 이것저것 따져 묻자 정씨는 주머니에 있던 흉기를 꺼내 순간적으로 공격했다. 가슴을 찔린 김씨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이내 숨졌다. 정두영의 첫 살인이다.

살인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씨는 12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했다. 습관처럼 범죄를 저지르던 정씨, 교도소에서 새 사람이 됐을 리가 만무했다. 1998년 6월 만기 출소한 그는 대전으로 무대를 옮겨 또다시 남의 물건을 훔치다 구속돼 6개월을 복역했다.

ⓒ SBS 화면 캡처
ⓒ SBS 화면 캡처

시체 옆에서 아령으로 금고 부숴

첫 번째 살인 후 정두영은 범행 패턴을 바꿔 흉기 대신 목장갑 하나만을 소지했고, 범행도구는 현장에서 찾았다. 1999년 6월2일, 정두영은 부산 서구 부민동 부유층 주택가를 배회하다 한 집을 골라 침입했다. 집에는 가정부 이아무개씨(58) 혼자 있었다. 정씨는 주방에 있는 과도를 챙긴 후 안방으로 들어가 현금 수십만원을 훔쳐 나오다 이씨와 마주쳤다.

“꼼짝 마!” 정두영은 칼로 이씨를 위협해 화장실로 끌고 가 양손을 결박했다. 이씨가 소리를 지르자 화장실 바닥에 머리를 찧은 후 주먹과 발로 폭행해 살해했다. 그는 범행에 사용한 칼은 집 뒤편에 놓고, 피 묻은 옷과 신발은 담벼락 밑에서 불에 태워 증거를 인멸했다. 이 집이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의 옆집인 것이 알려지면서 언론에서 화제가 됐다.

약 3개월 후인 9월15일, 정두영은 다시 범행에 나섰다. 이번에는 부산 서구 동대신동의 고급 빌라촌에 침입했다. 6층의 빈집에 침입해 현금과 귀금속 등을 훔친 다음 베란다를 이용해 옆집으로 들어갔다. 이때 애완견이 짖으면서 가정부에게 발각됐다. “누구세요”라고 소리치자 방으로 끌고 가 마구 폭행해 살해했다. 방을 뒤져 금품을 챙긴 정씨는 발자국 등 증거를 인멸하고 유유히 집을 빠져나왔다.

연이어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부산 경찰도 긴장했다. 수사본부를 차리고 범인 검거에 나섰다. 그러자 위기를 느낀 정두영은 범죄 무대를 잠시 울산으로 옮긴다. 10월21일, 울산 남구의 한 고급 주택에 침입했다. 집 안에는 어머니(53)와 아들(24)이 있었다. 정씨는 안방으로 들어가 금품을 찾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집주인에게 들키자 주먹과 발로 공격했다. 비명소리를 듣고 2층에 있던 아들이 내려와 정두영을 발견하고 일격을 가했다.

정씨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남성이 등장하자 맨손으로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신발장 위에 있던 망치를 들었다. 결국 모자는 정두영의 망치에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다시 집 안을 뒤져 현금과 귀금속 등을 챙겼다. 이때까지 경찰은 정두영의 존재를 모른 채 그를 용의선상에조차 올리지 않았다. 부산과 울산 사건의 연관성도 찾지 못했다. 그런 사이 정두영은 보란 듯이 살인 횟수를 늘려갔다.

2000년 3월11일 오전, 정두영은 목장갑을 챙긴 후 집을 나섰다. 그가 향한 곳은 부산의 대표적 부촌인 서구 서대신동 주택가였다. 낮 12시30분쯤, 한 단독주택 담벼락을 넘었다. 사업가 박아무개씨(41) 집이었다. 열린 현관문으로 집 안을 들여다보니 거실에서 갓난아기가 놀고 있었다. 집 안으로 잠입한 정씨는 금품을 훔친 후 가정부인 김아무개씨(55)와 박씨의 처형인 김아무개씨(48)를 살해했다. 두 사람은 두개골이 파열되는 등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정두영은 곧바로 도주하지 않았다. 안방에 있던 대형 금고를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다. 그는 두 여성의 시체를 옆에 둔 채 아령으로 금고를 부수기 시작했다. 집 안에는 ‘쿵 쿵’하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참 금고 문을 내리치고 있던 중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운동을 나갔던 집주인 박씨의 아내(39)였다.

그가 가정부와 언니를 부르자 정두영이 나타나 칼로 위협해 안방으로 끌고 갔다. 야구방망이로 내리치자 “살려주세요, 아기가 있어요”를 반복하며 애원했다. 잠시 마음이 흔들린 정씨는 폭행을 멈추고는 “아기 잘 키워, 신고하면 죽인다”고 말하며 이불을 덮어씌웠다. 이렇게 박씨의 아내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정두영은 2시간에 걸쳐 금고를 부순 후 금품을 훔쳐 빠져나왔다. 이 집에서 현금 등 6700여만원을 챙겼다. 이 사건은 정두영이 꼬리가 잡히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경찰은 박씨 아내의 진술을 토대로 용의자 몽타주를 작성해 전국 경찰에 수배했다.

10개월 사이 9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정두영이 2000년 4월17일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 박아무개씨 집에서 가정부 등 2명을 야구방망이로 잔인하게 살해하는 범행 과정을 태연하게 재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10개월 사이 9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정두영이 2000년 4월17일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 박아무개씨 집에서 가정부 등 2명을 야구방망이로 잔인하게 살해하는 범행 과정을 태연하게 재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검거

약 한 달 후인 4월8일, 정두영은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 있는, 철강회사를 운영하던 정아무개 회장(76)의 집 담장을 넘었다. 뒤쪽 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 주방에서 과도를 챙겼다. 2층으로 올라가 있다가 1층 거실로 내려오면서 정 회장 부인 손아무개씨(73)와 마주쳤다.

그가 소리를 지르자 당황한 정두영이 칼로 목을 찔렀다. 이를 가정부 황아무개씨(60)가 목격했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자 뒤따라가 살해했다. 정 회장의 친척 김아무개씨(75)는 화장실에서 나오다 정두영의 주먹과 발에 맞아 실신했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란 정 회장이 거실로 나오자 안방으로 끌고 가 금고를 열게 한 후 살해했다. 정두영은 금고에서 현금과 수표 2400여만원을 챙기고 신발장에 있던 운동화를 신고 집 안 곳곳을 돌아다녔다. 범행 현장에서 족적이 나왔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 그는 마당으로 나와 주차돼 있던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달아났다.

목격자가 나오고 몽타주가 그려지면서 정두영의 존재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공개했다. 경찰은 그를 용의선상에 올리고 행적 파악을 위해 전화를 걸기도 했다. 정두영은 너무도 태연하게 “겨우 맘 잡고 사는데 너무 그러지 마십쇼”라며 대응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4월12일, 정두영은 충남 천안시 원성동의 고급 주택가에 있는 김아무개씨(55) 집에 침입했다. 그는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던 기업가였다. 정씨는 주방에 가서 흉기를 챙기고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보는 여유를 부렸다.

김씨의 아내 이아무개씨(51)는 외출 후 집에 들어왔다가 정두영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정씨의 요구대로 집 안에 있던 현금 300만원을 챙겨줬다. 돈이 적다고 생각한 정두영은 이씨를 시켜 “남편에게 전화해 1000만원을 만원짜리 지폐로 보내라”고 시켰다. 이씨는 기지를 발휘해 용어나 호칭을 평소와는 달리 사용하고 말끝마다 “알았지?”라고 반복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의 신고로 경찰이 개입했다. 경찰은 이씨의 안전을 우려해 돈가방을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정씨가 집을 나서려는 찰나 포위하고 있던 형사들이 가스총을 발사했지만 정두영이 한발 빨랐다. 그는 이웃집과 연결된 담장을 넘어 도망쳤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덜미가 잡혔다. 경찰은 생존자들을 통해 정씨가 범인임을 확인하고 추궁한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경남의 유력 기업 회장 집에 침입해 사람에게 중상을 입히고 금도금 골프공과 현금 38만원을 빼앗는 등 여죄도 추가로 드러났다.

 

영화 같은 탈옥 감행 

정씨는 이렇게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10개월 동안 9명을 살해하고, 10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전의 방범대원 살해까지 합치면 총 10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두영은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자 여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기각됐다. 대법원에 상고를 포기해 사형이 확정됐다. 동생이 강탈한 귀금속을 처분한 혐의(장물 알선 등)로 구속 기소된 형 정부영 등 2명에게는 각각 징역 1년6개월이 선고됐다. 이후 정두영은 부산구치소에 수용됐다가 대전교도소로 이감됐다.

한동안 잊혔던 정두영은 2016년 9월, 언론의 메인에 등장한다. 그가 탈옥을 시도하다 검거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정두영의 탈옥 시도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탈옥을 마음먹고 위탁작업장에서 플라스틱 작업대 파이프와 연결고리, 또 자동차업체 납품용 전선을 몰래 빼내 약 4m 길이의 사다리를 만든 뒤 작업장에 숨겼다.

교도관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옥을 감행해 삼중 울타리 중 두 개를 넘고 마지막 울타리를 넘다가 발각돼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씨는 도주 미수죄로 기소돼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그 뒤에는 지금까지 교도소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억원 벌려고 9명 살해한 ‘직업 살인범’

 

정두영은 다른 연쇄살인범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유영철이나 정남규, 지존파 등은 부유층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범행 동기로 내세웠다. 반면 정두영의 범행 목적은 오로지 ‘돈’이었다. 그는 살인한 후에도 돈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불우한 어린 시절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1968년 부산에서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2살 때 시계수리업을 하던 아버지가 암으로 숨지고 어머니가 재혼하자 큰집에 맡겨졌다. 하지만 5살이 되던 해 형제들과 고아원으로 다시 보내졌다. 2년 후 어머니가 새아버지 집으로 데려갔지만 잠시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불과 몇 달 후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어머니에게 두 번 버려진 셈이다.

정두영의 키는 168cm, 몸무게는 54kg에 불과하다. 어릴 때부터 왜소한 체격 때문에 주변에서 놀림과 괴롭힘을 당했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는 정글 같은 세상에 홀로 남겨졌고, 생계수단은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범죄였다.

그러다 1999년 7월쯤, 큰형 집에 살던 여성의 동생인 박아무개씨(여·21)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돈’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는 사랑하는 여성이 생기자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갖고 싶었다. 이를 위해 “10억원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돈으로 PC방도 차리고, 아파트를 마련할 계획이었다.

정두영은 검거 당시 약 1년 동안 3억2000만원 정도를 털어 그중 1억3000만원 정도를 통장 2개에 저금해 놓고 있었다. 동거녀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주고 7000여만원을 예금했다. 살인과 강도질로 남의 가정을 파괴하고 정작 자신은 그걸로 ‘행복한 가정’을 꿈꿨던 것이다. 동거녀와 그 가족들에게는 착하고 성실한 사업가처럼 행동했다.

정두영은 잔인했다. 금품을 훔치다 들키면 흉기나 둔기 등으로 잔인하게 살해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주먹, 야구방망이, 쇠망치, 식칼을 휘둘러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경찰에 검거된 그는 자신의 범행에 대해 “내 속에 악마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말해 충격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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