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식수원 오염되는데”…밀양 안태호 수상태양광 현장의 한숨
  • 부산경남취재본부 이상욱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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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 오염, 생태계 교란에 주민 반발…밀양시 ‘수상태양광 개발행위 불허’
한수원 행정소송 제기…“밀양시의 불허처분 사유 객관적인 사실 오인”

12월13일 오전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에 위치한 안태호(安台湖). 이곳에 이르자 가장 먼저 겨울 철새인 큰 기러기 무리가 눈에 띄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인 큰 기러기 50여 마리가 호수 위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이곳엔 큰 기러기 이외에도 천연기념물인 원앙과 고니, 황조롱이, 독수리 등이 서식하는 모습도 목격되고 있다.

이병기 ‘밀양 삼랑진 안태호 수상태양광발전시설 설치 반대위원회(이하 반대위원회)’ 사무국장은 "이 호수는 법정보호종인 큰 기러기 등 철새의 중요한 도래지다. 해마다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다"며 "수상태양광 설치로 겨울 철새 터전이 파괴돼선 안된다"고 했다.

12월13일 밀양 안태호 위를 헤엄치고 있는 큰 기러기 무리 ©반대위원회 제공
12월13일 밀양 안태호 위를 헤엄치고 있는 큰 기러기 무리 ©반대위원회 제공

안태호는 삼랑진양수발전소의 하부저수지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심야의 잉여 전력으로 이곳의 물을 상부 저수지인 천태호로 올린 후 낮에 다시 안태호로 흘려보내면서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안태호와 천태호 사이에 위치한 안촌마을과 남촌마을에는 228가구(400여 명)가 살고 있다. 안태호 주변에는 요양병원과 생수공장도 자리하고 있다.

안태호 둑 아래를 보니 대략 축구장 두 개 크기의 운동장과 과수원 터에 육상태양광(2.7MW) 설비가 즐비하다. 지난해부터 한수원이 '삼랑진양수 태양광 건설사업'을 추진하면서 먼저 육상에 설치한 태양광이다. 한수원은 이어 안태호 수면 3만4969㎡에 4.3MW짜리 수상태양광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수상태양광 페널을 네잎 클로버 모양으로 설치하고, 레이저쇼, 불꽃놀이 등을 펼칠 계획이다"며 "이를 통해 상권이 살아나면서 삼랑진 전체가 관광 지역으로 떠오를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한수원 계획에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 지하수 오염 발생 우려 때문이다.  이병기 사무국장은 "물 위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면 중금속 등으로 수질이 오염될 것이라는 우려는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며 "상부 저수지와 하부 저수지를 오르내리는 물이 하부 저수지에서 오염되면 주변 안촌마을, 요양병원 등 지하수를 먹는 주민의 식수에 악영향을 끼칠 게 뻔하다"고 말했다. 수상태양광 패널과 패널 지탱 구조물, 수중 케이블·전선관 등 기자재에서 중금속 등이 새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12월12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밀양 안태호 수상태양광 설치를 반대하고 있는 주민들과 반대위원회 위원들 ©시사저널 이상욱 기자
12월12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밀양 안태호 수상태양광 설치를 반대하고 있는 주민들과 반대위원회 위원들 ©시사저널 이상욱 기자

이들은 또 생태계 파괴도 거론했다. 김삼용 반대위원회 위원장은 "태양광 모듈이 수면을 가려 햇빛이 수중으로 덜 침투하게 되면 수생식물 성장을 저해하고, 특히 철새 서식지를 파괴할 것"이라며 "한수원이 주민들 삶의 터전과 생태계 교란이 불 보듯 뻔한 수상태양광을 왜 설치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수상태양광이 주변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점도 큰 이유다. 이병기 사무국장은 "한수원은 안태호 면적의 7.7%(만수위 기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다고 홍보했다"면서 "하지만 이마저도 전국 저수지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평균인 4.5%보다 높고, 최저 수위를 기준으로 하면 9.5%를 차지한다"고 했다. 안촌마을 등 주민들과 요양병원 환자들에게 태양광 패널에 반사된 빛과 발생하는 전자파로 심리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다.

안태호 수상태양광 설치를 놓고 주민과 한수원, 밀양시가 15개월째 대립하고 있다. 한수원이 지난해 8월 안태호 물 위 3만3496㎡에 설비용량 4.3M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건립하겠다며 밀양시에 개발행위허가 신청서를 내면서다.

허가 신청 사실이 알려지자 먼저 주민들이 나섰다. 식수원 오염과 생태계 파괴, 조망권 제한 등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민들은 반대위원회를 구성해 밀양시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수차례 반대 집회를 가졌다. 밀양시는 "식수원 오염 등 주민들의 민원이 타당하다"며 개발행위허가 신청을 불허했다. 그러자 한수원은 지난 5월 밀양시의 개발행위불허가 처분이 위법임을 확인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안태호 수상태양광 설치 여부가 법원의 손에 맡겨진 셈이다.

주민들은 "한수원의 행정소송은 마을 환경보전과 사회 공익적 가치 존중의 조화를 추구하려는 주민들의 부단한 노력을 짓밟는 행위"라며 "행정소송을 진행한 한수원을 규탄한다"고 했다. 이들 주민들은 한수원이 앞서 추진한 육상태양광 2곳의 설치는 동의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안태호 양수발전소 기능을 유지하면서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신에너지·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에 따라 태양광 사업을 추진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밀양시가 경관 침해, 수질오염 우려 등으로 내린 수상태양광 개발행위 불허처분 사유가 객관적인 사실을 오인한 것으로 판단돼 행정소송을 진행했다는 전언이다.

밀양 안태호 둑 밑에 설치된 육상 태양광 설비 ©시사저널 이상욱 기자
밀양 안태호 둑 밑에 설치된 육상 태양광 설비 ©시사저널 이상욱 기자

경남은 태양광발전 설치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12월17일 경남도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소 사업과 관련한 2014~19년 최근 5년간 행정소송은 무려 70건에 달한다. 주민들의 반대를 의식한 지자체가 잇따라 태양광발전 불허처분을 내리면 사업자는 "불허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으로 맞불을 놓으면서다.

그 와중에 "국가가 태양광발전을 적극 보급한다 해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선 안된다"며 주민·지자체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경남 창녕군과 대구 달성군의 경계지역에 있는 달창 저수지가 그 중 하나다. 지난 5월29일 부산고등법원 창원 제1행정부는 한 업체가 창녕군수를 상대로 제기한 수상태양광발전소 불허처분 취소소송을 기각했다.

이 업체는 농어촌공사로부터 달창저수지 6만㎡ 면적을 빌려 5900kW 규모 발전소를 만들 계획이었다. 주민 반대가 극심하자 창녕군은 개발행위 불허를 통보했고, 업체는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주민들이 달창 저수지를 통해 누리는 공익이 크고, 환경적 가치가 높은 곳에 태양광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환경 친화적 에너지원 확보'란 정부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며 창녕군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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