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IT] 인간이 방향감각 잃지 않는 비밀 입증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3 17:00
  • 호수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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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대 김성수 교수 “뇌가 시각 정보를 저장하기 때문”…자율주행차, 로봇에 응용 가능

현재 차선을 따라가는 자율주행자동차가 있지만 앞으로는 스스로 위치를 판단해 진행할 방향을 정하는 자동차도 나올 법하다. 물론 GPS(위성항법시스템) 없이도 말이다. 누구나 캄캄한 밤에 깨어나 방문을 찾고 화장실을 다녀온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낯선 거리에서 금세 주변 지리를 파악하기도 한다. 컴퓨터나 로봇엔 없고 동물에게 있는 방향감각 덕분이다. 우리는 이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그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약 20년 동안의 쥐 실험 등으로 과학자들이 세운 이론은 ‘뇌 신경세포가 정보를 꾸준히 갱신하기 때문’으로 정립됐다. 그러나 포유류의 뇌엔 수백만 개의 신경세포가 얽혀 있어 이를 증명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최근 이를 명확히 입증한 연구 결과가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려 국제적으로 관심을 끄는 과학자가 있다. 한국 국적의 김성수 미국 캘리포니아대(샌타바버라) 교수(분자·세포·발달생물학과)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12월12일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앞뒤 좌우 표시를 한, 동그란 모양의 초파리의 뇌 신경세포 ⓒ 김성수 교수 제공
앞뒤 좌우 표시를 한, 동그란 모양의 초파리의 뇌 신경세포 ⓒ 김성수 교수 제공

연구 결과를 쉽게 설명하면.

“초파리로 연구했는데 뇌 신경세포가 나침반처럼 동그랗게 배열돼 있다. 초파리가 앞을 보면 앞쪽 신경세포가 활성화되고 다른 신경세포는 조용하다. 초파리가 왼쪽을 보면 왼쪽 신경세포만 활성화된다. 이렇게 활성화된 신경세포는 그때 받아들인 시각 정보를 저장한다는 게 이번 연구 결과다. 예를 들어 전혀 가 본 적이 없는 공간에 갔을 때 우연히 활발한 신경세포가 새로운 공간의 첫 장면을 기억한다. 머리를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리면 자동으로 그쪽의 신경세포가 활발해지고 새로운 시각 정보를 저장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새로운 공간의 기억이 각인된다. 물론 익숙한 공간에서도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기억이 더 견고해진다. 그런데 이를 인위적으로 비틀 수 있다는 점도 발견했다. 초파리가 앞을 보는데도 오른쪽 신경을 활성화해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연구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까.

“이 분야 연구는 역사가 길고 응용 분야도 넓다. 2014년 노벨생리의학상도 이 분야에서 나왔다. 구글이나 우버가 개발하는 자율주행자동차, GPS나 무선 네트워크 연결 없이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로봇 등이 응용 분야다. 후쿠시마 원전 내부를 정찰하거나 화재 현장에서 인명 구조를 위한 로봇에도 사용할 수 있다. 동물은 그런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지만 아직 컴퓨터나 로봇은 그 단계가 아니다. 그래서 이 분야 연구가 관심을 받고 미래에 응용할 부분도 많다.”

신경과학계에서 초파리 연구가 주목받지 못하는데 왜 초파리로 연구했나.

“가장 큰 이유는 초파리 뇌가 포유류 뇌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점이 많다. 특정 신경을 발현하는 데 포유류는 수개월 또는 수년이 걸리지만 초파리는 한 달이면 된다. 또 초파리 뇌는 인간의 것과 다르지만 작동 원리는 비슷하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10~20년 초파리가 신경과학계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김 교수는 1998년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1년 미국 존스홉킨스의대에서 신경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9년 미국 하워드 휴 의학연구소에서 박사후과정을 밟았다. 2018년 젊은 연구자상(Johng S. Rhim young investigator award)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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