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 발언 처벌’ 두고 日, 논란 여전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6 16:00
  • 호수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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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日 코리안 많은 가와사키市, 처벌조항 신설…“표현·집회의 자유 위축” 반론도

“2015년 11월8일, 우리 동네에서 시위를 벌인 한 단체가 차별 발언을 남발했습니다. ‘왜 차별을 그만두라고 말해도 데모를 계속하는 거야?’라는 아이들의 질문에 설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규칙이 없어서야’라고 대답하자 ‘규칙이 없으면 어른들이 확실히 규칙을 만들어서 지키면 되잖아’라고 아이들은 되물었습니다. 4년이 걸려 겨우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지킨다’고 시(市)가 약속했습니다. 정말 기쁩니다. 차별 없는 사회를 향한 새로운 첫걸음이 오늘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2월12일, 가와사키시에서는 일본 최초로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를 벌금으로 규제하는 차별금지조례, ‘차별 없는 인권 존중의 동네 만들기 조례’가 시의회에서 통과됐다. 조례 성립 후 가와사키에 거주하는 재일(在日) 코리안들이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동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헤이트 스피치 반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최강이자씨(46)는 조례 성립에 대한 기쁨과 기대를 위와 같이 표현했다.

일본 우익세력이 도쿄 도심에서 욱일기 등과 함께 ‘일한(日韓) 단교’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혐한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 우익세력이 도쿄 도심에서 욱일기 등과 함께 ‘일한(日韓) 단교’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혐한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길거리 혐한 시위 반복하면 ‘벌금 550만원’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는 도쿄에 인접해 있는 인구 150만 명 이상의 도시로 외국인 주민이 많은 도시로 손꼽히기도 한다. 인구 중 약 2.8%(2019년 4월1일 기준)가 외국인 주민등록자다. 20세기 초반부터 공업도시로 성장한 가와사키에는 한반도 출신의 한국 또는 조선 국적의 ‘코리안’이 다수 살고 있고, 가와사키 거주 외국인 중 중국인 다음으로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가와사키에서는 재일 코리안을 대상으로 하는 헤이트 스피치가 빈번했다. 일본에서 헤이트 데모가 격렬해진 것은 2013년으로, 가와사키에서도 JR가와사키역을 중심으로 재일 코리안에 대한 데모가 열리기 시작했다. 헤이트 스피치 단체는 재일 코리안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에서 행진을 계획하기도 했으나, 최강이자씨 등 주민들이 이를 막아냈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도 재일 코리안을 공격하는 혐오 발언이 이어졌다.

이러한 가와사키의 사정은 2016년 5월 일본 정부가 ‘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 해소를 위한 대책 추진에 관한 법률’, 통칭 ‘헤이트 스피치 대책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일본 정부에 규제를 위한 법 정비를 권고한 것 또한 법률 제정의 배경이다. 일본 정부의 ‘헤이트 스피치 대책법’ 이전에는 오사카시에서 일본 최초로 헤이트 스피치 억지 조례가 성립되기도 했고, 2018년에는 도쿄도의회에서 ‘도쿄도 올림픽 헌장이 주창하는 인권 존중 이념의 실현을 위한 조례’가 가결됐다.

도쿄도의 조례는 성적(性的) 성향에 따른 차별, 외국 출신자에 대한 차별 등을 금지하고 있고 인터넷상의 차별적 동영상 등의 확산 방지 대책 강구도 명기돼 있다. 그러나 ‘헤이트 스피치 대책법’은 기본 이념을 제시할 뿐이며 오사카나 도쿄의 조례 또한 계몽적 인식 변화를 목표로 하는 조치에 그쳤다. 이에 비해 가와사키의 조례는 형사처벌 조항, 즉 최대 50만 엔(약 550만원)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을 넣어 보다 엄격한 규제 대책이 되었다.

사실 일본 내에서 헤이트 스피치를 규제하는 법률이나 조례 제정은 민감한 문제였다. 그 이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가와사키는 이를 의식해 지난 6월부터 시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 시민의 의견 1만8243건이 모였고, 그중 64%가 조례에 찬성하는 의견이었다고 한다.

시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고 처벌 대상과 과정도 표현의 자유를 되도록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했다. 처벌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몇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먼저 시장이 헤이트 스피치를 한 개인이나 단체에 중단할 것을 ‘권고’한다. 권고에 따르지 않고 또다시 헤이트 스피치를 할 경우 ‘명령’을 내린다. 이 명령을 위반할 경우, 시장은 이름이나 단체명 등을 공개하고 검찰 등 조사 당국에 고발해 조사가 이루어지게 한다. 이 과정에서 시장은 전문가로 이루어진 ‘차별 방지 대책 등 심사회’에 조언을 구하는 등 신중에 신중을 기해 판단한다. 기소돼 재판에서 유죄로 판결받을 경우에만 벌금을 낸다.

인터넷 혐오 발언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돼

조례에 따르면 가와사키 시내의 공공장소에서 일본 이외의 국가나 지역 출신자, 또는 그 자손이라는 이유로 차별적인 언동을 했을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구체적으로는 거주하는 지역에서 퇴거하도록 선동하거나 고지하는 것, 생명·신체·자유·명예·재산에 위해를 가하도록 선동하거나 고지하는 것, 인간 이외의 것에 빗대 모멸감을 주는 것이 차별적인 언동으로 정의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언동을 한다고 해서 모두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의식해서인지 발언의 수단을 한정하고 있는데, 확성기를 사용하거나 간판이나 현수막을 걸 때, 전단지나 팸플릿을 배포할 때만 처벌할 수 있다. 따라서 인터넷상에서의 혐오 발언은 대상이 아니다. 익명성의 뒤에 몸을 숨기고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는 인터넷상의 혐오 발언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 위축을 의식해서인지 처벌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대신 인터넷상의 혐오 발언의 확산 방지책은 제시했다. 피해자가 통신사업자에게 혐오 발언 발신자의 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도록 시에서 돕는 방안을 명기하고 있다.

이전까지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처벌은 ‘명예훼손’ 등의 법률로 이루어졌다. 2017년 4월 ‘재일(在日)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은 과거 교토 조선학교가 있었던 자리에서 ‘여기에 있었던 조선학교는 일본인을 납치했습니다’라고 발언하고 그 장면을 촬영해 인터넷에 업로드했다. 이에 교토지방재판소는 11월29일 조선학교에 대한 명예훼손을 인정하고 벌금 50만 엔을 선고했다. 하지만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는 누가 피해자인지 확실히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헤이트 스피치나 데모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지적돼 왔다.

따라서 이번에 벌금을 도입한 가와사키시의 조례는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헤이트 스피치를 처벌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여전하다. 신중한 절차를 도입하고 벌금 대상과 조건을 한정했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킬 가능성 때문에 기존의 법률을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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