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문화] 2019년, 대한민국이 펭수의 매력에 빠졌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3 14:00
  • 호수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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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대스타’ 꿈 이뤄가는 펭수…세상의 중심에서 “펭-하!”를 외치다

“펭수의 정체는 뭘까요?” 시사저널 미술팀 고참 디자이너의 질문에 옆에 있던 막내 디자이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대답했다. “펭수는 펭수예요! 알려고 하지 마세요!”

2019년, 시사저널 올해의 인물 문화 분야에 선정된 ‘인물’은 펭수다. 남극 펭씨에 빼어날 수(秀)를 쓴다. 키는 210cm, 몸무게는 103kg에서 왔다 갔다 한다. 고향은 남극, 나이는 열살이다. 경력은 없고, 현재 EBS 연습생 신분이다. 방탄소년단과 자기 자신을 존경한다는 펭수의 장래 희망은 ‘우주대스타’. 남극에서 남들과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고, 최고의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스위스를 경유해 헤엄쳐 왔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인형 탈을 쓴 캐릭터들이 항상 거쳐 왔던 질문, ‘펭수의 탈을 쓴 실제 사람이 누굴까’를 궁금해해서는 안 된다. ‘펭수 앓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펭수의 실체를 궁금해하는 것은 ‘금기’다. 펭수는 펭수 그 자체로 바라봐야 한다. 펭수 연기를 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펭수는, 그냥 펭수다. 펭수의 판타지는 지켜줘야 한다.

2030 감성 파고든 펭수, 카타르시스 선사했다

애초에 펭수는 초등학생 고학년들을 타깃으로 탄생했다. 그래서 열 살이다. 그런데 2030 세대가 빠져들었다. 펭수의 감성에 ‘어른이’들이 반응하고 있다. ‘애들’ 보라고 만든 영상이 아니라, ‘애들(이었던 사람)들’ 보라고 만든 영상이라는 평까지 나온다. 펭수는 국밥을 좋아하고, 빠다코코넛 과자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노래는 거북이의 《비행기》다. 다른 캐릭터들처럼, 동요와 율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랩과 비트박스를 하고, 현란한 춤과 트월킹을 뽐낸다. 귀엽고 예쁜 게 아니라, 걸걸하고 거침없다. 언행도 솔직하다. “못해 먹겠다”며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는 펭수에 직장인들은 열광했다. 자극적인 것이 ‘먹히는’ 시대, 온갖 자극적인 영상이 난무하지만 펭수의 콘텐츠에는 혐오나 자기 비하가 없다.

펭수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끈 것은 《EBS 아이돌 육상대회》가 방영된 이후다. EBS를 대표하는 캐릭터인 뚝딱이와 뿡뿡이, 뽀뽀로 등이 운동회를 연다는 설정이었다. 순수하고 귀엽고 재밌기만 했던, 아이들의 ‘우상’과 같았던 캐릭터들이 위계질서를 따지고, 소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이 프로그램에서, 촬영 중간에 ‘하늘 같은’ 담당 PD를 오라 가라 하며 혼내는 펭수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펭수의 무대는 EBS에 그치지 않았다.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 SBS의 《정글의 법칙》 등에 출연하며 ‘방송대통합’도 이뤄냈다. 특정 방송사 캐릭터가 다른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생소한 일이었다.

팬들이 펭수에게 빠져드는 이유 중 또 하나. ‘카타르시스’다. 거침없는 입담으로 수직적인 관계를 타파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외교부를 방문해 “여기 대빵이 누굽니까?”라고 묻고, 방송에서 할 말이 없어지면 “김명중!” 하고 EBS 사장 이름을 외친다. “비싼 음식 못 먹을 때는 김명중”이라며 사장을 돈줄 취급하고, EBS에서 잘리면 KBS에 가겠다고 큰소리친다.

선배의 ‘꼰대 짓’에도 침묵하지 않는다. 입사 25년 차 선배인 ‘뚝딱이’가 군기를 잡으려고 거는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고, 잔소리에 귀를 막으며 그만하라고 외친다. 이런 펭수의 모습이 2030 세대에게 쾌감을 줬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수직적 질서 속에서 순응을 배워가는 2030 세대에게 통쾌한 대리만족을 줬다”며 “위아래 구별 없는 펭수의 언행이 2030 세대의 수평적 의식과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어른이' 팬덤을 통해 확산되는 펭수 신드롬

“통장은 준비돼 있다. 굿즈만 출시해 달라.” 펭수의 팬들은 이렇게 말한다. 펭수의 팬덤은 위에서 언급했듯 ‘어른이’들이다. 구매력을 가진 ‘어른이’들은 스스로 ‘펭수 짤’과 ‘펭수 굿즈’를 만들고, 펭수의 인기 포인트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실제로 유튜브 ‘자이언트 펭TV’ 시청 연령층은 18~24세 24.6%, 25~34세 40.2%, 35~44세 21.8%다. 25~34세에서 가장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1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까지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

하인환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펭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기존 미디어 기관의 신규 미디어 시장 진출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며 “미디어 구조의 재편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과거 ‘뽀로로’라는 캐릭터의 등장과 수혜주 물색에 대한 과정이 펭수 관련 수혜주 물색으로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며 “펭수 굿즈 출시로 향후 수혜주에 대한 기대감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로 펭수 굿즈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지난 11월 ‘펭수 카카오톡 이모티콘’은 출시되자마자 판매량 1위에 올랐고, 펭수 화보를 담은 ‘나일론’ 12월호는 품절됐다. 펭수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다이어리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는 출간하기도 전에 예약 판매만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심지어 펭수가 인기를 끌면서 펭수의 고향 ‘남극’을 찾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아시아 최대 온라인 여행사 트립닷컴이 항공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펭수의 인기가 시작된 지난 9월부터 11일15일까지 남극행 항공권 검색량이 지난해보다 3배 정도 증가했다.

ⓒ 니일론 코리아 12월 호
펭수는 패션잡지 ‘나일론’의 패션모델로 등장했다. ⓒ 나일론 코리아 12월 호

“동방예의지국, 무례한 펭귄과 사랑에 빠졌다”

“한국인들이 무례한 펭귄 펭수와 사랑에 빠졌다.” 12월13일 영국 BBC의 표현이다. BBC는 펭수가 한국에서 방탄소년단을 제치고 ‘올해의 인물’에 선정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머지않아 지구촌 곳곳에서 거대 펭귄을 만나더라도 놀라지 말라”는 당부도 함께였다. BBC는 기성세대를 향한 젊은 층의 불만이 펭수의 인기 요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겸손과 예의를 중시하는 보수적 한국 사회에서 기존 관습을 깨부수는 펭수의 반동적 태도가 기성세대에게 불만이 많은 밀레니얼 세대를 열광케 했다는 분석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BTS보다 더 인기가 많다니?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왜 거대 펭귄 캐릭터 ‘펭수’에게 푹 빠져들었나’라는 기사로 펭수를 집중 조명했다. 펭수를 ‘기존 사회 규범에 무관심한 행동을 보이는 캐릭터’라며 “최근 조사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의 인기도 넘어섰다. 사람이 아님에도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또 “펭수는 사회적 금기와 규범을 거부하며 스스로가 슈퍼스타나 셀럽이 된 것을 자랑한다”며 “이는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잘 볼 수 없는 모습으로, 기성세대 및 불평등한 사회에 불만을 가진 밀레니얼 세대에게 인기를 얻는 ‘접점’이 됐다”고 분석했다. 사회적 범주화를 거부하는 펭수의 행동이 사회적 불평등을 감내하면서 살아가는 한국의 불만 어린 젊은 세대를 열광시키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어 “한국산업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펭수는 한국의 차세대 문화 수출품으로 등극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해외에서도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스타, 펭수는 과연 해외 진출에 나서게 될까.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펭수를 등장시킨 EBS의 이슬예나 PD는 “최종적으로 해외에 진출하고 영역을 확장하면 좋겠지만 지금 당장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인터뷰를 통해 언급한 바 있다. “인기를 확산시키기보다 펭수의 인기를 탄탄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는 것이다. 해외 진출은 자막을 다는 작업부터 시작한 후 차차 고려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 니일론 코리아 12월 호
펭수는 패션잡지 ‘나일론’의 패션모델로 등장했다. ⓒ 나일론 코리아 12월 호

올해의 대세 스타, 펭수를 모셔라

이렇게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펭수. 당연히 기업들은 ‘펭수 모셔가기’에 힘을 쏟고 있다. LG생활건강은 펭수와 함께 제작한 콜라보레이션 영상을 ‘자이언트 펭TV’를 통해 공개했다. 펭수가 뷰티 편집숍 네이처컬렉션 매장에 방문해 뷰티 컨설턴트 교육을 받고, 화장품 제품의 판매에 직접 나서는 것이다. 일명 ‘펭수의 화장품 판매 체험기’다.

펭수는 LG유플러스와의 증강현실(AR) 콘텐츠 협업에도 나섰다. LG유플러스가 현대미술 작가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장신의 무용수로 참여했다. 패션업계에서는 이랜드월드의 SPA 브랜드 스파오가 ‘펭수 모시기’에 성공한 승자가 됐다. 탄생 10주년을 맞아 10세인 동갑내기 펭수와 콜라보를 진행한 것이다. KGC인삼공사는 펭수를 정관장 광고모델로 위촉해 내년 초 CF를 방영하기로 했다. 가히 ‘펭코노미’라 불릴 만할 정도로, 기업들은 ‘펭수’를 좇고 있다.

정부 부처도 펭수 모시기에 동참했다. 자이언트 펭TV에 올라온 ‘세상에 나쁜 펭귄은 없다’는 영상을 펭수와 함께 제작한 보건복지부는 자신들을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 부른다. 보건복지부는 공식 유튜브를 통해 “끝없는 구애 끝에 펭수와 함께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펭수가 이상행동을 보이다가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매니저와 놀며 활기찬 모습을 찾는, 정신건강 관리의 중요성을 알리는 이 영상은 자이언트 펭TV 영상 중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힘들어하는 매니저에게 “그렇게 힘들면 혼자 있으면 안 되는데”라고 말하는 펭수의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위로의 한마디로 다가왔다.

펭수가 외교부를 찾아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영상도 인기를 끌었다. 11월25일부터 사흘간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펭수가 외교부를 찾는다는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찍이 펭수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던 정부 부처들은 ‘펭수 앓이’ 중이다. 펭수의 몸값이 치솟으면서 예산이 부담돼 섭외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펭수와의 협업 비용은 간접광고(PPL) 수준의 수백만원대부터 시작하고, 방송·유튜브 채널 모두에 공개되는 단독 협업 에피소드 제작은 수천만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음에 위안을 전하는 펭수의 어록

펭수의 한마디는 곧 어록이 된다.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펭수의 말. 그 어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다 잘할 수는 없다. 하나 잘 못한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 잘하는 게 분명히 있을 거다. 그걸 더 잘하면 된다.”

“특별하면 외로운 별이 되지.”

“사장님이 친구 같아야 회사도 잘 된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른이고 어린이고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면 되는 거예요.”

“내가 힘든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 아니죠, 그쵸? 그러니까 힘내라는 말보다 저는 ‘사랑해’라고 해주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사랑합니다. 펭러뷰♡”

“자신감은 자신에게 있다. 그걸 아직 발견 못한 거다. 거울 보고 난 할 수 있다, 난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자신을 믿고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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