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나땡’이 투사로 변신한 이유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5 10:00
  • 호수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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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한 황교안’ 이면에는 ‘30%의 법칙’과 ‘절반의 법칙’ 숨어 있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강경해졌다.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제1야당 대표로 선출될 때만 하더라도 아직 공무원 때를 벗지 못한 모습이었다. 오죽했으면 더불어민주당에서 당 대표로 그가 당선되면 ‘황나땡’(황교안이 나오면 땡큐)이라는 반응까지 보였을까. 그러나 수개월이 지나면서 황 대표가 달라졌다. 그 누구보다 강경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4월 국회에서 패스트트랙 몸싸움을 벌일 때만 하더라도 한국당의 투사적 이미지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독점하는 모습이었다. 황 대표에게는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한 얌전하고 관료적인 인물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조국 전 법무장관 논란이 확대되면서 황 대표는 변했다. 대통령과 조 전 장관이 동일시되는 현상에서 핵심 지지층의 필요성을 확인한 셈이다. 조국 논란에서 밀리는 경우 지지층의 이탈까지 초래되는 위기 국면이었다. 황 대표는 청와대 앞에서 삭발을 했다. 비아냥거리는 시각이 인터넷 공간에서 확대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정당 지지율은 올라가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이후 황 대표는 문 대통령을 공격하는 정치적 발언과 패스트트랙을 저지하기 위한 물리력 행사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외연 확대를 지적하며 황 대표의 투쟁 수단을 문제 삼지만, 애써 외면한 채 강경 일변도로 나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차기 대선의 유력한 후보로서 전통적인 지지층의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국회 경내로 들어와 국회의장과 민주당을 규탄하는 지지층들에게 “우리는 승리했다”는 일성을 토해 냈다. 민주당과 다른 야당들로부터 국회 내 폭력과 무질서를 방조 또는 조장했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강경한’ 황교안 대표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30%의 법칙’과 ‘절반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12월17일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당직자들이 국회 밖으로 나가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를 이어갔다. ⓒ 시사저널 이종현
12월17일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당직자들이 국회 밖으로 나가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를 이어갔다. ⓒ 시사저널 이종현

30% 이상 핵심 지지층 확보가 관건

선거에 나서는 후보는 당선 가능성의 최저선이 30%다. ‘30%의 법칙’은 선거에서 한 후보자가 당선 가능권에 들어가기 위해 확보해야 하는 지지율이다. 30%가 되지 못하는 후보자는 자력으로 당선되기 어렵다. 적어도 5명 이상의 많은 후보자가 거의 엇비슷한 수준으로 난립하고 선거 판세를 예측하기 힘들 정도의 진흙탕 구도라야 운 좋게 당선될 수 있다. 핵심 지지층을 확보하지 못하면 당선은 그림의 떡이다. 정치인의 핵심 지지층은 세대·지역·이념으로 구성된다. 핵심 지지층은 옮고 그름의 구분이 아니라 인물의 강하고 약한 의지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민주화 과정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을 연호했던 유권자들은 자신의 지지 여부를 옳고 그름에 따라 결정하지 않았다. 강한 의지와 카리스마로 열혈 지지층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강경한’ 황 대표가 되려는 이유가 바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에 있다.

먼저 황교안 대표는 핵심 지지층인 60세 이상에서 아직 충분한 지지층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황 대표의 전체 지지율은 지난 2월에 17.9%로 출발했다. 같은 조사기관이 매월 실시하는 조사에서 황 대표의 지지율은 아직 20% 중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0%의 법칙’을 감안한다면 아직 못 미치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핵심 지지층이 되는 ‘60세 이상’에서 절반을 돌파하지 못한 점이다. 지난 2월 조사에서 ‘60세 이상’의 황교안 대표 지지율은 30.5%였다. 두 달 뒤 4월 조사에서 36.3%로 올랐다. 이후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황 대표의 지지율은 올라갔지만 ‘60세 이상’ 지지율은 오히려 미끄럼을 탔다. 가장 최근인 11월 조사에서 29.2%로 나타났다. 삭발과 단식 투쟁에도 고연령층의 황 대표 지지율은 도리어 추락한 것이다(그림①).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보인 세대 장악력과 비교하더라도 압도적이지 않다.

보수 대통령의 산실 TK에서 30% 못 미쳐

두 번째로 황 대표가 강경해진 이유는 대구·경북(TK) 지역에서 찾게 된다. TK 지역은 보수정치의 본산이다. 역대 보수 대통령 대다수가 TK 출신이다. 박정희·전두환(대구공고 졸업)·노태우·이명박·박근혜 등 보수 대통령 다수의 산실이 TK다.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정치적 유산을 잇고 있는 자유한국당 대표로서 TK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것은 필요조건이 아니라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렇지만 TK에서 황 대표 지지율은 지난 2월 조사에서 30.4%로 나타난 이후 11월 조사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다. 수치는 도리어 28.9%로 30%조차 넘지 못했다. 아성이 되어야 하는 특별한 지역이지만 전체 지지율과 거의 차이가 없는 정도다. 황 대표가 지역 기반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 문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 대표의 생물학적 고향은 수도권이지만 정치적 고향은 TK이기 때문이다(그림②).

마지막으로 황 대표가 점점 더 강경해지는 이유는 보수층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좌파와 우파로 양분된 상태다. 진영 간 대결구도에서 이념적 지지층을 가지고 있는 건 그것이 바람직하든 바람직하지 않든 정치적으로 힘이 된다. 삭발 투쟁을 하고 단식 농성을 할 때 가장 빨리 반응을 보이는 계층이 보수층이었다. 지난 2월 조사에서 보수층의 황 대표 지지율은 34%였다. 4월 재보선 정국 속에서 보수층의 황 대표 지지율은 46.3%로 거의 50%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삭발과 단식 투쟁을 거치고 난 후인 11월 조사에서 보수층 지지율은 41.4%였다(그림③). 가장 핵심 지지층인 보수층에서조차 절반 지지율을 넘기지 못했다.

황교안 대표는 관료 출신이라 현실 정치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정치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장외 투쟁, 삭발 투쟁, 단식 투쟁 등을 선보일 때도 대정부 및 대여 투쟁력이 제한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기계적으로 중도 외연 확대를 좇는다면 핵심 지지층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에서 긍정 지지율이 40%대로 꾸준히 유지되는 이유는 핵심 지지층인 40대·호남·진보층에서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여론이 항상 절반을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충분한 핵심 지지층을 확보할 때까지 우리가 보게 될 황교안 대표는 ‘친절한’ 정치인이 아닌 ‘강경한’ 인물이 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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