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 정치, 부의 불평등·경제적 독점 깨부숴야”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12.31 14:00
  • 호수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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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여야 초선 의원들이 말하는 386 정치 한계와 X세대 정치인의 조건

386세대(현 586세대) 정치인이 개혁의 상징이던 때가 있었다. 대학 시절 군사정권과 맞서며 민주화를 외쳐 온 그들에게 개혁은 시대정신이었다. 2000년 전후 사회의 새 주류가 된 386세대는 특히 정치권에서 도드라진 존재감을 드러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뒤, 4년 뒤 치러진 17대 국회에 대거 입성하면서 386세대는 기성 산업화 세대가 외면해 온 정치 개혁을 완수할 기대주로 떠올랐다. 당시 기성 정치인들은 ‘개혁지상주의에 빠진 세대’ ‘민주화 이후 새로운 미래 가치를 찾지 못한 세대’라고 지적했지만, 386세대는 하나둘 핵심 요직들을 차지하며 저변을 넓혀 나갔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586으로 불리게 된 개혁의 상징 386세대는 정치 개혁과 세대교체를 가로막는 기득권이 됐다. 새로운 미래 가치를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받는다. 일부 386 인사들의 비리, 추문으로 도덕적 권위마저 떨어져 버렸다.

ⓒ 시사저널 이종현
ⓒ 시사저널 이종현

이들과 함께 의정활동을 경험한 20대 국회 초선 의원들은 국회 의석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386세대 정치인들을 어떻게 평가할까. 20대 국회를 마무리하는 지금, 시사저널은 초선 의원들에게 386세대 정치인에 대한 평가와 ‘포스트 386’으로 불리는 X세대 정치인의 자격을 묻는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2월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대담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과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참석이 예정돼 있던 김성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내 일정으로인해 불참했다. 정치 개혁과 관련해 김성원 의원의 입장은 추후 서면으로 받았다. 김 의원은 “국민이 보는 386(정치인)은 기존 기득권 세력보다 더한 기득권을 창출하면서, 사회변화에 맞춰 진화하지 못한 채 그들만의 리그와 과거에 안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보수, 진보 양 진영 모두 다양성이 결여돼 있기 때문에 다음 총선 때는 청년과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인재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본지 송창섭 기자의 사회로 1시간40여 분간 이어진 대담에서 참석자들은 오늘날 386세대 정치인들이 ‘고인 물’이 돼 버린 이유를 가감 없이 분석했다. 더불어 다음 정치문화를 이끌어가야 할 ‘X세대 정치인’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짚어봤다.

지난 12월9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386 정치와 포스트 386을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 시사저널 이종현
지난 12월9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386 정치와 포스트 386을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 시사저널 이종현

“구태정치 몰아낸 ‘386 정신’ 지금 어디 갔나”

386세대 정치인의 공과를 평가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이하 이) : 한 세대를 한 그룹으로 묶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대학 시절 민주화를 이끌었던 경험들을 안고 정치권에 들어와 민주화를 뿌리내리게 한 데에는 어느 세대보다 공을 세웠다 할 수 있겠다. 이렇게 한 세대가 한 세력을 형성해 의회에 입성한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다. 반면 과가 있다면, 지금 기성 정치 세력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건데, 일부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386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이하 김) : 386세대 하면 ‘과거 완료형’이란 생각부터 든다. 살아 있는 동사형이 아닌 이미 죽은 명사형이 돼 버린 세대다. 물론 역사적 결과물에 대해선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가장 많은 권력과 권한을 갖고 있으면서, 그동안 정치 신인이 들어올 수 있는 어떠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한 과오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하 박) : 386세대는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정치가 보인 구태정치에 청량제 역할을 부여받아 제도권에 들어왔고, 그런 면에서 일정 부분 기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이들이 지금도 미래를 얘기하고 우리 사회 다양성을 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나. 그랬다면 어느 국민이 이들에게 나이가 있다고 물러나라 하겠는가. 정치란 미래를 고민하는 일인데, 이들이 내일을 위해 뭘 준비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 법인데, 이들은 여전히 스스로 꽃만 피우려 한다.

“386 정치인, 먹고사는 문제 해결 노력했나”

‘386세대=기득권’이란 인식이 이미 정치권을 비롯해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버린 듯하다. 이 등식에 동의하는가.

박 : 공천 한 번 받기가 힘들다는 건 정치하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386세대는 30대 초부터 계속 공천을 받아왔다. 그것만으로도 참 많은 걸 누린 거다. 386세대가 호황기에 사회에 진출해 실패한 부동산정책의 수혜를 입었고, 정치·경제·문화 권력까지 다 가져서는 자신들의 질서를 반영한 법과 제도를 만들었다. 그사이 후배 세대는 양성되지 못했다. 젊은 세대들이 이들을 깨트려야 할 기득권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20년 가까이 공천을 받아온 이들이 과연 처음 국회 들어올 때 박수 쳐준 국민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지 보자. 결코 좋은 점수를 못 받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거라 생각하나.

박 : 선거법 논쟁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장 4개월 뒤 본인들 밥그릇에만 관심이 있지 않나. 국민이 바라는 정치적 의제, 제도적 변화, 법 개정을 속 시원하게 해 주지 않는다. 최근 조선시대 사림에 관한 책을 읽었다. 이들은 기득권이었던 훈구파들을 비판하며 등장했다. 훈구파가 몰락한 후 사림이 정권을 잡았는데, 웃긴 건 이들도 하나 다를 게 없었다는 거다. 백성들 먹고사는 일은 해결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죽기 살기로 싸웠다. 지금 386세대가 그렇다. 국민들 먹고사는 데 유능함을 보인 적이 있었나. 나도 같은 운동권 출신이지만 반성해야 한다. 정치는 결과로 보여줘야 하는데 이들은 아무것도 못 보여줬다.

김 : 기득권 자체를 무조건 악으로 정의할 순 없다. 초선 의원인 나도 ‘기득권이냐 아니냐’고 물으면 선뜻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문제는 기득권을 가져온 이들이 다양한 주체들과 기꺼이 권력을 나눠 갖고, 권력 순환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성 386세대 정치인들이 과연 성숙한 정치환경을 조성해 미래 세대를 활발히 들여왔느냐를 봤을 때 아주 무능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미래에 중요하게 여겨질 새 기준에 따라 본인들의 체질을 성공적으로 바꿔내지도 못했다.

이 : 김 의원은 386 정치인들이 2030 세대에게 기회를 열어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누가 열어줘야만 정치를 하는 건가 문득 의문이 생긴다. 본인들이 스스로 업적을 쌓고 인정을 받았다면 충분히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되묻고 싶다.

김 : 그게 가능하려면 세대별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가를 살펴야 하는데, 현 시스템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총선에서 선거비용 1억8000만원 쓸 수 있는 2030 세대가 얼마나 되겠나. 나도 소위 ‘금수저’로 불리는 청년 정치인이지만 이건 힘든 일이다. 다소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일지 모르지만, 그만큼 ‘386 기득권’이 미래 정치를 고민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박 : 정치는 현장에서의 경험이 전부다. 그 경험은 정당이 제공해 줘야 한다. 육성 시스템을 갖추고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 정치권은 이 교수가 말씀하신 대로 신진 정치인이 스스로 크고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전혀 마련해 주지 못했다. 당은 아주 비공식적이고 사적으로 작동했다. 그러다 보니 힘센 지도부에 줄을 서는 정치가 횡행했다. 이 점도 기성 정치인들이 저지른 크나큰 잘못이자 책임이다.

“정당이 ‘정치학교’ 역할해 신진세력 키워내야”

‘조국 사태’를 보며 386세대 정치인에 대한 대중의 실망감은 더욱 짙어진 듯하다. 우월한 도덕성은 이들의 가장 큰 강점 아니었나.

박 : 언제부턴가 ‘내로남불’ ‘정의의 독점’이 386세대를 비판하는 수사(修辭)로 쓰이고 있다. 그렇게까지 가는 덴 동의하지 않는다. 개인의 잘못을 전체 세대로 가져가는 건 무리한 담론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를 잘했다 해서 그 세대가 전부 훌륭했다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조국 사태는 386세대에 대한 실망을 키워준 안타까운 일이지만, 모든 386세대에 대입해 단죄하는 건 적절치 않다.

김 : 조국 전 장관이 쏘아 올린 공으로 인해 각 당에 세대교체와 인사 혁신 분위기가 형성된 점은 긍정적이다. 나 역시 386세대 전체가 도덕적으로 해이하거나 구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지금 386세대를 죽은 세대로 보는 데는 그들 다수가 오랜 기간 보여온 적폐가 분명히 존재했다고 본다.

386세대의 뒤를 잇는 세대가 부재했던 이유도 결국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일까.

박 : 사회적 계기가 없었다. 386세대는 전두환·노태우 정부와 싸우며 집단적 에너지가 생성됐다. 자기들끼리 치열하게 논쟁하며 더욱 견고히 조직화해 나갔다. 청년위원회에서 활동한 독일 등 다른 나라 청년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을 축적했다. 이런 식의 세력화는 다시 재현되기 힘들다. 그렇다면 정당이 정치학교 역할을 해 이러한 세력들을 키워내야 한다. 지난 지방선거 때 민주당에 430명이나 되는 45살 미만 정치인들이 들어왔다. 당으로선 ‘큰 지갑’을 주운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그럼 하나씩 이들의 어려움을 풀어주고 꾸준히 육성해 줘야 하는데, 그런 안정적 체계를 전혀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당을 비판하면 ‘우리한테 덤비는 건가’라고 반응하고, 내가 재벌 얘기만 해도 ‘쇼한다’ ‘튄다’ 이러지 않나.

김 : 신진 정치인의 진입장벽을 허물고 후세대를 키워내야 하는 386세대의 관심이 온통 다른 곳에 머물러 있다. 자신들이 누려온 혜택을 젊은 세대에게 마땅히 환원하지 못하는 데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데, 그보다는 지역구 예산을 못 땄거나, 특정 단체 이익을 챙기지 못했거나, 본인의 세력을 좀 더 공고히 하지 못한 데 대한 부끄러움을 더욱 느끼고 있다,

이 :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이전 세대와 달리, ‘포스트 386’을 하나로 묶기엔 오늘날 제시해야 할 가치가 굉장히 다양하다. 그래서 더 세력화가 어려운 건지도 모른다. 물론 청년들 간에 주체적인 조직활동이 많긴 하다.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이들이 제도권에 흡수되는 데에는 또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정치권, 사회 진보 위한 다양성 인정해야”

‘포스트 386’이 필히 갖춰야 할 가치나 비전이 있다면 무엇일까.

박 :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화두는 불공정이며, 불공정의 상징은 다름 아닌 재벌 체제라 생각한다. 그들 때문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준하는 열린 혁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포스트 386세대(X세대) 정치인들은 이런 경제적 독점과 이를 유지해 주는 사회적·정치적 독점적 권력을 제하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 동시에 부의 불평등, 기회의 박탈이 응축돼 있는 노동시장의 개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김 : 국가든 조직이든 성장과 발전을 위한 핵심 경쟁력은 다름 아닌 다양성에서 온다고 본다. 기성세대가 강조해 온 동질성을 깨고, 다양한 DNA를 배양하는 사회로 진보하기 위한 정치를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포스트 386세대가 가져야 할 필수조건인 동시에 미래 정당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다.

다음 국회 땐 세대교체가 이뤄질 거라 예상하나.

이 : 새 인물들이 대거 들어와 미래를 논하는 국회가 되길 희망한다. 다만 얼마나 들어오느냐만큼 중요한 게 어떤 기준으로 이들을 등용하느냐다. 과정이 허술하면 결국 국회 차원의 막대한 비용과 손실로 돌아온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조건 스펙으로 인정하기보다, 좀 더 다차원적인 평가를 통해 다양한 인재들이 등용되길 바란다.

박 : 각 당이 젊은 세대 영입을 위한 방안을 다방면으로 고민하고 있으니 지금보단 많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충분히 훈련받지 못한 신인이 들어오면 정말 버티기 힘들다. 난 초선이지만 중고 신인이었다. 29살부터 정치권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봤고 5년간 대변인 하며 인맥도 나름대로 쌓은 상태에서 국회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런 자원 하나 없이 반짝 눈에 띄어서 들어오면 정말 힘들 거다.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는다. 이 점이 걱정스럽다.

각자 20대 국회 의정활동에 대한 자평과 앞으로의 각오를 말해 달라.

박 : 숨 가쁘게 뛰어왔고 고군분투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자평한다. 좌충우돌 천방지축으로 본 분들도 많을 거다. 그러나 때로는 쉽게 타협하는 노숙한 경험자보다 서툴지만 싸울 줄 아는 무경험자가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국회의원 중 단 10~15%만이라도 고군분투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적어도 초선으로서 그런 역할을 열심히 했다고 본다. 21대 국회에서 활동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작업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국회의원은 정치 면허증이라 늘 얘기한다. 면허증 발급해 준 기관이 국민이니 이들의 기대에 합당하게 의정을 펼칠 것이다.

김 : 20대 국회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이 내겐 줄곧 불명예스러웠다. 우리 정치가 그동안 얼마나 낙후돼 있고 선진화되지 않았냐가 나라는 상징으로 보여진다는 생각에서다. 21대엔 더 젊고 혁신적인 청년들이 대거 들어오길 바란다. 이제까지의 우리 민주주의를 ‘전반기’라고 한다면 이젠 ‘후반기’로 들어서야 할 때다. 청년을 비롯한 시민들이 좀 더 활발히 정치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로 향하는 데 한몫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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