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11일 꽃 들고 거리에 나서는 日 여성들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2 16:00
  • 호수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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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상징' 된 이토 시오리 소송 이후
일본 내 비뚫어진 日 성 의식 도마에 올라

2013년 뉴욕의 한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던 학생 이토 시오리는 일본 TV방송국 TBS의 당시 워싱턴 지국장이었던 야마구치 노리유키와 알게 된다. 2015년 3월, 도쿄에서 인턴십을 끝낸 이토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며 야마구치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 후 4월3일 야마구치는 이토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는데 식사 중 술을 마신 이토는 어지럼증을 느꼈고 화장실에서 정신을 잃었다. 이후 기억은 없다. 깨어나 보니 야마구치가 묵고 있는 호텔이었고 그녀의 의사와 관계없이 성관계가 이루어진 후였다. 의식을 회복한 후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야마구치는 성행위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달 30일 이토는 일본 경시청에 고소장을 제출했고 ‘준강간’ 혐의로 야마구치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2016년 7월22일 도쿄지방검찰청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야마구치의 혐의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이토는 2017년 5월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며 성폭행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일본 미투 운동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토는 상징이 됐다. 동시에 검찰심사회에 검찰의 불기소 처분 불복의사를 밝혔다. 검찰심사회는 검사가 독점하는 기소 권한 행사에 민의를 반영해 부당한 불기소 처분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로 무작위로 뽑힌 일본 국민 11명으로 구성된 기관이다. 넉 달 뒤인 9월21일, 도쿄 제6검찰심사회는 불기소가 정당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형사소송이 불가능하게 된 이토는 일주일 후 야마구치를 상대로 1100만 엔(약 1억1700만원)의 손해배상소송, 즉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런 ‘이토 재판’이 반전을 맞이했다. 2019년 12월18일 이토가 민사소송에서 승소한 것이다. 도쿄지방재판소는 합의가 없는 성행위였다는 이토의 주장을 인정해 야마구치에게 330만 엔(약 3500만원)을 이토에게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쉽지 않은, 길고 험난한 싸움이었다. 피해 사실을 공개한 후로 인터넷상에서는 끊임없이 비방이 이어졌고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일본 ‘미투’의 상징인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의 소송이 발단이 돼 일본 사회의 성 의식이 도마에 올랐다. ⓒ EPA 연합
일본 ‘미투’의 상징인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의 소송이 발단이 돼 일본 사회의 성 의식이 도마에 올랐다. ⓒ EPA 연합

아베 총리와 친한 언론인과의 소송에서 승리

이토는 2017년 10월 자신의 성폭행 피해 사실과 일본 사회의 반응을 그린 《블랙박스》라는 논픽션을 발표했는데 야마구치는 이 책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반소를 제기했다. 그리고 1억4000만 엔(약 14억9000만원)의 위자료를 요구했다. 이번 재판에서는 명예훼손에 대한 심리도 함께 이루어졌고 재판부는 “성범죄의 피해자를 둘러싼 법적·사회적 상황 개선으로 이어지는 생각과 자신의 체험을 밝힌 책”이라며 야마구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사소송에서 승리해 손해배상을 받아내긴 했지만, 불기소 처분으로 형사소송에 이르지 못한 것은 여전히 문제로 지적된다. 당시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 것을 두고 총리관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본 주간지들을 통해 보도됐다. 야마구치는 아베 신조 총리 취재를 바탕으로 2016년 《총리》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만큼 아베 총리와 가까운 언론인이다. 야마구치 본인은 총리관저에 지인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상담도 하지 않았다며 관계를 부인했다.

의혹으로 남은 총리관저 개입설 외에도 형사소송에 이르지 못한 이유가 또 있다. 형사사건은 민사사건에 비해 ‘엄격한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검찰 기소 단계에서 유죄가 될 수 있는가를 엄밀히 따져보기에 형사소송에 이르기 힘들고, 게다가 밀폐된 공간에서 이루어진 성범죄의 경우 증거가 적어 기소까지의 벽은 더 높아진다. 일본은 2017년 6월 형법을 110년 만에 대폭 개정했다. 여성만이 피해자였던 강간죄를 피해자 성별에 상관없는 ‘강제성교 등의 죄’로 바꿨고,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입건할 수 있는 비(非)친고죄로 개정했다. 하지만 동의 없는 성행위라도 폭행이나 협박이 없으면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폭행·협박 요건’은 그대로 유지했다. 술이나 약물 등을 마시게 해 저항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상대를 성폭행할 경우 적용되는 준강간죄도 ‘준강제성교 등의 죄’로 바뀌었지만 강간에 ‘준’한다는 개념은 바뀌지 않았다. 원래 강간은 폭행이나 협박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강제성 교제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신체적 또는 심리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저항불능’ 상태였다는 것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2019년 3월에는 친딸을 성폭행한 아버지에게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2017년 당시 19세였던 딸을 두 차례에 걸쳐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준강제성교 등의 죄’로 고발당한 아버지는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딸이 ‘저항불능 상태’가 아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아버지는 딸이 중학교 2학년일 때부터 성적 학대를 반복해 왔다고 한다. 기소된 성폭행 직전에도 저항하는 딸의 얼굴을 때리거나 다리를 발로 차 멍이 생기기도 했다. 딸은 아버지에게 생활비와 학비를 빌리는 형식으로 지원받고 있어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판결에서는 성행위는 딸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졌고 딸이 아버지의 정신적 지배하에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극도의 공포심을 가지게 할 만한 폭행이 없었다는 점, 과거에 저항해 성행위를 거부했던 경험이 있었고 아르바이트로 경제적 독립을 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운 심리상태였다고는 할 수 없다며 저항불능 상태를 부정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토 시오리가 지난 12월18일 성폭행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한 직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 AP 연합
이토 시오리가 지난 12월18일 성폭행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한 직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 AP 연합

‘플라워 데모’ 여성들, 후진적 일본 성 의식 비판

같은 시기에 위 사건을 포함해 4건의 성폭행 사건에 연달아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법원은 여성의 의사에 반하는 성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여성의 심리와 남성의 인식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스노보드 동호회에서 벌어진 사건의 경우 여성이 술에 취해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음을 인정했지만,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남성이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인식하지 않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미투 운동으로 일본의 후진적인 성 의식이 도마에 오르고, 형법도 개정되었지만 최근의 판결들을 보면 여전히 피해자들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미투로 목소리를 낸 일본 여성들도 지난 4월부터는 ‘플라워 데모’를 통해 거리로 나왔다. 3월에 연달아 내려진 무죄 판결에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달 11일 꽃을 들거나 꽃무늬 옷을 입고 거리로 나오는 여성들은 구호를 외치거나 행진은 하지 않지만 ‘#Me Too’나 ‘#With You’ 플래카드를 들고 조용히 자신들의 의사를 피력한다. 일본 내각부가 2018년 공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에서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경험한 사람 중 반 이상이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부끄러웠기 때문’, 또 ‘자신이 참으면 어떻게든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경찰에 연락하거나 상담한 사람은 고작 3.7%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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