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상층부 성 의식 부족 보여준 해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8 17:00
  • 호수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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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백래시'로 가득했던 한 해

2019년 마지막 글을 쓰려니 생각나는 단어가 있다. 《백래시》. 2017년 12월말 번역돼 나와서 2018년을 뜨겁게 달군 책 제목이다. 책 출간과 거의 동시라 할 2018년 1월부터 한국에서는 ‘#미투 운동’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2018년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중요한 정치운동으로 자리매김했던 해였다. 페미니즘뿐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조금 일찍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자리를 잡으며 새 정부를 향한 기대감이 상승했고, 2018년 2월부터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면서 한반도 평화가 눈앞에 온 듯한 벅찬 분위기가 이어졌다.

평화라는 것은 언제나, 억눌리고 소외됐던 자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2018년은 누르는 자들의 무게를 이기고 많은 나무들이 자라나던 해였다. 그러면 올해는? 여성들이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얼마든지 몫을 할 수 있음을 보았다. 여성 대법관이 세 사람이나 되고 투스타 여성 장군도 있다. 30대에 대기업 임원이 된 여성들도 등장했다. 숙원이던 낙태죄도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아냈다.

하지만 2019년 전반을 돌아볼 때 나는 올해를 ‘백래시의 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백래시란 ‘반격’ 또는 ‘반동’이라 번역이 가능한 어휘다. 올해를 돌아보면, 과연 어마어마한 반동과 반격이 있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주로 법원 판결로 마무리되는 성범죄의 영역에서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얼마나 성범죄에 관대했던가가 여지없이 드러난 한 해였다.

지난 4월11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뒤 판결 환영 집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4월11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뒤 판결 환영 집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백래시’는 전진을 위한 필연적 현상

물론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 유죄 판결처럼 당연한 판결도 있었지만, 아직 대법원에 도달하지 못한 수많은 성범죄들의 1, 2심 판결은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다크웹(Dark-Web) 아동 성학대 동영상 운영자에게 내려진 1년6개월형도 그렇고, 수많은 가정폭력살해 범죄에 남성과 여성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양형 또한 명백한 성차별로 생각될 정도다. 그리고 장학썬(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이 있다.

특히 사회 상층부 남성들의 성인지감수성이 얼마나 낮은가를 여지없이 보여준 해였다. 성인지감수성이 낮으면 인권의식도 낮고 세대감수성도 낮다. 노동, 젠더, 세대의 모든 분야에서 2019년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주로 ‘남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마구 냄새 풍겨준 해였다. 여성 청년 공천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감수성 예민한 언론들이 떠들지만, 기성 정치인들에게 자기 아바타 같은 청년 여성만 눈에 보이면 하나 마나 아닐까.

백래시는 기계장치에서 유래된 단어로 바퀴가 전진하기 위해 꼭 필요한 ‘뒤에 남겨둔 공간’을 말한다. 당연히 전진을 위한 장치다. 후진하려면 전진보다 훨씬 힘이 든다. 그런데도 왜 사회현상으로 백래시가 생기는가 하면, 권세를 누리던 자들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변화의 압력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상한 신의 선물이 아니다. 인류가 더불어 함께 살고자 발전시켜 온 지성의 산물이다. 그러나 과거의 권력구도에는 분명히 균열을 내고 타자를 깔고 밟음으로써 사회 안정을 유지하던 일이 더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힘 때문에 필연적으로 백래시가 있다. 이 백래시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다른 반동들과 함께 일어난다. 괴롭지만, 전진하는 데 따른 필연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어리석음의 안대를 끼고 과거를 살아가는 그대들이여, 눈떠라. 2020년은 다른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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