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 “현재 한국의 위기는 80%가 구조적 문제”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9.12.30 14:00
  • 호수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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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 경제위기, 원인부터 제대로 진단하라”

“다들 한국 경제의 위기를 말한다. 하지만 위기의 본질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는 현재의 위기 진단은 물론이고, 미래 해결책 또한 찾을 수 없다.”

지난 12월23일 광화문 사무실에서 만난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전 미래에셋대우 대표)의 말이다. 그는 “현재 위기의 80%가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급속한 인구 감소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공급 과잉이 발생하면서 글로벌 경제가 동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변화(change)가 아니라 역사적 전환기(transition period)에 놓여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특히 한국은 지난 60년간 전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성장을 거듭해 왔다. 전환기의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다. 그는 “고속도로를 달리던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고 가정해 보자. 100km로 달리는 차하고 150km로 달리는 차는 대처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한국은 바로 150km로 달리는 자동차다. 이런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선행돼야 해법도 논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2%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확실히 지표가 안 좋다. 한국 경제를 받치고 있는 제조업 생산능력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출하율과 재고율 역시 안 좋은 상황이다. 급속한 온라인화로 인해 유통업계는 고사 직전이다. 이마트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분기 적자를 냈다. 자영업 상황도 비슷하다. 공급 과잉과 온라인화 등 소비 패턴 변화로 자영업의 이익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은 지난 60년간 전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성장을 거듭했다. 세계경제 동반 하락에 따른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고 가정해 보자. 100km로 달리는 차하고 150km로 달리는 차는 대처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한국은 150km로 달리는 자동차다. 위기에 대한 대응책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선행돼야 해법도 논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본질을 외면한 채 각론만으로 ‘위기론’을 부추기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소득주도성장이 대표적이다. 아마존은 최근 최저임금을 7.5달러에서 15달러로 1년 만에 두 배나 올렸다. 단기적으로 진통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이 선진국형 산업으로 가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을 올리는 게 당연하다. 소득주도성장도 마찬가지다. 해외 주요국들도 현재 소득주도성장을 주요 정책으로 채택하고 있다. 큰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한국의 경우 경제보다 복지와 분배에 정책이 치우쳐 있다. 효과를 체감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얘긴가.

“그렇다. 성장을 기본으로 설계된 세계경제는 이제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한 공급 과잉과 인구 감소에 따른 수요 축소로 인해 전 세계 경제성장률이 동반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변화(change)의 시기가 아니라 역사적 전환기(Age of Ttransition)에 세계경제가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제조업 기반의 수출산업이 주력이다. 소재(철강·화학·정유)와 산업재(기계·조선·건설·운송), 자동차, IT 등이 전체 매출이나 수출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교역량이 줄면서 수출이나 수입이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 한국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산업의 성장률이 떨어지다 보니 위기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본질은 전 세계 경제의 동반 하락으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

새해는 어떻게 전망하나.

“올해보다는 좋을 것으로 본다. 주요국들이 재정을 풀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국 경제 성장률 역시 다소 회복될 것이다. 그동안 세계경제를 압박했던 미·중 무역분쟁 역시 최근 1단계 합의를 이룬 점도 호재가 되고 있다. 미국은 새해에 대선을 치르게 된다. 선거를 앞둔 3분기까지 세계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보통 6~9개월 뒤 경기를 예측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기선행지수(CLI)가 지난 10월 하락세를 멈춘 뒤 반등하고, 코스피지수가 최근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상황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당장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을 놓고 보자. 과거 재선에 실패한 미국 대통령들은 대부분 경제문제 해결에 한계를 보였다. 미국과 중국의 다툼은 무역이 아니라 패권전쟁이다. 트럼프가 재선된다는 가정하에 중국에 대한 미국의 공격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일본 등으로 분쟁이 확대될 수도 있다. 우리 기업들 역시 새해 경기보다는 이런 이데올로기 흐름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책은 없나.

“항상 했던 얘기다. 우선 상품의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여야 한다.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최근 자국에 진출한 글로벌 IT기업을 대상으로 연매출의 3%를 과세할 디지털세 법안을 마련했다. 미국은 프랑스의 디지털세가 자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고 맞서며 프랑스산 치즈, 와인, 럭셔리 상품 등 63개 품목에 100%까지 관세 부과 계획을 밝혔다. 신자유 시대가 이제 끝나고 국수주의로 회귀한 것이다. 국내 기업들 역시 이 흐름에 맞춰 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 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최근 한국의 네이버와 일본의 야후가 합병을 선언한 것은 바람직하다. 1등만 살아남는 시대로, 규모의 경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새해에는 5G나 IoT(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관련 이슈가 많다.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통신장비 관련 사업에 유리할 것으로 본다.”

내수는 어떤가.

“내수 역시 전환기에 놓였다. 일본의 경우 1995년에서 1997년 사이 생산가능인구가 크게 떨어졌다. 음식료 소비량은 15%나 감소했다. 고령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매년 80만 명이 은퇴를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온라인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자영업은 물론이고, 대형 유통업체들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분기 이마트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전체적으로 소비는 줄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교 앞 문구점이 사라졌다고 소비가 줄어든 것일까. 최저임금 상승으로 문구점이 사라졌다고 얘기할 수 있나. 아니다. 소비 패턴이 변하면서 다이소로 소비자들이 이동했기 때문이다. 내수업체 역시 이런 흐름에 맞춰 전략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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