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왜 위기라 말하는가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30 10:00
  • 호수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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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 2.3~2.4% vs 민간 1.6~1.9% 전망 엇갈려…관건은 대내외 불확실성 관리

“경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답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바로 ‘불확실성’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새해 경제 상황을 점치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국내만 해도 수없이 많은데,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성적표는 대외 변수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현재 대내외 불확실성은 어느 때보다 크고, 그 불확실성은 당분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2020년 경제 상황을 예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움에 봉착하면 우린 전문가를 찾는다. 그런데 경제 전문가들의 전망도 엇갈린다. 낙관과 비관이 교차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연말연초에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내놓는 분석들은 이듬해 같은 달에 되돌아보면 틀린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년 경제 전망을 쫓아 챙겨본다. 왜 그럴까? 어차피 틀릴 가능성이 높은 분석을 매년 같은 시기만 되면 왜 반복해서 찾아볼까?

눈 밝은 전문가들의 분석을 잘 쫓다 보면 어떤 단서와 힌트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낙관과 비관이라는 결론은 달라도 경제 전문가들이 그 판단을 내리는 데 쓰인 근거인 ‘재료’들은 사실 놀랍게도 대체로 비슷한 경우가 많다. 재료에 대한 판단이 다르니 한국 경제 전망이라는 결론이 달라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해진다. 전문가들이 결론을 내리는 데 중요하게 사용한 재료들이 무엇인지 분명히 파악하고, 그 재료들에 대한 판단이 어떻게 엇갈렸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전문가들의 권위에 기대지 않더라도 결론까지의 나름의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바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새해 한국 경제 오리무중 속 고군분투”

“2020년 한국 경제는 ‘오리무중’ 속 ‘고군분투.’”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등 국내 경제 전문가 43명은 새해 한국 경제를 둘러싼 핵심 키워드로 이 두 단어를 제시했다. 2019년 제시한 ‘내우외환’보다는 우려의 정도가 덜하다. 왜 ‘오리무중’에 ‘고군분투’일까. 오리무중의 이유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새해는 미·중 무역분쟁, 미국 경제의 하락 가능성, 한·일 수출 갈등,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남북경협과 비핵화 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일, 남북 문제를 제외하면 우리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변수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고군분투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이 교수는 “세계경제의 오리무중 속에 경제성장률 전망치와 수출 증가율의 하락, 각종 투자의 정체 및 감소, 성장 없이 일부 고용지표만 개선되는 ‘성장 없는 고용’ 등을 맞닥뜨리며 한국 경제는 고군분투할 것”이라면서 “한국 경제는 성장세 하락, 수출 마이너스, 투자 정체, 분배 악화와 같은 난관에 대처하기 위해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중 경제협상 타결, 이에 따른 수출 회복, 5G 혁신에 따른 반도체 업황 회복 등이 이뤄진다면 새해 상반기까지 침체를 겪은 후 하반기부터 조금씩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의 전망은 어떨까. 정부는 새해 한국 경제가 2.4%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국책연구기관은 물론 국내외 경제 관련 기관들이 내놨던 전망치보다 최소 0.1%포인트에서 최대 0.8%포인트가량 웃도는 수준이다. 앞서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새해 성장률을 2.3%로 예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은 각각 2.3%와 2.2%로 내다봤다.

정부의 낙관적 전망의 근거(재료)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계경기가 새해에는 회복하는 데다 대규모 투자와 재정 확대 정책에 힘입어 올해 성장률(2.0%)보다 0.4%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우선 새해 세계경기가 반등할 것으로 본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세계경기가 저점을 지났다는 신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글로벌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는 50을 넘어섰다. PMI가 50보다 크면 경기 확장 국면을, 50보다 작으면 경기 위축 국면을 나타낸다. 경기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OECD 경기선행지수도 지난 10월에는 2017년 10월 이후 2년 만에 처음으로 반등했다.

여기에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 업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성장률 전망에 영향을 미쳤다. 세계 반도체 시장 통계기구는 올해 글로벌 반도체 매출액이 12.8% 감소했지만, 새해에는 5.9%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정부 “경기 저점 지나…대규모 투자가 마중물 역할”

정부는 미·중이 ‘1단계 무역 합의(스몰딜)’에 성공한 점도 낙관적 전망의 주요 근거로 썼다. 김 차관은 “정부 성장률 전망치가 한은이나 KDI보다 0.1%포인트 높은 것은 미·중 1단계 무역협상 합의라는 중대한 상황 변화가 감안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재정 확대 속에 이뤄지는 대규모 투자도 성장률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는 새해에 울산 석유화학공장(7조원)과 인천 복합쇼핑몰(1조3000억원) 건립 등 10조원 규모의 기업투자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신규 사업(15조원)도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서울 창동 K팝 공연장 등 15조원 규모의 민자사업과 철도·고속도로·항만 등 공공기관 투자사업(60조원)도 추진한다.

이런 정부의 낙관적 전망과 달리 민간기관 중심의 비관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LG경제연구원은 새해 성장률로 올해 전망(2.0%)보다 낮은 1.8%를 제시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경제 여건이 허약해지고 성장동력을 찾기 어렵다며 올해와 같은 1.9%로 전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보다 0.2%포인트 높은 2.1%를 예상했다.

해외의 시선은 어떨까.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11월말 기준 글로벌 투자은행(IB) 10곳의 새해 한국 경제성장률 평균 전망치는 2.1%였다. 정부 전망치와 0.3%포인트 차이가 난다. JP모건은 2.3%, 크레디트스위스(CS)·바클레이즈·골드만삭스·HSBC는 2.2%, 모건스탠리·노무라는 2.1%, 씨티는 2.0%다. UBS는 새해 경제성장률을 1.9%로 올해와 같은 수준으로 전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는 성장률 전망치를 1.6%로 전망하며 오히려 올해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봤다.

민간 “대외변수 불확실…中 경제 경착륙 우려”

민간기관들은 대내외 여건이 정부가 예상한 만큼 호전되지 못하면 경기 반등의 발목이 잡힐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진짜 겨울이 오냐, 아니냐를 가를 핵심 변수는 대외 불확실성이다. 새해 세계경기 전체는 성장하지만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미국(OECD 전망·올해 2.3%→새해 2.0%)과 중국(6.2%→5.7%)의 성장세는 동반 둔화한다. 한국 수출의 40% 가까이를 차지하는 두 나라의 경기가 부진하면 우리 경제의 회복도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민간기관들은 중국 경제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미·중 무역갈등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전망과 분석도 결이 다르다. 사실 국책은행들 역시 대외 불확실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2020년 국내외 경제 및 산업 전망’에서 “미·중 무역분쟁 심화로 인한 세계 교역 둔화 등 대외 수출 여건 악화가 이어질 것”이라며 새해 국내 성장률을 2.0%로 전망했다.

IBK 경제연구소는 ‘2020 경제 및 산업 전망’을 통해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되거나 분쟁이 격화할 경우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면서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충격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미·중 무역협상 교착이 지속하고 중국 경제성장률이 5%대로 떨어지며 ‘바오류(保六·6% 이상 성장률)’가 깨질 경우 한국 경제의 추가적인 경기 부양책의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소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 중인 가운데 새해에는 기저효과로 인해 (성장률을) 다소 회복하겠으나 국내외 불확실성으로 인해 전반적인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경착륙 우려와 일본의 수출규제 장기화 등도 한국 경제의 내수 및 수출 회복이 지연될 것으로 예상되는 재료였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아시아 주요국의 경기둔화, 보호무역 기조, 잠재성장률 하락 등이 2020년 한국 경제의 하방 위험이 될 수 있다면서 “만약 아시아 경제권의 성장세에 문제가 생기면 한국은 수출은 물론 성장률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가 소폭 회복되다 곧바로 떨어지는 ‘더블딥’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미·중 무역분쟁과 부진한 내수 등 2019년 한국 경제를 흔든 ‘외환’과 ‘내우’ 모두 해결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 실장은 “2020년 화두는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며, 하방 위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지 여부가 산업과 기업의 방향성을 결정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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