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 6465] 다시 한 번 희망을…‘고령 장애인’ 문제 해결 약속한 국회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12.3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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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활동지원제도 개선 중장기 로드맵' 마련
한국당, "활동지원제도 대상 연령 65세→70세 연장 필요"

결국은 정치다. 곪을 때로 곪아버린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은 추운 길거리도, 정부도, 법원도 아닌 바로 국회다. 만 65세 이상 고령 장애인의 활동지원 보장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변화를 약속했지만 한계가 있다. 법이 바뀌어야 제도가 바뀌고, 내 삶이 바뀐다.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시사저널이 만난 중증 지체장애인 김순옥 할머니(65)가 시설이 아닌 집에서 생활할 수 있고, 이익재 할아버지(64)가 병원에 갈 수 있으며, 권오태 할아버지(65)가 시를 계속 쓸 수 있다. 국회가 나서 바꾸지 않는다면 고령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현대판 고려장’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될 수밖에 없다.

20대 국회가 마냥 고령 장애인 문제를 외면한 것은 아니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법안이 4개나 발의돼 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와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명연 자유한국당 의원(2개)이 각각 발의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여론의 관심도가 큰 법안들에 밀렸다. 법안들은 상임위에서 먼지만 쌓인 채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2020년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21대 국회에서는 고령 장애인들의 삶을 바꿀 법안들이 ‘주류 이슈’로 부상할 수 있을까. 매년 ‘약자를 위한 국회’를 약속하지만, 이 약속은 많은 경우 휴지조각이 됐다. 그럼에도 장애인계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만 65세 장애인에게 충분한 활동지원서비스를 보장하는 안을 내년 총선 공약으로 공식적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이미 대통령은 “해법을 찾겠다”며 의지를 피력했다. 여당이 뒤를 받친다면 케케묵은 난제라도 빠르게 해결될 수 있다. 오랫동안 지지부진하던 어린이 교통안전법이 ‘민식이법’이라는 이름 아래 올해 막판 통과될 수 있었던 것도 정부여당이 힘을 모든 결과였다.

 

與, “‘사선 6465’ 문제 해결” 총선 공약으로 발표

20대 국회에서 고령장애인 '활동지원제도' 문제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가운데, 여야 모두 21대 국회에서 관련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사진은 여의도 국회 앞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와 있는 모습. ⓒ연합뉴스
20대 국회에서 고령장애인 '활동지원제도' 문제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가운데, 여야 모두 21대 국회에서 관련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사진은 여의도 국회 앞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와 있는 모습. ⓒ연합뉴스

시사저널이 ‘사선 6465’ 기획기사(시사저널 1573호 특집 ‘[사선 6465] 생일날, 고려장을 당했다' 기사 참조)를 보도한 뒤 일주일이 지난 12월18일, 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회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장애인 정책 비전 선포식’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은 만 65세 이상 장애인의 활동지원 보장을 비롯한 ‘장애인 10대 중점 추진과제’를 발표했다. 10대 중점 추진과제에는 ▲활동지원제도 개선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 수립 ▲국가장애인위원회 설치 및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장애인 주거보장 및 탈시설을 통한 장애인 자립 생활정책 강화 ▲뇌병변·발달 중복 장애인 종합지원대책 수립 ▲장애인 생애주기별 맞춤형 교육지원 정책 강화 등이 포함됐다.

이 중 ‘활동지원제도 개선 중장기 로드맵’에는 ▲각 장애영역 및 정도에 따른 맞춤형 활동지원 평가척도 개발 ▲중증도에 다른 활동지원 단가 차등화 ▲65세 이상 중증장애인의 노인 요양 전환 시 활동지원 유지 등을 담았다. 로드맵에 ‘중장기’를 붙였듯, 한 번에 모든 활동지원 제도를 뒤바꾸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행법처럼 만 65세를 넘는 순간 단칼에 활동지원 시간을 반토막내는 현실은 바꿔야 한다는 게 로드맵의 핵심 골자다.

문상필 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장은 “지난 6개월 넘게 우리는 당사자 의견을 스스로 모아서 정책화하겠다는, 장애인 역사에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을 걷고 있다. 그동안 오랫동안 21번의 간담회와 토론회를 통해 장애인들의 많은 요구를 파악했다”면서 “언젠가는 이뤄야할 우리의 숙제를 모았고, 그 중 몇 개를 공약화시키기 위해 당 정책위원회와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힘을 실었다. 박광온 최고위원은 “장애인들이 장애를 느낄 수 없는 세상이 된다면 모든 분들이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사회, 선진국이 될 것”이라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 언젠가는 갈 수 있다는 자세로, 시설과 제도, 인식을 하나하나 고쳐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장애를 갖고 있는 이상민 의원은 ‘장애인 국회의원’ 탄생을 강조했다. 국회 안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장애 관련 법안들이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지금까지는 구색 갖추기식으로 장애인 비례대표를 한 명씩 배출했는데 그나마 20대 국회 때는 한 명도 없었다”며 “겨우 한 명 갖고 되겠냐. 구걸하듯 ‘한 명 넣어주세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당당히 말해야 한다. 결국 정치는 힘이다. 그 힘은 표에서 나오고, 표는 숫자다. 많은 분들을 입당시키고 힘을 모아야 여러분들 중 당 대표도, 최고위원도 나온다”고 말했다.

실제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장애계 인재 영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음 국회에서는 장애계 목소리를 더 담아내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민주당은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얻은 뒤 장애에 대한 사회 편견을 바꾸는 일이 매진해 온 최혜영 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 이사장(40)을 총선 ‘영업인재 1호’로 발표했다. ‘인재영입 2호’도 역시 14년 전 시각장애인 어머니와 함께 한 방송에 출연을 모은 원종건(26)씨다. 원씨는 “양지보다는 그늘, 편한 사람보다는 힘든 사람들, 여유 있는 사람들보다는 어려운 사람들, 한참 앞서 가는 사람들보다는 뒤처진 사람들을 보다 따뜻하게 보듬는 일, 그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며 약자들을 위한 정치를 약속했다.

 

한국당 “21대 국회에서는 꼭 이행”

고령 장애인 문제에서 만큼은 ‘이데올로기의 벽’도 없다. 한국당 역시 장애인 활동지원 대상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당은 지난 11월 예산정책 기자간담회에서 장애인 활동지원 대상 연령은 현재의 만 65세에서 70세까지 연장하도록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용기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당시 “장애인 활동지원을 70세까지 연장하도록 예산을 증액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다른 현안 합의가 엉클어지면서 실제 예산 증액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제1야당이 협조적인 만큼 민주당과 한국당 양당이 손을 잡는다면 고령 장애인 문제는 속도 있게 제도 개선이라는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다.

정하균 한국당 중앙장애위원장은 “젊은 사람이 요양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고령 장애인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나이가 아닌, 장애의 차이나 개인 상황에 따라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의 연령을 만 65세로 정해서는 안 된다는 게 한국당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활동지원시간의 총량은 만 65세가 넘더라도 유지시켜야 한다. 21대 국회에서는 관련 공약을 마련해 꼭 이행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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