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웨이스트‘ 라이프가 바꾸는 독일의 풍경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9 17:00
  • 호수 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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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시작한 반 비크 ”쓰레기 줄이는 걸 넘어 낭비 지양하는 생활방식 필요“

2019년 9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한 연설은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그에 따른 기후변화를 언급하며 기성세대의 나태함을 질책하는 16세 소녀의 목소리에선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젊은 세대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독일에서는 툰베리로부터 촉발된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시위가 다시 한번 활발해지는 등 환경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더욱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환경문제는 기후변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툰베리 역시 이 부분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지난해 6월8일 툰베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바다에 버려지는 쓰레기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통계에 따르면 독일은 2016년 기준 1인당 38kg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버렸다. 이는 유럽연합 국가 중에서도 높은 편에 속한다. 이러한 수치에 대응해 독일 시민들은 법적인 규제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플라스틱 소비량을 줄일 수 있을까를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일상 대화 속에서도 독일 시민들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쓰레기 없이 살기’. 즉 ‘제로-웨이스트(zero-waste)’ 라이프에 대한 관심을 키워 나갔다.

분단 시절 임시수도였던 본(Bonn)에는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시민들의 모임이 있다. 이들은 워크숍이나 행사를 주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시민들에게 제로-웨이스트의 콘셉트를 소개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성탄 시즌은 독일인들의 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기간이다. 선물 포장지 등으로 쓰레기 수거함이 금세 가득 채워진다. 이 모임에선 12월초 ‘크리스마스 물품 교환 마켓’을 주최한다. 이 마켓은 기존의 크리스마스 마켓이나 플리마켓과 달리 물건들을 판매하지 않고 교환하는 규칙을 따른다. 이로써 불필요한 소비와 그에 따른 포장 쓰레기까지 방지할 수 있으며, 쓰레기 문제에 관심이 없던 시민들의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

포장을 지양한다는 콘셉트로 2019년 11월 문을 연 독일의 한 가게(작은 사진).같은 해 8월21일 독일 유치원 아이들이 과일 오렌지 비누를 만들고 있다. ⓒ DPA 연합
포장을 지양한다는 콘셉트로 2019년 11월 문을 연 독일의 한 가게(작은 사진).같은 해 8월21일 독일 유치원 아이들이 과일 오렌지 비누를 만들고 있다. ⓒ DPA 연합

“미래 세대까지 지속될 수 있는 삶의 방식”

이 모임은 본에 거주 중인 안나레나 반 비크로부터 시작됐다. 그녀는 2008년 친환경 도시로 자리 잡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잠시 일하며 처음으로 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귀국 후 그녀는 세계여행을 시작했고, 인도에서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고 한다. 현재 그녀는 제로-웨이스트 생활을 철저히 지키며 이를 널리 홍보하고 있다.

시사저널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그녀는 “제로-웨이스트는 비단 포장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낭비를 지양하는 생활방식이다. 현대인의 소비 행태를 유지하려면 우린 여러 개의 행성에 나눠 살아야 할 정도다. 제로-웨이스트는 우리가 갖고 있는 제한된 자원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방식, 미래 세대까지 지속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즉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으려면 자연스럽게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게 되고, 이는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이 번거롭고 비용이 더 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물건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를 알기만 하면 더 번거로울 것이 없다. 제로-웨이스트를 따르면 돈도 절약할 수 있다. 물론 식품들이 개별 포장되지 않는 유기농 가게에서 장을 보면 일반 마트보다 돈을 더 쓰게 되지만 좀 더 양질의 식품을 얻는다. 제로-웨이스트는 비단 식료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구나 의류 역시 중고를 사면 훨씬 저렴하고,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즉 제로-웨이스트는 기존에 지출되는 비용이 다르게 분배될 뿐”이라고 답했다. 기존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이 경제적, 시간적 비용이 더 많이 들 것이라는 심리적인 벽에서 기인한다고도 그녀는 주장했다.

이렇게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 외에도 일반적인 분위기 역시 ‘일회용품 자제’로 기우는 추세다. 커피 전문점에서 일회용 컵 사용을 자제하기 위해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것 역시 그에 해당하는 할인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경오염을 방지한다는 의식을 갖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의 의식이 고양될수록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 역시 구축돼야 한다는 요구 또한 커지고 있다. 아무리 포장되지 않은 제품을 사려 해도 이를 판매하는 가게가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 부분에서 ‘본받을 나라’라는 평가를 받는다. 독일에서는 도시마다 벼룩시장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여기서 누구나 의류·주방기기·전자제품·소가구류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할 수 있고 부스를 신청해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들을 모아 직접 팔 수 있다. 길을 다니다 보면 중고 가게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친환경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은 나라

포장을 하지 않은 제품에 대한 접근성 역시 발달돼 있다. 기존에는 포장되지 않은 채소류를 사기 위해 특별히 유기농 가게에 가야 했다. 하지만 2019년부턴 일반 마트에서도 개별 포장해 팔던 채소류를 포장 없이 날것으로 팔기 시작했다. 이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아예 포장을 지양한다는 콘셉트의 가게도 등장했다. 지난해 11월2일 독일 본 시내에 ‘본의 어느 가게(Et Bönnsche Lädche)’라는 이름의 가게가 오픈했다. 여기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파스타·밀가루·향신료·차·과자 등이 판매된다. 가게의 규모는 작지만, 상품들이 포장된 채로 쌓여 있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품목들이 진열돼 있다. 식료품뿐 아니라 비누·보디로션 등 미용 제품도 있다.

이곳 제품들은 포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물건을 담아갈 용기를 직접 들고 가야 한다. 혹 직접 보관 용기를 가져가지 않았다면 가게에서 유리 용기를 사거나 공짜로 제공하는 작은 종이봉투에 담을 수 있다. 하지만 가게에 들어서면 다양한 보관 용기들에 물건을 채우는 고객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일단 가져온 용기의 무게를 재고 원하는 상품을 직접 담아 계산대로 향한다. 이러한 방식의 장보기는 자신이 필요한 만큼 살 수 있고, 집에 도착해 플라스틱 포장재를 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이 가게의 고객층은 매우 다양하다. 소위 ‘힙스터’라고 불리는 젊은 층부터, 작은 규모의 살림을 꾸려 적은 양의 식료품만 사길 원하는 1인 가구나 높은 연령대의 고객까지 모두 이 가게를 애용할 이유가 있다.

반 비크의 말대로 독일은 경제적으로도 절약하며 환경보호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춘 나라다. 이는 독일 시민들의 높은 의식 수준과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 형성이 이뤄낸 시너지다. 친환경이 이제 더 이상 어떤 특수층만 관심을 갖는 문제가 아니라, 보통 시민들의 일상에서 실천돼야 한다는 점을 독일 시민들은 점점 강하게 체감하고 있다. 이러한 대중적 관심이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가게들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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