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아 발 끼임 사고 피해자 두 번 울린 포스코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9 10:00
  • 호수 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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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입수 보험사 내부 문건 “포스코 과실 70%”…포스코 측 “재발 방지 조치 취했다”

포스코가 지난해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내 에스컬레이터에서 벌어진 5세 여아 발 끼임 사고와 관련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김아무개양의 부친 김아무개씨가 고소장을 제출한 데 따른 것이다. 단순히 치료비 등을 보상받기 위함은 아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포스코 측 보험사의 내부 법률 검토 문건에는 포스코의 과실이 최대 70%로 나타나 있다. 향후 보험금으로 치료비 등을 보상받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피해자 가족이 경찰 고소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사고 이후 포스코가 보인 태도 때문이다. 에스컬레이터를 관리하는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겼고, 사고로부터 9개월여 뒤인 지금까지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김씨는 이처럼 안전사고를 외면하는 포스코의 행태로 미뤄볼 때 제2,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김씨는 고소를 통해 포스코에 ‘더 이상 안전 문제를 외면하지 말라’는 강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시간은 지난해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5세이던 김양은 부모와 함께 서울 강남구의 포스코센터를 방문했다. 주말을 맞아 이곳 지하 1층에 위치한 대형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사고는 귀가를 위해 상업시설이 있는 지하 1층에서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지하 2층으로 내려가던 중 벌어졌다. 모친의 손을 잡고 에스컬레이터에 나란히 선 김양의 오른발이 스커트가드(벽면)와 디딤판 사이로 말려들어간 것이다. 이날 내렸던 비 때문에 신었던 장화가 화근이었다. 고무 재질로 된 신발은 에스컬레이터 끼임 사고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사고 당한 5세 여아, 전신마취 수술 2차례

김양의 비명을 들은 부친 김아무개씨는 즉시 발을 잡아 빼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에 탑재된 동작감지센서가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김양은 10초 동안 발이 끼인 채로 내려왔다. 곡절 끝에 간신히 발은 빼냈지만 상태는 심각했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살점이 뜯겨나갔고 심각한 출혈이 발생했다.

이때 포스코의 대응은 사실상 전무했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당시 포스코의 건물 유지·관리 계열사인 포스코오앤엠이 파견한 관리직원 5명이 주변에 있었지만 누구도 이렇다 할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사고 당시 비상정지 버튼을 누른 안전관리 요원도 없었고, 김양의 발을 빼는 것을 도운 직원도 없었다. 김씨가 관리직원들에게 119 신고와 감염 예방을 위한 생수를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이뤄지지 않았다. 사고 후 관리직원이 구급함을 들고 왔지만 치료는 받지 못했다. 응급처치를 할 줄 아는 직원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포스코의 대처는 여느 대기업과는 대조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백화점이나 마트 등 상가시설을 운영하는 대기업 대부분은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매뉴얼을 마련하고 있다. 실제 포스코센터 인근의 현대백화점만 해도 매월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에스컬레이터 안전교육을 실시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에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사고 발생 시 대응 매뉴얼부터 응급처치까지 망라돼 있다.

이번 사고로 김양은 오른발에 7cm의 열상과 개방성 골절, 새끼발가락 신전건(힘줄) 파열 등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김양은 2차례의 전신마취 수술을 받았고, 20일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발에 있는 성장판 등이 손상을 입어 향후 후유증이 예상된다는 소견도 받았다. 가장 큰 문제는 마음의 상처였다. 김양은 사고 이후 극도의 공포와 트라우마를 호소해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지만 아직까지도 불안한 심리 상태가 지속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이번 사고의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민법 제758조에는 ‘에스컬레이터 등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공작물 점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하자는 공작물이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춰야 할 ‘안정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대법원 판례상 안정성이 담보됐는지 여부는 공작물의 위험성에 비례해 설치·보존자가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방호조치의무를 다했는지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결국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방호조치의무’가 핵심 쟁점인 셈이다. 그렇다면 포스코는 이런 의무를 다했을까. 물론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니만큼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리기엔 시기상조이다. 다만 포스코오앤엠이 포스코센터에 대한 영업배상책임보험(CGL)을 가입한 보험사는 포스코가 안전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해 과실을 최대 70%로 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보험사의 내부 법률 검토 문건에는 이런 판단의 배경이 담겨 있다. 보험사는 첫째로 측면 끼임을 방지할 별도의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을 과실 산정의 근거로 들었다. 대부분의 에스컬레이터에는 벽면과 디딤판 사이에 끼임 방지를 위한 솔 형태의 ‘스커트 디플렉터’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에스컬레이터엔 이 장치가 존재하지 않았다. 스커트 디플렉터만 설치돼 있었더라도 이번 사고가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던 것이다.

 

비상정지 장치 미작동, 끼임 방지 장치 미설치

보험사는 또 에스컬레이터의 디딤판 등에 이물질이 끼일 경우 반드시 자동으로 정지할 수 있는 비상정지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사고가 벌어진 에스컬레이터가 탑승지점과 하차지점에서 60cm 떨어진 두 개 지점을 제외하고는 끼임이 발생해도 비상정지 장치가 작동하지 않도록 설계돼 있던 것이 문제였다. 김양의 발이 끼였는데도 계속 에스컬레이터가 작동해 피해를 키운 것도 바로 이 때문으로 보인다.

보험사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안내 스티커가 부적절하게 설치돼 있었던 점도 문제 삼았다. 사고가 벌어진 에스컬레이터는 디딤판 폭이 60cm로 여성과 유아가 함께 설 경우 협소한 너비였다. 그럼에도 에스컬레이터에는 부모와 어린이가 나란히 디딤판에 탑승하도록 지도하는 스티커가 부착돼 있었다. 서울 시내 지하철 등에 설치된 동일 규격의 에스컬레이터 상당수에는 아이와 부모가 앞뒤로 손을 잡고 서도록 안내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5세 여아 에스컬레이터 발 끼임 사고가 벌어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 시서저널 고성준
5세 여아 에스컬레이터 발 끼임 사고가 벌어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 시서저널 고성준

포스코 관계자 “수사 상황 지켜보겠다”

그럼에도 포스코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사고 직후 포스코오앤엠 관계자가 병원을 찾아왔지만 에스컬레이터 관리 하청업체가 보상토록 하겠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자 본사 차원의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포스코는 사고 9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포스코오앤엠 관계자는 “경찰 고소로 고소인과 피고소인 관계가 된 만큼 김씨와 접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며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사고와 관련해 김씨는 “포스코센터는 아쿠아리움과 미술관 등 문화시설부터 각종 상가들이 입주해 있어 유동인구가 많고, 특히 2018년 대형 서점이 입점한 뒤로는 가족 단위 방문객 수가 크게 증가했다”며 “그럼에도 포스코는 안전사고에 대한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런 가운데 사고가 터지자 포스코는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 대신 책임을 회피하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를 보면 이번 사고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포스코는 기존에도 에스컬레이터가 적법하게 설치돼 있었지만 이번 일을 기점으로 사고 우려가 제기된 모든 부분에 대한 조치를 취했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사고 이후 에스컬레이터 전 구간에서 끼임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작동이 멈추도록 했고, 스커트 디플렉터도 특별 주문 제작해 설치했다”며 “여기에 유아 동반 시 안전한 탑승을 안내하는 입간판을 설치하는 등 재발 방지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 “최선 다해 대응, 안전기준도 적합”

포스코는 이번 에스컬레이터 유아 발 끼임 사고와 관련해 “시설을 관리하는 포스코오앤엠이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대응했고, 에스컬레이터 역시 안전기준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아래는 포스코의 입장 전문이다.

사고 당시 포스코오앤엠에서는 유아 울음소리를 듣고 직원들이 바로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보호자가 119신고를 했다고 알려줘 신고 확인과 동시에 응급약품과 붕대, 정수기 물 등을 제공했다. 사고 직후에는 포스코오앤엠 직원들이 병원을 찾아가 사과의 뜻도 전했다. 이후 에스컬레이터 유지·관리 협력업체도 자발적으로 방문해 사과했다. 

해당 에스컬레이터에는 안전장치 설치 기준에 맞춰 비상정지버튼 및 자동정지 시스템이 정상작동하고 있었다. 자동정지시스템 작동 범위는 탑승부와 하차부에서 1.2m이내 동작한다. 사고 당시에는 이 구간을 벗어난 지점에서 발이 끼인 것으로 보인다.

부모와 어린이가 나란히 발판에 탑승하도록 알려주는 이용자 주의 표시는,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에스컬레이터 안전기준 규격에 의거해 부착돼 있다. 또 그림 아래 ‘어린이나 노약자는 보호자와 함께 이용하세요’라고 명기돼 있다.

지난해 3월27일 보호자가 참여한 가운데 행정안전부 승강기사고조사위원회에서 에스컬레이터 시설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해당 에스컬레이터는 안전기준 모두 적합으로 의결했다. 이밖에 포스코센터 내 모든 시설물 관리에 대한 안전지침서 등 각종 매뉴얼의 구비는 물론 정기교육도 하고 있으며, 매년 엄격한 정기점검에서 안전기준 합격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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