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일대를 공포에 떨게 한 강창구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7 08:00
  • 호수 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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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연쇄살인범 그 후] 4년 동안 6명 강간살해…사형집행 후 장기 기증

한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기 일쑤다. 1983년 7월31일 저녁 7시, 충남 공주군 우성면 용봉리에 사는 홍아무개씨(여·50)는 밭일을 마치고 땀에 젖은 몸을 씻어내기 위해 근처 계곡으로 향했다. 주변을 살펴 인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옷을 벗고 물에 몸을 담갔다.

그런데 이 모습을 몰래 지켜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시멘트 미장공으로 일하는 강창구(31)였다. 그는 우연히 홍씨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욕정이 솟구쳤다. 강씨는 홍씨에게 조용히 다가간 후 흉기로 위협해 방어능력을 상실하게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기겁한 홍씨는 손으로 몸을 감싸며 부르르 떨었다. 강씨는 겁에 질린 홍씨의 머리채를 붙잡고 물에 넣었다 뺐다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가 실신하자 물 밖으로 끌어내 강간하며 욕구를 채웠다. 강씨는 시신을 물속에 넣어 익사한 것처럼 위장하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계룡산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공주 부녀자 연쇄강간살인 사건’은 이렇게 서막이 올랐다.

밭에 일하러 간 홍씨가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갑자기 집을 나갈 이유도 찾지 못했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후 무사히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며칠 후 인근 소룡골 계곡에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는데 홍씨였다. 가족들은 땅을 치며 통곡했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보니 시신은 알몸 상태로 물속에 잠겨 있었다. 주변에서는 홍씨의 옷가지가 발견됐다.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다. 경찰은 홍씨가 목욕하다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한 것으로 보고 단순 변사로 처리했다. 아무도 홍씨가 살해됐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우발적 범행 후 범죄 학습

강창구의 첫 번째 범행은 우발적이었지만, 그는 이를 계기로 범죄를 학습하게 된다. 너무 쉽게 살인에 성공했다고 보고 다음 범행으로 이어간 것이다. 그는 외진 길에 혼자 다니는 여성을 상대로 욕정도 풀고 돈도 빼앗겠다고 마음먹었다.

약 7개월 후인 1984년 2월21일, 강씨는 흉기를 소지하고 계룡산 일대를 배회하며 범행 대상을 찾고 있었다. 오후 1시쯤, 공주군 반포면 봉곡리 속칭 노랭이골에서 이아무개씨(여·51)를 목격했다. 인천에 거주하던 이씨는 인근 낙암사에서 불공을 드리고 홀로 내려오던 길이었다. 강씨는 이씨에게 흉기를 들이대고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 강간한 후 목 졸라 살해했다.

이씨의 시신은 두 달 후 범행 장소 인근 야산에서 발견된다. 상당히 부패한 상태여서 정확한 사망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독극물 검사를 했으나 위액에서 의심 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단순 변사로 처리됐다. 강창구는 두 번째 살인에도 성공하면서 범행에 자신감을 가졌다.

8월19일 오후, 강씨는 낫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그는 1차 범행 장소 근처인 공주군 우성면 용봉리에 있는 소룡골 산길에 숨어 있었다. 오후 2시쯤, 혼자 길을 지나는 박아무개씨(여·21)가 눈에 띄었다. 박씨는 대낮인 데다 평소 익숙한 길이어서 별 경계 없이 길을 가고 있었다. 이때 누군가 박씨의 앞을 가로막았다. 강창구였다. 그는 낫을 들이대며 “순순히 따라오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점점 깊은 산속으로 끌려가던 박씨는 “멈춰” 하는 말에 그 자리에 섰다. 강씨는 박씨의 옷을 벗게 하고 성폭행을 시도했다. 박씨는 온 힘을 다해 강씨를 밀쳐대며 “사람 살려”라고 소리쳤다. 박씨의 격렬한 저항에 당황한 강씨는 범행을 포기했다. 그는 낫을 휘둘러 박씨에게 상처를 입히고는 도주했다. 그의 세 번째 범행은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1년 사이에 같은 지역에서 살인 사건 두 건, 강간미수 한 건이 발생했다. 이 중 두 건이 단순 변사로 처리되면서 강창구는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도 일정한 냉각기를 뒀지만 다른 연쇄살인범들과는 달랐다.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 정두영 등은 살인 횟수가 늘어날수록 가속도가 붙어 범행주기도 짧아졌다. 반면 강창구는 한 번 범행을 저지르면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살인 본능을 잠재웠다.

그가 네 번째 범행에 나선 것도 1년 후인 1985년 7월26일이다. 강씨는 공주군 반포면 봉곡리에 있는 마티고개에서 낙암사로 통하는 길목에 숨어 있었다. 이때 한 여성이 나타났다. 관광객인 이아무개씨(여·21)였다. 인천 강화에 사는 이씨는 이 지역에 놀러 왔다가 낙암사에 기도하러 가던 길이었다. 강씨는 이씨를 위협해 인적이 없는 계곡까지 끌고 갔다. 이어서 이씨를 강간한 후 살해하고 주머니를 뒤져 현금 15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이씨의 시신은 약 한 달 후인 8월말에 발견된다. 부패가 심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수 없었다. 시신에서는 타살 정황도 보이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이씨가 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볼 만한 단서도 찾지 못했다. 목격자도 없는 데다 외지인인 탓에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이쯤 되자 강창구는 “바보들”이라며 경찰을 비웃었고, 자신이 마치 ‘범죄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1987년 1월29일 오후, 강씨는 이번에도 낙암사로 가는 산길에 숨어 불교 신자들을 노렸다. 오후 5시쯤, 절에서 내려오는 김아무개씨(여·47)를 발견하고는 뒤쫓아갔다. 강씨는 김씨를 위협해 강간한 후 목 졸라 살해했다. 주머니에서 1만4600원을 훔친 뒤 시신을 나뭇잎으로 덮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가족들은 김씨가 귀가하지 않자 “절에 간다고 나간 후 연락이 끊겼다”며 경찰에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경찰은 김씨가 평소 다니던 길과 사찰 주변, 인근 야산 등을 수색했으나 아무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한 달 후인 2월28일 오후 8시쯤, 강창구는 한 마을 입구를 배회하고 있었다. 이때 교회에 다녀오던 서아무개씨(여·57)를 목격한다. 서씨는 집으로 가기 위해 마을 진입로 옆 논둑길을 걷고 있었다.

강씨는 서씨를 흉기로 위협해 논바닥 가운데에 있는 짚더미로 끌고 가 강간한 뒤 목 졸라 살해했다. 가방 속에 있던 1만8000원도 털어 달아났다. 강씨의 여섯 번째 범행이며 다섯 번째 살인이다. 서씨의 시신은 사흘 후 논 가운데 짚더미 속에서 마을 주민에 의해 발견된다. 목에 찰과상이 있었고, 신고 있던 버선과 팬티가 벗겨진 상태였다. 이전의 사건과는 달리 성폭행과 타살 정황이 명확했다. 서씨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경찰도 바짝 긴장했다. 최근 잇따라 인근에서 발생한 여성들의 죽음에도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경찰은 인근에 거주하는 동종 전과자, 우범자, 정신질환자 등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였다.

강창구는 이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의 살인 충동은 이미 제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여섯 번째 범행이 있은 지 약 한 달 후인 1987년 4월1일 오후 2시, 마티고개에서 이아무개씨(여·48)를 또다시 강간한 후 목 졸라 살해했다. 인근 마티고개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이씨는 사건 당일 오전 휴게소 간이수도가 고장 나 저수조를 둘러보러 간다며 산 위로 올라간 뒤 변을 당했다. 강씨는 이씨의 주머니를 뒤져 4만8000원을 챙겼다.

다음 날 실종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경찰력을 동원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다. 그러다 이씨가 아닌 뜻밖의 여성 시신을 발견한다. 지난 1월말 실종됐던 김씨였다. 당시 추운 겨울날씨여서 시신은 부패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김씨의 시신 허벅지 부분에는 흉기에 의해 생긴 자상이 있었다. 하루 뒤에는 이씨의 시신도 추가로 발견했는데 목에 피멍이 있고, 얼굴에는 손톱으로 긁힌 상처가 있었다. 하의가 허벅지까지 벗겨진 채 낙엽으로 덮여 있었다.

실종됐던 김씨와 이씨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경찰은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피해자들이 모두 여성이었고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또 범행 장소가 인적이 드문 곳이었고, 시신이 야산이나 계곡 등지에서 발견된 것도 동일범일 확률이 높았다. 경찰은 범인이 금품보다는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해 범행에 나선 것으로 추정했다. 범행이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것을 볼 때 범인이 인근 거주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마을 주민과 승려에게 결정적 증언 확보

경찰은 대규모 수사본부를 꾸리고 수사에 들어갔다. 공주시 내 동일 수법 전과자 등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알리바이 등을 집중 추궁했다. 범행 인근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탐문조사도 실시했다. 그러다 마을 주민과 인근 사찰 승려로부터 결정적인 증언을 확보한다. 이들은 마티고개 정상을 배회하던 한 수상한 남자를 기억해 냈다. 이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검정 옷을 입은 남자가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마티고개 정상에서 자주 내렸다는 것이다.

나이는 30대이며, 키는 165cm 정도인 데다 눈은 사팔뜨기였다고 한다. 경찰은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공주군 반포면 일대에 대한 특별호구조사를 실시하면서 남자의 신원파악에 집중했다. 그리고 공주시 옥룡동에 사는 강창구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경찰은 형사대를 강씨의 형 집에 급파했다. 그는 잠을 자던 중 양손에 수갑을 찼다. 강씨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잡으러 올 줄 알고 있었다”며 경찰의 체포에 순순히 응했다. 변사로 처리된 범행까지 자백했다. 그는 1983년 7월부터 1987년 4월까지 6명을 살해하고, 1명은 강간미수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강씨는 경찰에서 “간질병이 있는 데다 사팔뜨기 눈을 갖고 있어 여자들이 나를 피했다. 이때마다 해코지를 하고 싶었고 욕정도 풀기 위해 여자가 생각나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살인·강도·강간·시체유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씨는 사형이 확정된 후 1990년 4월17일 흉악범 9명과 함께 처형됐다. 강창구는 자신의 눈과 콩팥 등 장기를 사후 기증했다. 

 

여성들을 증오하면서 살인괴물이 됐다

강창구는 어릴 적부터 정서적인 결핍이 심했다. 경기도 안성에서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두 살 때 공주로 이사 와 정착했다. 네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했다.

태어날 때부터 왼쪽 눈이 사팔뜨기인 데다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를 약간 절었다. 친구들은 이런 강씨를 놀림의 대상으로 삼았다. 초등학교 2학년을 중퇴하면서 정규 교육을 포기했다. 17세 때는 간질병이 발병했다. 성인이 된 후에는 둘째 형의 집에 얹혀살면서 시멘트 미장공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연쇄살인 이전에도 절도, 폭력, 공무집행방해, 강간 등으로 모두 2년6개월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강씨는 여성들과 교제한 적이 없다. 그의 신체적 결함이 장애가 됐다. 여성들이 자신을 외면하자 이때부터 막연한 증오감을 키웠다. 정서적인 결핍, 신체적인 결함, 주변 사람들의 멸시와 냉대 속에 그는 외톨이로 살았다.

결국 응어리진 욕구와 여성들에 대한 증오심이 강씨를 살인괴물로 만들었다. 이로 인해 아무 상관도 없는 여성들이 ‘연쇄강간살인’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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