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스타일과 선한 스토리가 양준일 신드롬의 원천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4 12:00
  • 호수 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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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로 하여금 ‘응원하고 싶은 마음’ 불러일으킨 양준일

양준일 신드롬이 뜨겁다. 미국 플로리다의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던 그에게 한국 팬들과 매체의 귀국 요청이 빗발쳤다. 한 한국 팬은 해당 레스토랑에 전화해 “지금 한국에서 난리가 났는데 거기에서 서빙을 하고 있는 게 말이 되냐”면서 따졌다고 한다. 결국 2019년 12월31일 서울에서 기자간담회와 팬미팅을 진행했다. 기자간담회엔 20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렸고 두 회에 걸친 팬미팅은 2000석이 모두 매진됐다. 현재 광고 모델과 뮤지컬 섭외도 밀려들고 있다고 한다.

신드롬의 출발은 ‘온라인 탑골공원’ 현상이었다. 2019년에 ‘뉴트로’라 불리는 복고 열풍이 뜨거웠는데, 그 흐름 속에서 과거 동영상을 찾아보는 트렌드가 생겨났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미디어로 인해 등장한 현상이다. 젊은 누리꾼들이 유튜브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이 콘텐츠들은 제작시기가 언제인지, 주체가 누구인지와 상관없이 유튜브 이용자에게 그저 수많은 콘텐츠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까 과거 콘텐츠라고 한물간 유물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최신 콘텐츠와 동등하게 경쟁하는 동영상 중 하나인 것이다.

ⓒ 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고성준

유튜브가 끌어낸 30년 전 가수

유튜브 이용자들은 그 동영상이 볼 만한가 아닌가만 따지지, 재방송인지 아닌지는 따지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방송사들이 과거 콘텐츠의 일부를 유튜브에 업로드하자 유튜버들은 이 동영상을 새로운 콘텐츠의 공급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과거 콘텐츠 영상들이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의 쇼 프로그램 무대 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그런 과거 쇼 프로그램 유튜브 채널을 누리꾼들은 옛날식 분위기가 살아 있는 탑골공원 주변에 빗대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그 온라인 탑골공원 현상에서 가장 뜨겁게 떠오른 교포 출신 스타가 바로 양준일이었다. 1991년에 데뷔한 그는 《리베카》 《가나다라마바사》 《Dance with me 아가씨》 등 노래를 발표했지만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2001년 그룹 V2로 다시 한국 시장에 도전했지만 역시 실패했고, 2019년엔 미국의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양준일을 작년 한국의 누리꾼들이 유튜브에서 발견한 것이다. 양준일의 패션과 노래, 무대 퍼포먼스는 요즘 시각에서 봐도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아주 트렌디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1991년 대한민국에 이런 가수가 있었느냐”며 놀랐고, 양준일의 스타일이 인기 최정상급 빅뱅의 지드래곤과 비슷하다며 ‘탑골 지디’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쯤 되자 매체사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양준일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이미 한국을 떠났고, 연예계도 떠나 미국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찾을 길이 요원했다. 그런 와중에 JTBC 《슈가맨》 제작팀이 양준일을 포착했는데, 두 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양준일에게는 한국을 방문할 여유가 없었다. 서빙해서 번 돈으로 매월 월세를 내며 생계를 이어가는 처지였다. 하지만 제작진이 끝내 설득했고 현지 식당 사장이 방송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워도 일자리를 보장한다고 약속해 마침내 2019년 12월6일 《슈가맨》 출연이 성사됐다.

보통은 이런 식으로 과거 스타가 오랜만에 TV에 나타나면 근황을 확인하고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정도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양준일 신드롬은 달랐다. 《슈가맨》을 통해 TV에서 그의 현재 모습을 본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의 ‘탑골 지디’ 현상하고는 차원이 다른 진짜 신드롬이 터졌다.

이젠 ‘탑골 지디’도 아니다. 양준일은 양준일일 뿐이다. ‘탑골’ 운운하던 수식어는 싹 사라졌다. 양준일과 관련된 이야기가 연일 포털 메인을 장식하면서 대중문화계 연말 최대 이슈가 됐다. 적어도 12월로 한정하면 거의 펭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의 화제성이었다. 그러자 광고 섭외가 잇따르면서 팬클럽이 활성화되고, 지하철 역사에 팬들이 양준일 응원 광고까지 내걸었다. 결국 양준일은 12월31일 기자간담회와 팬미팅을 진행했고, 아예 한국으로 이주하고 싶다고 공언했다. 2020년엔 양준일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튜브가 1991년에 데뷔했다 사라진 사람을 현시점으로 끌어낸 것이다.

가수 양준일은 JTBC 《슈가맨3》에 출연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 JTBC
가수 양준일은 JTBC 《슈가맨3》에 출연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 JTBC

양준일은 지금도 ‘새로운 뮤지션’

매체들은 양준일을 ‘30년 앞서간 시간여행자’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양준일은 30년 전엔 드물었지만 지금도 흔한 유형이 아니다. 30년 전에 없었고 지금도 없는 유형이다. 앞서간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종류의 뮤지션인 것이다. 그래서 신선하다. 2019년의 사람들이 열광한 건 바로 그 신선함 때문이었다.

양준일에게선 한국인에게 찾아보기 힘든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평키한 리듬에 자기만의 ‘스웩’을 뽐내는 듯한 그런 퍼포먼스를 그 아닌 다른 한국인에게선 보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범주다. 이미 50대가 됐다는 나이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50대는 ‘아저씨’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혁신적이고 새로운 무대를 선보이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거기에 미담까지 알려졌다. 과거 양준일이 한창 활동할 당시에 팬들에게 짜장면을 대접하거나, 직접 전화해 안부인사까지 했다는 겸허한 심성이 부각됐다. 요즘 연예인들의 스캔들이나 인성 논란에 환멸을 느끼던 사람들에게 양준일은 응원해 주고 싶은 ‘선한 사람’ 이미지로 다가갔다.

그리고 《슈가맨》을 통해 그의 안타까운 사연까지 알려졌다. 1991년 한국에서 활동할 당시 자유분방하고 영어를 많이 쓰는 교포인 그를 한국 사회가 냉대했다는 것이다. 영어 사용을 이유로 방송 정지를 당하기도 했고, 2001년 재차 활동을 시도했을 땐 양준일을 받아주는 회사가 없어 가명을 썼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러자 사람들은 양준일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지금이라도 그를 밀어줘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됐다. 양준일은 한국을 원망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날 받아줬다. 이에 내 과거가 더 이상 날 괴롭히지 않는 것 같다”며 오히려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것이 그의 겸허하고 선한 심성을 더욱 부각시켰고 팬들 사이에서 이제라도 양준일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활활 타오르게 했다.

불관용적인 사회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인정받는 서사는 영화로 나올 법한 감동적인 스토리다. 양준일의 이야기는 그 스토리가 현실에 구현된 사례이기 때문에 감동이 특히 더 크다. 이 감동이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까지 안겨준다. 그래서 양준일 신드롬이 뜨거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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