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영입경쟁 “누구 총선 뛸 참신한 ‘소영이’ 못 봤나요?”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7 14:00
  • 호수 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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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野 ‘소수자 대변, 영(young·참신한), 2030 세대’ 영입 전쟁

21대 총선을 넉 달여 앞둔 정치권의 인재 영입 전략은 ‘소영이’로 압축된다. 기성 정치에 실망한 ‘무당파’(지지 정당이 없는 유권자층)가 크게 늘어나면서 소수자와 2030세대를 대변할 '영(young·참신한)한' 새 얼굴이 선거 판도를 뒤흔들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에 여야 모두 관련 인재를 얻기 위해 치열한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

초반 승기는 더불어민주당이 잡은 모양새다. 박찬주 전 육군대장 영입으로 잡음이 일었던 자유한국당과 달리 민주당은 장애인·여성·청년을 대변하는 인물들을 인재 영입 1, 2호로 발표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새해를 맞아 인재영입위원회를 새롭게 꾸린 한국당은 ‘박찬주 트라우마’를 지워낼 인재 영입에 성공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왼쪽부터)최혜영, 원종건, 이자스민 ⓒ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왼쪽부터)최혜영, 원종건, 이자스민 ⓒ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여성·장애인·청년층 겨냥한 민주당 영입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가 인재 영입 전략을 직접 챙기고 있다. 이 대표는 당의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은 후 측근들에게 “시대정신에 부합해야 한다”고 연일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이 대표가 강조한 ‘시대정신’은 민주당이 지난 연말 발표한 인사를 통해 드러났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26일 1호로 최혜영 강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40)를, 12월29일에는 대기업 홍보팀 소속의 원종건씨(27)를 공개했다. 이들은 정치판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다. 민주당은 이들의 인생 히스토리에 주목했다.

발레리나 출신인 최 교수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뒤 2009년 한국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를 세웠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강의를 다녔고,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인식 개선 홍보모델로도 활동했다. 2017년엔 국내 척수 장애인으로는 최초로 재활학 박사 학위를 땄다.

최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가진 게 없는 평범한 여성이지만, 저 같은 보통 사람에게 정치를 한번 바꿔보라고 등을 떠밀어준 민주당을 믿고 이 자리에 왔다”고 했다. 이어 “발레리나 시절엔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싶었다”며 “이제는 장애인 260만 명의 눈물겹고 간절한 소망을 안고 그들과 훨훨 날아오르는 꿈을 꾼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성 장애인들의 임신, 출산, 육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2호 영입 인재인 원씨는 민주당의 취약 지지층으로 꼽히는 ‘이남자’(20대 남자)를 공략하기 위한 인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05년 MBC 방송 프로그램 《느낌표》의 ‘눈을 떠요’ 코너에 시각장애인 어머니와 함께 출연했다. 당시 방송에는 심장질환을 안고 태어난 여동생이 스웨덴으로 입양되고 아버지는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뒤 시·청각 장애인인 어머니와 기초생활수급비로 살아가던 원씨의 애절한 사연이 소개됐다.

원씨는 기자회견에서 “저는 특별히 가진 것도 없고 별로 내세울 것 없는, 대한민국의 여느 국민 중 한 사람”이라며 “저와 어머니, 그리고 우리가 아는 많은 분들은 아직도 굶지 않고, 쫓겨나지 않고 사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 어머니께 그런 분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원씨는 20대 정치 신인에 대한 우려에 대해 “젊으니까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하다가 안 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넘어지면 아프겠지만 일어서 또 도전하면 된다”고 소회를 밝혔다.

민주당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1호 인재’를 결정하기 위해 오랜 기간 논의를 거친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인생 스토리’가 좋은 원씨가 유력한 1호 인재 후보였다. 그러나 내부 논의 끝에 우리 사회 소수자인 여성계와 장애계의 목소리를 동시에 대변할 수 있는 최 교수를 택했다는 후문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처음엔 국내 정치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20대 젊은 남성’을 내세우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도, 실무 경력도 풍부한 최 교수가 좀 더 (1호에) 어울린다는 데 중론이 모였다”고 귀띔했다.

젊은 인재 영입이 총선을 준비하는 당 내부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다만 너무 어린 인사들만 연이어 발표하다가는, 4050 세대 등 중년 유권자들의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발표 순서를 유동적으로 바꾸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례로 1월2일 발표한 ‘3호 인재’는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출신 김병주 예비역 육군대장(58)이었는데, 이는 당초 ‘3호까지 청년 인재를 발표할 것’이란 정가의 전망을 뒤집은 것이다. 앞선 두 사람이 ‘감동 스토리’에 초점을 맞춘 영입 인재라면 김 전 대장의 경우 첫 전문가 영입에 해당한다. 김 전 대장은 문재인 정부의 첫 대장 승진자이자 미사일사령부 사령관 출신 첫 4성 장군이다. 민주당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김 전 대장 영입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1호 영입’으로 이름을 올렸다 ‘공관병 갑질’ 등을 이유로 보류된 박찬주 전 육군대장 ⓒ 시사저널 박은숙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1호 영입’으로 이름을 올렸다 ‘공관병 갑질’ 등을 이유로 보류된 박찬주 전 육군대장 ⓒ 시사저널 박은숙

‘박찬주 트라우마’ 반전 고심하는 한국당

민주당은 설 연휴 전까지 앞으로 1주일에 2~3번에 걸쳐 새로운 인재 영입 소식을 발표할 예정이다. 민주당이 잇따른 인재 영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면서 한국당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른바 ‘패스트트랙 정국’에 관심이 쏠린 사이, 당이 총선 전략마저 제대로 짜지 못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내부에 팽배하다. 지난해 황교안 대표가 영입을 공들인 박찬주 전 육군대장은 ‘공관병 갑질’ 논란 등에 휩싸이면서 역풍을 맞았다. 당시 이탈한 2030 세대 유권자들의 표심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젊고 유능한 인재 영입이 절실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평론가 김홍국 경기대 겸임교수는 “(한국당이) 박 전 대장에게 기대한 것은 강직하고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군 출신 인사의 이미지였을 텐데 도리어 삼청교육대 논란 등으로 중도층과 젊은 층의 이탈만 낳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보수 결집만으로는 힘들다. 예상을 벗어나는 참신한 인사를 영입해야지, (박 전 대장과 같은) 인사를 고집하다가는 무엇보다 당내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래 세대’의 실망을 낳은 게, 한국당에 장기적으로 독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박 전 대장 영입 발표 후) 50대 이상 지지층 결집의 계기를 만들어줬지만, 젊은 세대의 표를 잃었다”며 “박 전 장군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된 젊은 세대가 향후 20년 이상 정치권의 핵심 투표층이 될 수 있는데, 이들이 과연 한국당을 지지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한국당 지도부는 부랴부랴 인사 전략을 발표하며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염동열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재영입위원회를 새롭게 띄웠다. 타깃은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여성·청년 중심의 ‘차별화된 인재’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해 12월3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민주당 인재 영입을 보며 우리 당의 영입이 멈춘 것을 걱정하는 말이 들린다. 그러나 인재 영입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한국당”이라며 “우리의 목표 시점은 2019년이 아니라 2020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 대표는 “보여주기 쇼가 아니라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새롭고 젊은 인재 영입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민주당의 인재 영입 전략을 ‘쇼잉(showing)’으로 간주한 셈이다.

다만 이미 민주당이 ‘청년 카드’로 여론의 관심을 모은 상황이라 한국당이 향후 젊은 인재 영입을 발표하더라도 여당과 차별화를 가져가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법안 저지에 실패하면서, 한국당이 총선 전략을 짜는 데 ‘올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당내에선 민주당에 정국 주도권을 넘겨준 지도부에 대한 비판 여론도 일고 있다. 한 한국당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민주당이 쇼를 벌인다고 비판하는데, 총선을 앞둔 당직자 입장에선 쇼를 못 하는 게 더 무능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정의당은 성 소수자인 김조광수 감독, 이자스민 전 새누리당 의원, 이병록 예비역 해군 준장 등을 영입했다. 심상정 대표는 차별받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이들을 발탁하는게 첫 번째 원칙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드시 잡아야 하는 ‘2030 산토끼’ 

21대 총선을 앞둔 지금, 정치권은 왜 어린 유권자를 공략하려 할까. 우선 양당 모두 2030 세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2030 세대의 실망감을 불렀다. ‘태극기부대’를 지지 기반으로 한 한국당은 2030 젊은 층 지지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 내년 총선부터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낮아진 것도 변수다. 만 18세 유권자는 약 53만 명으로 예상된다. 절대적인 수는 미미하다. 다만 1000표 이내 접전이 벌어지는 수도권 지역에선 18세 표심이 승부를 가를 수 있다. 또한 인생의 ‘첫 투표’라는 상징적인 의미 덕에 투표율이 타 연령에 비해 높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양당 모두에 2030 세대는 지켜야 하는 ‘집토끼’보다는 잡아야 하는 ‘산토끼’에 가까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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