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보다 더 어려운 ‘미니 대선’…잠룡들의 총선 행보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8 10:00
  • 호수 157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총선 격전의 현장을 가다 - 잠룡들의 행보]
깊어가는 황교안의 고민…문재인의 길이냐, 손학규의 길이냐

“기싸움에서 이미 밀리는 형국이다. 특별한 상황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황교안 대표가 종로에 출마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야권의 한 중진 의원은 이낙연 총리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종로 맞대결 성사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이 총리는 종로 출마 여부를 묻는 취재진에 “그런 흐름에 놓여 있다”며 출마 의사를 명확히 한 반면, 황 대표는 1월3일 “험지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종로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애매한 입장을 내놓고 있다. 여야 유력 대권주자 맞대결에 이 총리는 자신감을 내비친 반면, 황 대표는 주저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역대 총선마다 대선 잠룡들의 출마 여부는 상당한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순탄한 대권가도를 위해 원내 진입을 원하는 잠룡들의 바람과는 달리 당에서는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으로 전국 유세 지원을 위해 불출마하거나 험지에 도전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했다. 1980~90년대 제왕적 총재 시절에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과 이회창 전 총재는 자신의 대권을 위해 전국구(비례) 당선을 당연시했으나, 이제는 그런 명분이 사라졌다.

더불어민주당으로선 이 총리가 총선 간판으로 가장 적합한 카드임에 틀림없다. 일각에서는 정세균 총리 후보자의 청문회 및 총리 인준 일정이 자칫 늦어질 경우 이 총리의 총선 출마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이미 여권에서는 국무총리 공백 상황을 감수하더라도 공직자 지역구 출마 사퇴 시한인 1월16일 전에 이 총리가 사퇴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 출마를 막으려는 한국당의 지연술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변수는 있다. 정 후보자의 청문회 과정에서 자칫 중대한 결격 사유가 나와 야당이 반대하고 나선다면, 이를 무작정 한국당의 발목 잡기로만 몰아갈 순 없는 것이다. 이 총리 또한 자신의 대권욕을 위해 국정을 내팽개친다는 인식을 줄 수 있어 사퇴가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누구보다 명분을 중시하는 이 총리의 스타일 때문이다. 의원직 총사퇴 카드까지 내세웠던 한국당이 정세균 청문회에 참가키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낙연 국무총리(왼쪽)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2019년 10월3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54회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해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왼쪽)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2019년 10월3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54회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해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손학규와 문재인의 과거 총선 행보가 주는 시사점

황 대표는 “험지 출마” 선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총선 불출마까지 포함해서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출마한다면 지역구에 나서야 하고, 그렇다면 종로를 피해 갈 명분이 없다. 하지만 이 총리와의 맞대결이 ‘미니 대선’으로 각인되는 상황이 사뭇 부담스럽다. 아직은 모든 면에서 불리한 여건인 황 대표가 섣불리 나섰다가 낙선할 경우 입게 될 내상이 만만치 않다. 황 대표가 총선 불출마를 택한다면 역시 그에 따른 명분이 필요하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현재 정당 지지율에서 민주당에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당 및 보수진영 승리의 밀알이 되기 위해 자신의 출마를 접고 보수 대통합에 나선다고 한다면, 그래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다면 대권주자로서 좋은 명분을 얻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총선 때 유력 대권주자였던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문재인 대통령의 총선 행보는 그런 면에서 지금의 잠룡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손 대표는 19대(2012년)와 20대(2016년) 총선 당시 제1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였지만 결과적으로 두 총선 모두 불출마를 선택했다. 19대 때의 불출마 명분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한두 달 만에 바로 사퇴하는 것은 정치 도의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당시 손 대표의 지역구는 민주당으로선 험지인 경기 성남 분당을이었다.

반면 당시 당내에서 유력 경쟁자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험지 중 험지인 부산 사상에 출마해 당선됐다. 손 대표의 명분이 약했던 것은 국회의원의 경우 대선후보로 나서더라도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2012년 12월 대선에 나가면서 의원직을 유지한 채 출마했다. 아무튼 2012년 4월 총선 이후 두 사람의 대선 행보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대세론을 형성하며 독주한 문 대통령에게 손 대표는 결국 경선에서 56.5% 대 22.2%의 압도적인 표차로 패했다.

 

오세훈 당선 여부, 한국당 대권 판도 좌우할 수도

손 대표의 악수는 2016년 총선 때도 이어졌다. 당시 야당은 심각한 위기였고, 전남 강진에 칩거 중인 손 대표의 몸값은 올라갔다. 하지만 총선 출마를 권유하는 러브콜에도 손 대표는 응하지 않았다. 야권은 문재인(민주당)과 안철수(국민의당)로 분열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여당(새누리당)이 압승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손 대표는 내심 총선 이후를 노린 셈이다. 하지만 총선 결과가 뜻밖에도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승리로 끝나면서 지나치게 계산기를 두드렸던 손 대표의 전략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문 대통령도 19대 대선(2017년)을 앞두고 치른 20대 총선 때 불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당시 문 대통령의 불출마 선언 명분은 그럴듯했다.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그 조건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새누리당 등 정치권 일각에서는 “부산에서의 재선 가능성이 어려워지자 사실상 당권 도전을 명분으로 도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당 대표로서 공정한 공천을 도모하고, 오로지 총선 승리만을 위해 자신의 출마를 포기하는 것이며, 만약 총선 패배 시 그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이란 명분에 묻혔다.

현재 잠룡으로 거론되는 주자군 중 총선 행보가 아직 불투명한 이로는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있다. 홍 전 대표는 자신의 고향인 경남 창녕(밀양·창녕·의령·함안)과 중·고교 시절을 보낸 대구 중 한 곳을 택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당에서는 험지 출마를 하지 않으면 공천 배제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홍 전 대표는 그래도 출마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새해 벽두에 전격적인 정계 복귀를 선언한 안 전 대표는 주변에서 총선 출마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하지만 20대 총선 때 서울 노원병에 출마하며 국민의당 돌풍을 이끌었듯 이번에도 서울 종로 등 상징적인 지역에 직접 출마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밖에도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대구 동을)와 김부겸 민주당 의원(대구 수성갑)은 자신의 지역구 수성에 나서는데, 대구가 모두 험지 중의 험지여서 생사 여부가 대선 판도에도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다. 그가 도전하는 서울 광진을 역시 만만찮은 지역이어서 만약 당선된다면 황 대표를 위협할 만한 한국당의 유력 대선주자로 부각될 전망이다. 황 대표가 불출마와 출마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올해 4월 총선 이후 차기 대선이 2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원외에 있는 건 결코 유리하지 않다. 결국 황 대표가 출마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종로 지역이 될 것으로 본다. 이 총리와의 맞대결이 결코 황 대표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