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오디션의 위력 보여준 《미스터트롯》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1 12:00
  • 호수 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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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롯》 후광 효과로 첫 방송 시청률 12.7%…새로운 예능 트렌드 자리 잡나

TV조선 《미스터트롯》의 첫 방송이 거둔 시청률 12.7%(닐슨 코리아)는 이 프로그램의 시작점이 《미스트롯》의 연장선이었다는 걸 확인하게 해 준다. 총 10회로 마무리됐던 《미스트롯》이 8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도달했던 시청률(당시 8회 12.8%였다)을 간단히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송가인 열풍이 본격화되면서 당시 《미스트롯》은 14.4%, 18.1%를 기록하며 종영했다. 《미스터트롯》은 그 후광 효과를 제대로 입었다. 《미스트롯》을 통해 트로트 오디션의 남다른 묘미를 경험한 시청자들은 첫 방송부터 잔뜩 기대감을 가진 채 TV 앞에 앉게 됐다.

물론 《미스터트롯》은 시작 전 기대만큼 우려도 컸다. 《미스트롯》이 초창기 미스코리아 콘셉트를 차용하면서 만들어낸 논란들 때문에 프로그램이 가진 위력의 상당 부분이 가려진 면이 있었고, 오히려 송가인 열풍이 《미스트롯》 성공의 이유처럼 느껴지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중요한 점은 송가인 열풍이든 《미스트롯》의 성공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미스터트롯》에 막강한 후광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그 후광 효과는 단지 시청자를 TV 앞에 끌어모은 것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미스트롯》의 송가인 열풍을 보면서 고무된 실력 있고 끼도 넘치는 트로트 유망주들을 《미스터트롯》에 몰려들게 한 후광 효과가 더욱 크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관건은 얼마나 많은 실력자들이 출연하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첫 방송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쏟아져 나온 실력자들은 《미스터트롯》의 대박 성공을 담보하는 든든한 자원일 수밖에 없다.

트로트계의 BTS로 불리는 장민호 ⓒ TV조선
트로트계의 BTS로 불리는 장민호 ⓒ TV조선

출연자들 매력만으로 충분해진 무대들

《항구의 남자》를 때론 박력 있게, 때론 앙증맞게 소화해 낸 9세 최연소 참가자 홍잠언과 이미 트로트 영재로 이름난 정동원은 《보릿고개》로 원곡자 진성을 울려버리기도 했다. 트로트계의 BTS로 불리는 장민호나 동료들의 가장 많은 견제를 받은 실력파 가수 임영웅 같은 프로 가수들, 여기에 태권무를 하며 트로트를 소화해 낸 나태주나 아수라백작 분장으로 남녀 목소리를 오가며 노래를 부른 한이재, 마술공연과 트로트를 접목한 김민형 같은 끼가 넘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가수들까지 더해져 《미스터트롯》의 출연자들은 다양한 저마다의 개성을 뽐냈다.

이렇게 《미스터트롯》이 훨씬 강력해진 출연자 구성을 가질 수 있게 된 건 지금껏 트로트 오디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2014년 Mnet에서 《트로트엑스》 같은 트로트 오디션을 시도한 바 있지만 이 프로그램은 1% 시청률도 넘기지 못한 채 쓸쓸히 종영했다. 그건 Mnet이라는 방송 플랫폼의 성향과 트로트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은 면이 컸다. 하지만 TV조선이라는 플랫폼과 트로트는 이보다 최적일 수 없는 최상의 조합이다. 중장년층이 주 시청층인 TV조선이 《미스트롯》에 이어 《미스터트롯》으로 대박을 내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다.

그런데 그간 성공적인 트로트 오디션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은 다른 말로 하면 그간 이 분야에 적체된 실력자들이 상당히 많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미스터트롯》은 이들에게는 모두가 나가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픈 무대가 된다. 1만5000명의 지원자가 몰린 건 그래서다. 여기서 101명을 골라냈으니 이미 이들은 어느 정도 검증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태권도나 마술을 하며 노래하는 출연자들도 결코 트로트 실력이 부족하지 않았다.

이렇게 출연자들 자체가 저마다 시청자들을 잡아끄는 매력과 끼와 실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제 제작진이 굳이 무리한 연출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미스트롯》이 미스코리아 의상을 입혀 출연시키는 노골적인 무리수로 시선을 끌려 했던 그런 부분을 《미스터트롯》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출연자들이 스스로 가져온 다양한 쇼적인 무대들(마술 트로트, 태권 트로트 같은)은 최근 오디션 형식에 대해 대중들이 느끼기도 하는 불편함을 상쇄시켜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단지 경쟁하는 것만이 아니라 무대 자체를 즐기게 해 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스터트롯》에 보이는 남다른 관심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트로트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이미 《미스트롯》 송가인 열풍을 통해 생겨난 현상이다. 정통 트로트를 소화하는 송가인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장르를 트로트를 기반으로 소화해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바 있다. 트로트는 그간 중장년층의 전유물처럼 치부된 바 있지만 그 저변이 젊은 세대로까지 넓어지면서 전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위쪽부터 트로트 영재로 이름난 정동원과 9세 최연소 참가자 홍잠언 ⓒ TV조선
위쪽부터 트로트 영재로 이름난 정동원과 9세 최연소 참가자 홍잠언 ⓒ TV조선

젊어진 트로트…달라진 문화소비 트렌드

기성세대들은 트로트 열풍을 통해 그간 소외돼 있던 문화 소비의 중심으로 들어오는 카타르시스를 맛봤고, 젊은 세대들은 B급 정서와 A급 콘텐츠를 넘나드는 트로트라는 장르의 새로움에 빠져들었다. 디지털 시대에는 느끼지 못했던 아날로그적 감성을 희구하며 생겨난 뉴트로 열풍은 젊은 세대들이 트로트에도 관심을 갖게 만든 요인이 됐다. MBC 《놀면 뭐하니?》가 시도한 뽕포유 프로젝트를 통해 유산슬 신드롬이 생겨난 것도 이런 젊은 세대들의 달라진 트로트 소비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미스터트롯》은 이런 트렌드에도 최적화된 프로그램의 면면을 보여줬다. 즉 이 프로그램은 트로트 오디션이기 때문에 트로트를 하는 젊은 세대들의 경연장이 될 수밖에 없다.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이 대부분 젊고(심지어 아이들까지 있다), 그들이 다름 아닌 기성세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온 트로트로 경연을 벌인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세대 통합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젊은 세대들이 해석하는 트로트의 재기발랄한 재미와 트로트 자체가 가진 인생의 깊이를 담은 노래의 묘미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다.

《미스트롯》의 성공에 이어 이미 예정된 《미스터트롯》의 대박. 이것은 어쩌면 향후 종편 채널들에 이른바 ‘종편 오디션’이라는 새로운 예능 트렌드를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MBN 《보이스퀸》이 7.9% 시청률을 내며 히트를 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런 예상을 조심스럽게 하게 만든다. Ment의 조작으로 고개를 숙인 오디션 형식이 이제 종편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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