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주인 노릇 하는 게 한국 교회 가장 큰 문제”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4 14:00
  • 호수 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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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헌재 중앙대 명예교수(한국교회법학회 회장) “공공성 회복 위해 교회법 가이드라인 만들어”

한국 교회가 시끄럽다. 교계 지도자들의 재산 유용과 신도 성폭행, 담임목사직 세습, 폭력시위 주도 의혹 등 추문과 잡음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담임목사나 신도들 간 고소·고발이나 소송도 끊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한국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 교회에서 하나님이 떠났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한국 교회법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서헌재 중앙대 명예교수(한국교회법학회 회장)는 “일부 목사들이 주인 노릇을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목사는 청지기다. 양떼를 맡은 청지기처럼 세상에 봉사하라고 성경에 언급돼 있다”며 “하지만 일부 목사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명성교회가 담임목사직 세습으로 시끄러웠고,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목사가 폭력시위 등의 혐의로 구속 위기에 처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서 명예교수는 “교회의 공공성 회복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신정권 당시 가톨릭은 인권 신장에 많은 기여를 한 것과 달리 교회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며 “교계에 영향력이 있는 분이 이런 시위를 주도한 것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다음은 서 명예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최근 명성교회가 담임목사직 세습 문제로 시끄러웠다.

“1517년 10월31일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년이 넘었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질서가 있다. 교회는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다. 목사 역시 양떼를 이끄는 청지기 사역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지도자들이 주인 노릇을 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가톨릭을 비판하면서도 교회 담임목사들은 교황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심지어 권력을 세습하려 했다. 분쟁의 발단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명성교회 측은 “영적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은 교인들의 고유한 권리로 외부에서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예장통합 교단은 현재 세습을 금지하고 있다. 교단과 교회의 논리가 충돌할 경우 어느 쪽이 우선시돼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세습도 세습이지만 목사의 역량도 문제다. 현행 교회법에 따르면 담임목사에 대한 해임을 교단에 건의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교단이 거부하면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목사를 청빙할 때 임기를 정하는데, 교단 헌법이 이 역시 금지하고 있다. 일반 용역까지 동원해 담임목사 측과 반대파가 팽팽하게 대치했던 서울교회 사태도 이 때문에 발생했다.”

교회법학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교회법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시하는 게 교회법학회의 역할이다. 일부 담임목사들은 그동안 ‘내가 곧 교회’라는 그릇된 권위의식에 젖어 교회를 운영해 왔다. 교인들에게 무조건적인 순종만을 강요했다. 그 결과 교회 내의 정당한 비판과 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무너졌고, 소송이나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걸 빌미로 교회를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한국 교회가 빛을 잃고 조롱거리로 전락했고, 이게 상승작용을 일으켜 교회는 더욱 국민과 멀어지게 됐다. 교회의 공공성 회복이 시급한 상황이다.

공공성 회복은 ‘사람’이 아니라 ‘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교회법의 확립과 교회법에 따른 엄격한 교회 운영만이 추락한 한국 교회의 위상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교회법에 정통한 학자와 법조인, 목회자가 모여 교회법학회를 설립했다. 회원들은 소속 교단이나 교파를 초월해 활동하고 있다. 교회법과 관련한 이론적 연구나 학술 세미나를 그동안 여러 차례 개최했다. 교회법과 관련한 가이드라인도 만들었다. 최근 배포한 한국교회 표준정관 매뉴얼과 종교인 소득 과세 공동 매뉴얼이 대표적이다. 이런 노력들이 교회 분쟁을 예방하고, 추락한 교회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

최근 종교인 과세 제도와 관련해서도 법학회가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종교인 과세에 대해 그동안 내부적으로 말이 많았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 대해 국가가 왜 세금을 걷느냐는 것이었다. 교인도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세금을 안 낼 수는 없다. 다만 정교 분리 원칙에 따라 만들어진 종교의 고유 영역을 국가가 건드리는 것에 대해 우려가 많았다. 일례로 국세청은 목사의 사례비를 과세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판공비, 교회에서 말하는 목회 활동비에 대해서는 과세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법학회를 중심으로 TF(태스크포스)가 결성됐다. 국세청과도 여러 차례 만나 협의를 했다. 결국 증빙을 내고, 교회에서 공적으로 활동비를 관리하는 조건으로 면세를 이끌어냈다. 세무조사도 마찬가지다. 이 부분도 내부 제보가 들어오면 1차로 시정 기회를 주도록 시행령에 못 박았다.”

교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전광훈 한기총 대표회장 목사가 최근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한국은 1948년 해방 후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골자로 한 헌법이 제정됐다. 이때부터 정교 분리와 종교 자유도 보장받았다. 유신정권 당시 가톨릭은 인권 신장에 많은 기여를 했다. 반대로 교회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게 전통처럼 굳어졌다. 최근 교계 인사를 주축으로 구국기도회 등을 통해 현 정부의 난맥상을 지적하는 일이 많아졌다. 정치는 국민이 뽑아준 정치인이 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 보니 교회에서 나서는 것 같다. 박근혜 정권 때 터진 국정농단 사태가 단초가 됐다. 독일의 경우 기독민주당이 집권당이니만큼 특별할 것은 없다. 나라가 워낙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보니, 시민 한 사람의 입장에서 의견 표출은 할 수 있다. 다만, 교계에 영향력 있는 분이 관련 기도회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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