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벤츠는 안녕하십니까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7 13:00
  • 호수 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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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차 수리 이력 있어도 고객은 ‘깜깜이’…지난해에만 10% 성장시킨 국내 소비자만 봉?

벤츠는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역대 최다인 7만8133대를 팔아치웠다. 전년 대비 10.4% 성장하면서 4년 연속 수입차 판매 1위에 올랐다. 2위 BMW(4만4191대)와 3만3000대 이상 차이가 나고, 3위 렉서스(1만2241대)보다 6배 많은 실적이다. 전반적인 수입차 시장 불황은 벤츠엔 남 얘기였다. 지난해 수입차 구매 고객 10명 중 3명은 벤츠를 택했다. 벤츠의 기술력, 디자인, 브랜드 가치 등에 흠뻑 매료된 한국 소비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마크 레인 벤츠코리아 제품·마케팅 총괄 부사장은 1월14일 기자간담회에서 “벤츠의 글로벌 승용 부문에서 한국은 5대 시장으로 올라섰다”고 선언했다. 

서울 강남구 더클래스효성 메르세데스벤츠 강남대로 전시장 ⓒ 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강남구 더클래스효성 메르세데스벤츠 강남대로 전시장 ⓒ 시사저널 박정훈

벤츠 신차 샀는데 곳곳에 수리 흔적

그렇다면 벤츠는 한국에서 ‘5대 시장’에 걸맞은 품질 관리, 고객 서비스 등을 시행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는, 더 나아가 벤츠 브랜드의 전반적인 신뢰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사건들이 최근 속속 벌어지고 있다. 

김아무개씨(49)는 2019년 12월3일 벤츠 공식 딜러사인 더클래스효성을 통해 새 SUV 차량(GLE300d)을 리스로 계약했다. 12월19일 오후 8시 차량을 인수받고, 다음 날 오전 차량 구석구석을 살펴보던 김씨는 깜짝 놀랐다. 새로 칠한 듯한 페인트 자국을 발견한 것이다. 김씨는 “보닛, 펜더, 운전석 문 등 겉만 봐도 도색한 흔적이 있길래 엔진룸을 열었더니 배선과 아래쪽 덮개 곳곳에 흰 페인트로 보이는 물질이 뿌려져 있었다”고 말했다. 타이어 4개 중 하나도 새로 장착한 것으로 추정됐다. 

김씨는 즉시 판매사원에게 관련 사진을 전송하며 ‘사고 차량으로 보인다’고 알렸다. 이후 12월24일 벤츠 A/S센터에서 문제가 있는 차량으로 확인했다. 더클래스효성 본사 관계자도 12월27일 찾아와 재차 확인하고, 수리한 차량이라고 인정했다. 

김씨는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벤츠를 타보는 게 소망일 것이다. 나도 그래서 벤츠를 샀는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며 “내가 차를 좀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과거 12년간 중고차 딜러를 했던 경력이 있는 차량 전문가였다. 

박병일 자동차 명장은 “벤츠의 주요 구매자인 고소득자 대부분은 차에 대해 잘 모르고 디자인이나 브랜드 가치만 보는 이가 많다. 국산차처럼 차량 구매자들끼리 동호회 활동을 통해 정보가 활발히 공유되는 분위기도 아니다”면서 “그렇다 보니 하자로 인한 피해가 발생해도 소비자 고발 등이 이뤄지지 않고 묻히는 게 다반사”라고 전했다. 

2018년 5월엔 벤츠 신차 구매자 1400명이 수리 또는 보정 이력을 뒤늦게 알게 되기도 했다. 이마저도 딜러사인 더클래스효성이 고객에게 통보한 것이었다. 당시 가해 측인 더클래스효성은 ‘준법 경영’을 운운하며 피해자들에게 100만원어치 서비스센터 상품권을 지급했다. 

비슷한 시기 현직 벤츠 딜러사 직원이 한 매체에 신차 판매 시 하자 보수 내역이 고객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내용을 폭로해 화제를 모았다. 독일에서 만들어지는 벤츠 신차는 배를 타고 국내로 들어온다. 배에 싣고 내리는 등 이동 과정에서 차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바닷물의 소금기가 차를 상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국내에 들어오면 점검센터를 거친다. 여기서 차를 점검한 뒤 이상이 있으면 손을 본다. 간단한 흠집 제거부터 도장·판금·부품 교체 작업까지 다양한 수리가 이뤄진다. 

소비자 입장에서 수리된 차와 공장에서 나온 새 차가 같을 수 없다. 그러나 벤츠 수입사와 딜러사 측은 수입차 유통 특성상 국내 도착 후 필요시 수리를 해야만 하며,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점검센터에서의 수리 작업까지는 독일 현지 공정의 연장선이란 것이다. 이를 인정한다 쳐도 수리 이력이 소비자들에게 확실히 고지되지 않는 점은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에는 차량이 공장에서 출고된 후 발생한 수리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리도록 하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아직 고지 대상과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하위 법령이나 기준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법 위반 시 처벌도 ‘과태료 최대 100만원’으로 솜방망이인 현실이다. 

자신을 더클래스효성 딜러라고 밝힌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서 “더클래스효성에서 하자 보수 건(수리 이력)을 (고객에게) 오픈하지 않았다”며 “판매 후 고객에게 적발되면 상품권, 주유권 등으로 입막음을 하고 있다. 우리 판매원들조차 하자 보수가 있는 차량인지 알지 못하고 팔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더군다나 이번에 김씨가 산 벤츠 차량은 간단한 하자 보수로 보이지 않는 정황이 많았음에도 수리 이력조차 없었다. 벤츠의 한국 내 신차 출고 시스템 전반에 구멍이 뚫려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피해자 김아무개씨(49)가 벤츠 공식 딜러사를 통해 구매한 ‘새 차’ 곳곳에 재도색 흔적이 역력하다. ⓒ 피해자 제공
피해자 김아무개씨(49)가 벤츠 공식 딜러사를 통해 구매한 ‘새 차’ 곳곳에 재도색 흔적이 역력하다. ⓒ 피해자 제공

신뢰에 구멍…“출고 프로세스 점검”

수입사인 벤츠코리아 측은 “고객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딜러사와 긴밀하게 협력해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현재 보상 등의 문제에 관해 고객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자타 공인 ‘최고’로 불리는 벤츠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단지 딜러사나 판매사원의 문제인지 등에 대한 시사저널의 질문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벤츠코리아 관계자는 “현재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는 단계다. 자세한 사항은 확인하고 있는 단계라 밝히기 어렵다”고 짧게 답했다. 재발 방지책과 관련해선 “이번 케이스를 계기로 신차 출고 프로세스 등을 다시 꼼꼼하게 점검할 예정”이라고 했다. 

반면 김씨는 “나와 협의 중이라는데, 20여 일째 아무 얘기도 들은 게 없다”며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법적 자문을 받은 상태고 소송을 진행할 생각까지 있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의 문의에 국토교통부도 “관련 내용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과태료 부과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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