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김정은의 눈과 귀를 잡고 있는가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1.21 10:00
  • 호수 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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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 공동기획…북한 핵심 실세 30인 명단 공개
최고의 파워 엘리트는 '최룡해'…백두혈통 김여정, 경제 총책 박봉주가 '빅3'

2008년 10월 시사저널은 국내 언론 사상 처음으로 세종연구소(남북한관계연구실)와 공동 기획으로 ‘북한을 움직이는 파워 엘리트’를 선정·분석했다. 당시는 최고권력자인 김정일이 와병설에 휩싸이면서 은둔의 후계자 김정은이 비밀리에 후계자로 떠오르던 때였다. 12년 만에 다시 내부 움직임 등을 종합 분석해 북한을 움직이는 30인의 명단을 단독 공개한다. 시사저널은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와 공동으로 기획을 진행했다.

12년 전 20대의 앳된 나이로 후계수업을 받던 김정은은 지금 국무위원장으로서 확고한 북한 최고권력자로 군림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 북한 간부들 중 ‘파워 엘리트’라고 부를 만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은 약 100~120명 내외의 당중앙위 위원과 그 밑의 100명 내외 당중앙위 후보위원이다. 이들은 노동당과 국가·군·경제·사회 분야 등에서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서도 당중앙위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으로 있는 30여 명이 핵심 파워 엘리트다.

북한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가 3일째 열리고 있다고 조선중앙TV가 2019년 12월31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북한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가 3일째 열리고 있다고 조선중앙TV가 2019년 12월31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부동의 서열 1위 김정은에 이어 서열 2, 3위인 최룡해와 박봉주가 최선두에 서 있다. 경제와 당을 책임진 김재룡과 리만건의 힘도 만만치 않다. 당중앙위 부장으로 있는 리일환, 최휘, 리병철, 오수용의 위상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김덕훈과 박태덕은 당중앙위 부위원장이지만 전문부서 부장까지 겸직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군부의 경우, 김수길 총정치국장이 당중앙위 정치국 위원이며 박정천 총참모장은 후보위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해임 위기에 몰렸던 김영철도 아직은 건재하다. 경제 재건이 시급하기에 김일철, 리룡남 내각 부총리의 역할도 주목해야 한다는 게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아래 당중앙위 산하 정치국과 정무국(옛 비서국), 당중앙군사위가 떠받치는 구조다. 우리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위상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다만 내각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이번 제5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정면 돌파를 강조하면서도 “경제사령부로서의 ‘내각’이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심각한 현 실태”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내각은 현존 경제토대를 효과적으로 리용(이용)하여 국가재정을 강화하고, 생산 단위들도 활성화할 수 있게 경제작전을 바로하라”고 지시했다. 이 때문에 경제 위기 돌파와 정상국가 실현을 위해서라도 김 위원장이 당분간 내각에 힘을 실어주리란 관측이 많다.

▒ 최룡해 국무위 제1부위원장

중국에 혁명그룹 2세대 모임인 ‘태자당’이 있다면 북한에는 ‘항일 빨치산 2세대’가 있다. 최룡해 국무위 제1부위원장은 그 선두주자다. 1950년 황해남도 신천군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최룡해는 김일성 주석과 함께 보천보전투에서 싸운 ‘빨치산 전사’ 최현의 아들이다. 최룡해는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기획하면서부터 북한 수뇌부의 눈에 들기 시작했다는 게 우리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최룡해는 북한 권부에서 불사조와 같은 인물이다. 그만큼 부침이 많았던 인물을 찾기도 힘들다. 그는 1990년대 후반 청년동맹 산하 무역회사 부패 사건에 연루돼 5년간 혁명화 과정을 거쳤다. 정치적으로 복권되는 데는 아버지 최현과 함께한 원로들의 구명운동이 큰 역할을 했다. 참고로 최현은 1972년부터 4년간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뒤 1980년에는 당중앙위원, 정치국 위원, 군사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북한 내부에선 일본 관동토벌대 사이에 김일성 주석이 ‘호랑이’로 불렸다면, 최현은 ‘사자’에 비유됐다고 한다. 두 사람에게 똑같은 금액의 현상금이 걸린 것이 이러한 위상을 실감케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최룡해는 북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할 수 있다. 최룡해가 빨치산 전사 출신인 부친을 두고 있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커다란 자산이다.

최룡해는 1986년 36세의 나이에 파격적으로 당중앙위 위원에 오른다. 30대에 파워 엘리트 그룹에 진입한 것으로 장성택 전 행정부장보다 6년 앞섰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북한 최대 조직 중 하나인 ‘청년동맹’의 최고책임자 자리를 12년간 수행했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죽기 전에 김정은 위원장의 손을 잡고 “최룡해의 말을 잘 참고하라”는 말을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김정일이 죽기 직전인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최룡해는 당의 3대 조직인 당중앙위 비서국, 정치국, 당중앙군사위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2014년 4월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황병서로 교체되면서 권력암투에서 패하고 물러났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2015년 말에는 혁명화 과정을 다시 거쳤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6년 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다시 권력의 중심에 섰다.

최룡해의 부인인 강경실은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와 친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키노 요시히로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원은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경실은 피바다가극단 출신으로 만수대예술단 소속이었던 고용희(김정은의 생모)와 친분을 쌓았으며, 이러한 배경 때문에 리설주와도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최룡해는 당중앙위 부위원장 자격으로 2016년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올림픽에 참석하기도 했다.

 

▒ 박봉주 당중앙위 부위원장

박봉주 당중앙위 부위원장은 북한 권력 서열 3위다. 북한 경제 전체를 총괄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지난해 말 열린 제5차 전원회의 첫째 날과 둘째 날 그가 모습을 보이지 않자, 정보당국에서는 박봉주가 실각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마지막 날 전체 기념사진을 찍는 자리에 휠체어를 타고 나옴으로써 건재함을 과시했다.

박봉주는 1939년생으로 함경북도 김책시 출신이다. 덕천공업대라는 비교적 이름이 덜 알려진 대학을 졸업해 북한 내부에선 박봉주를 가리켜 ‘실력 하나로 승부해 지금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24세의 나이에 룡천식료공장 지배인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41세에 당중앙위 후보위원에 올랐다. 박봉주는 기계제작기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전형적인 기술관료다. 2000년대 초 남한을 비롯해 동남아국가를 다니면서 북한 경제의 미래상을 그린 박봉주는 2003년 내각 총리에 임명되면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반대파의 벽에 부딪히면서 2007년 평안남도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됐다. 그랬던 박봉주는 2010년 당 경공업부 제1부부장, 2012년 4월에는 경공업부장에 복귀했다. 그러고는 2014년 내각 총리로 재임명되면서 권력의 중심에 섰다. 2016년에 있었던 7차 당대회에선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중앙위 군사위원에까지 선임됐다.

박봉주는 2016년 발표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실질적인 입안자로 알려져 있다. 올해가 마지막 해이니만큼 북한 경제가 얼마나 회복되느냐에 따라 교체 여부가 결정될 것 같다. 북한 연구 전문가들은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가 워낙 촘촘해 단기간에 북한 경제가 살아나기 힘들다고 본다. 이번 제5차 전원회의에 휠체어를 타고 나올 정도로 고령인 점도 차기에 교체 대상으로 고려될 수 있다.

 

▒ 김여정 당중앙위 제1부부장

김여정 제1부부장은 1987년생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4녀 중 3녀다. 김 위원장과 고용희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여동생이다.

2011년 전까지는 베일에 싸여 있었지만 그해 1월14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일의 차남 김정철과 함께 공연을 관림하는 모습이 서방 언론에 처음 포착됐다. 김여정은 친오빠인 김정철·김정은과 마찬가지로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김여정은 친고모인 김경희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당중앙위 선전선동부에서 활동해 왔다. 이 자리는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최고지도자 우상화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곳이다. 북한 내에선 김정은 위원장이 백두혈통(김일성 직계 가족)을 강조하는 만큼 김여정의 공식 직함이 지금은 당 제1부부장에 불과하지만 파워는 어지간한 고위급 간부 이상 될 것으로 본다. 2017년 10월 노동당 제7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올랐다.

김여정은 2년 전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시 북한 수행단을 이끌고 내한했으며, 지난해 4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 빈소에 보낼 김정은 위원장 명의의 조화를 우리 측에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도 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 함께 내한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국가 서열상으로는 훨씬 높았지만, 김여정 앞에서는 다소 쩔쩔매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2년 전 남북 정상회담이나 지난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바로 옆에서 모든 행동을 하나하나 직접 수행하는 모습에서 그의 북한 내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 정보당국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김여정의 호칭이 당중앙위 제1부부장으로 불린 것을 볼 때 부서가 선전선동부에서 조직지도부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본다.

 

▒ 리만건 당중앙위 조직지도부장

북한 권력의 핵심은 당에서 나온다. 그리고 당의 핵심 부서는 조직지도부다. 조직지도부의 권한이 워낙 막강하다 보니 과거 김정일은 별도로 조직지도부장을 두지 않고 본인이 겸직했을 정도다. 지난해 4월 리만건은 최룡해에 이어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서 조직지도부장으로 승진했다. 현재 리만건은 당중앙위 부위원장, 당중앙군사위 위원, 국무위 위원직도 함께 맡고 있다.

리만건은 1945년생으로 김정일 체제에서는 평안북도 당위원회 책임비서와 당중앙위 위원직을 맡았다. 직전까지는 북한 내 군수산업을 책임지는 당 군수공업부장으로 활동했다. 핵과 미사일 개발도 이곳에서 진행된다. 리만건이 2016년 당 군수공업부장에 오르자마자 진행한 첫 작품이 4차 핵실험이다. 이 때문에 리만건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0호에 따라 제재 대상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 김재룡 내각 총리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월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안남도 순천시에 위치한 ‘순천인비료공장’ 건설현장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올해 첫 현지지도다. 김 위원장이 새해 첫 현지지도 장소로 주민의 실생활과 직결된 농업 분야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북한의 경제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날 현지지도에서 주목받은 이는 조용원 당중앙위 제1부부장과 김재룡 내각 총리다. 그중 김재룡은 박봉주와 함께 북한 경제를 이끄는 핵심 인물로, 북한 내부에선 내각 엘리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최근 김 위원장은 경제를 책임진 내각 엘리트들을 중용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4월 제4차 전원회의에서는 김덕훈, 리룡남 내각 부총리가 당중앙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뽑혔으며 이 중 김덕훈은 제5차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 정치국 위원으로 한 단계 또 뛰어올랐다. 김재룡은 김덕훈보다 서열이 높다. 김재룡은 북한 내 최고 군사정책 결정 기관인 당중앙군사위 위원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로써 군사정책 결정에도 참여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지난해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내각 총리에 임명되기 전까지 김재룡은 자강도당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자강도는 북한 군수산업의 중심으로 권부 핵심으로 가는 요직 중 하나다. 그 전까지는 무명에 가까웠다. 우리 정보당국도 김재룡과 관련해 그동안 별달리 파악한 자료가 없었다. 2010년 평안북도 당위원회 비서(현 도당 부위원장)를 거쳐 2015년부터 자강도당 책임비서(현 도당 위원장)로 활동한 게 외부로 알려진 경력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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